한인 차세대를 키우자! ②육성 프로젝트 점검

구슬은 많은데 꿰지 못해…한글학교 지원도 시급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 청년 중에는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가 많지만 모래알처럼 숨어 있습니다. 이들을 찾아내 차세대 한인 네트워크로 묶을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고려인 3세 알렉산더 박 변호사는 재외동포재단이 마련한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하고 돌아간 뒤 러시아에 고려인 차세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뛰고 있다.

박 변호사처럼 재외동포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차세대들은 1~1.5세와 달리 거주국 주류사회에 당당히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체성이 희박해 1~1.5세와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이끌어줘야 한다. `차세대 육성’이 재외동포 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차세대 모국 초청 늘었지만 네트워킹엔 소홀

한인 차세대를 제대로 키우고 네트워킹하려고 움직이는 곳은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이다. 재외동포재단은 1997년 설립부터 지금까지 매년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세계 한인 청소년 대학생 모국 연수, 영비즈니스 리더 포럼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이진영 재외한인학회 회장(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15년 동안 세계한인차세대대회를 통해 747명이 고국을 방문했고 청소년 대학생 모국 연수에는 약 4천 명이 참가했다”며 “이들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가 있다면 모국과 거주국에서 더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단은 차세대 사업을 통해 그동안 많은 인재를 발굴해왔지만 육성하는 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정부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체계적으로 조직화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가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는 한상(韓商)을 꿈꾸는 동포 청년들이 무역인의 기본 소양을 쌓고 민족 정체성을 다질 수 있도록 10년 전부터 해마다 차세대 무역스쿨을 고국과 거주국에서 개최하고 있다.

차세대 무역스쿨은 지금까지 1만2천5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 요원, 코트라(KOTRA) 시장조사원, 한국 제품 수입 유통업체 직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해왔다.

윤조셉 국제통상전략연구원장은 “차세대 무역스쿨은 한상 사관학교로 자리 잡았지만 정체성 함양에 무게를 두다 보니 비즈니스 실무교육이 부족했다”며 “성공한 CEO를 활용한 멘토제를 도입해 선후배 네트워크를 만들고 글로벌 창업경진대회 등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넷칼(Net-KAL·Network of Korean-American Leaders)은 미국 남가주대(USC)가 2006년부터 자체 기금으로 운영하는 차세대 재미동포 지도자들의 모임이다.

넷칼 회원들은 `미국 사회에서 성공을 위한 리더십’ 등을 주제로 토론을 개최하고 성공한 동포 1세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며 네트워크 형성을 도모하고 있다. 해마다 리더십 프로그램의 하나로 모국을 방문, 국내 정치·경제·문화계 리더들과 교류해오고 있다.

이제훈 USC 교수는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다 보니 정부 측 인사 등 사회 명사들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모국의 작은 호의도 차세대에는 큰 격려가 된다”고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재외동포 모국 수학 장·단기 과정과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도 재외동포 차세대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재외동포 자녀의 모국 유학 등이 늘어나면서 공주대 한민족교육원과 경희대 국제교육원을 비롯해 고려대, 한양대, 상명대, 전남대 등도 차세대 육성과 한글학교 교사 워크숍 등을 실시하고 있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는 “재외동포 차세대는 1세대와 달리 거주국에 많이 동화돼 있어 민족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 기관에서 펼치는 모국 초청 연수가 더 활성화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동포 차세대의 시각과 욕구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인사회 최우선 과제는 차세대 육성

“재외동포 1세들은 거주국에서 성공했어도 늘 고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정이 잘돼야 시댁에서도 대접받는다는 마음이지요. 현지화가 된 2세들에게 어떻게 정체성을 심어줄 것인지가 한인사회의 숙제입니다.”

승은호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 회장은 한인사회와 거리를 두는 차세대를 끌어안기 위해 장학사업에 나서고 설·추석 등 명절 행사, 운동회, 백일장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한인총연합회는 지난해부터 유럽 전 지역 차세대가 참여하는 유럽 한인차세대 한국어 웅변대회를 열고 있다.

박종범 유럽한인총연합회 회장은 “유럽에서 자라나는 한인 꿈나무들을 대상으로 웅변대회를 열어 올바른 우리말 교육과 한국 문화 보급을 도모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부터는 차세대들이 고국 땅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문화체험도 하면서 고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자긍심을 느끼도록 국토대장정도 펼치고 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차세대와 모국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매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생과 청년 1천여 명을 대상으로 모국 연수를 시행하고 있다.

임삼호 민단 부단장은 “민단은 3년 전부터 차세대 육성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즐기는 관광’ 위주이던 모국 방문을 ‘모국과 재일동포 사회에 대해 확실히 배우는 교육’으로 바꿨다”고 소개했다. 임 부단장은 “모국 연수를 계기로 한국어를 배우거나 민단 행사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반가워했다.

전 세계 한인회장들은 한인회의 최우선 과제로 ‘차세대 육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용 부담 때문에 차세대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며 한결같이 모국의 지원 확대를 호소하고 있다.

이백수 브라질 한인회장은 “최근 불어닥친 한류 열풍 덕분에 한국에 대한 동포 자녀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 한국을 알리기에는 최적기”라며 “동포 자녀를 위해 모국 방문을 추진하거나 한류 스타를 현지에 초청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한인회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글학교 활성화 위해 본국 지원 절실

동포사회가 차세대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한글교육이다. 한글을 비롯한 한국문화 교육의 전진기지인 한글학교는 전 세계 120개국에 1868개가 있다.

한글학교는 거주국 정부나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 아래 세워진 것이 아니다. 모두 한인회를 비롯해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진 학교여서 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교사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교재도 형편없다.

재외동포재단은 한글학교 운영을 위해 올해 68억5천400만 원을 지원했다. 학교 1곳당 367만 원이 지원된 셈이다. 한글학교 대부분이 현지 학교나 교회 등을 빌려 쓰는 형편을 고려하면 임대료 내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최정인 세계한글학교협의회 회장은 “주말학교로 운영되는 한글학교의 열악한 재정 때문에 교사들은 대부분 무보수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열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교재 지원이나 워크숍 강사 파견 등 고국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한국교육원은 14개국 37곳에 교사와 강사를 파견, 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비롯한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로 전 세계 20개국에 설립된 한국문화원과 통합 논의가 진행돼 역할이 축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문화원은 한국교육원과 달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문화원으로 통합되면 헌법에 보장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축소될 것이라고 민단 등 동포단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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