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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부위원장’ ‘가주내 한인 최고위 선출직 공직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공화당원’ 그녀의 이름앞에 붙는 수식어는 그녀를 ‘철의 여인’쯤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셸 박 스틸, 그녀는 ‘천상 여자’다.
정치인 엄마로서 미안함을 전할 때 눈시울을 붉히고,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친정어머니를 추억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결혼 32주년을 맞는 남편이야기를 할 때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다. ‘정치를 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서슴없이 “차세대 한인정치인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녀는 틀림없는 외유내강 ‘한국여성’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명문 일본여자대학에 입학한 미셸 박 스틸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미국에 건너와서도 사업하는 어머니를 돕는 착한 딸이었고 LA 페퍼다인 대학 시절 만나 3년 열애 끝에 결혼한 남편(숀 스틸 변호사· 전 가주 공화당 위원장)에게는 사랑스럽기만 한 아내였다. 그런 그녀를 ‘욱’하게 만든 것은 ‘가주 조세형평국’으로부터 받은 편지 한장과 한인 사회의 비극 ’4·29폭동’이었다.
“홀로 사업을 하시던 어머니가 세금을 속였다며 거액의 벌금을 받았다. 분명히 당국의 오해였는데 당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일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고 후에 내가 조세형평국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 지 방향을 제시해 줬다”
1992년 ’4·29′폭동은 그녀를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라는 신념과 자신이 ‘한국인’임을 인식하게 해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미디어의 횡포였다. 뉴스, TV쇼에서 잘못된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누구하나 정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인들과 주류사회를 잇는 다리, 대변인이 필요하다고 뼈져리게 느꼈다. 남편도 그때부터 내 후원자가 돼주었다”
미셸 박 스틸 위원은 당시 LA 시장에 출마했던 리처든 리오든 선거캠프에 합류, 각 한인단체와 적극적으로 연결시켰다. 시장 당선 후 그녀를 LA소방국, LA공항, LA아동복지국 커미셔너 등으로 영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LA공항 커미셔너 시절에는 한 회사가 독과점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있던 공항 비즈니스를 여러 업체에 오픈하는 등 각 처에서 그녀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안 하면 안 했지 하면 ‘끝장’을 보는 ‘한국 아줌마’의 힘이었다.
그리고 2006년, 60.5%라는 높은 지지율로 제3지구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당선되며 세상을 다시 놀라게 했다. 조세형평국 위원은 캘리포니아의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박위원은 LA와 오렌지카운티 등 6개 카운티 800만명이 넘는 납세자의 연간 1천 5백억달러에 이르는 세금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30년 전 어머니가 받았던 부당한 세금통지서를 늘 기억하며 행여 납세자들의 잘못이 발견되어도 이를 명백히 증명할 때까지는 무혐의라고 생각하며 일한다. 나의 임무는 납세자 보호가 최우선이다”
그녀의 열정과 진심은 2010년 가뿐히 재선에 성공하며 증명되었고 이어 2011년에는 만장일치로 조세형평국 부위원장에 선출된다.
어쩌면 승승장구처럼 보이는 정치인생에 실제로 그녀는 늘 씩씩했지만 뒤에서 눈물을 쏟은 적도 많다. 깐깐한 백인 정치인을 상대로 설전을 펼치고 난 뒤 자동차 뒷 좌석에서 울음을 터뜨린 그녀를 보고 보좌관이 당황하자 남편이 “미셸은 한국여자다. 1시간만 울고 나면 다시 씩씩해 진다”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바쁜 엄마를 두고도 잘 자라준 두 딸에 대한 고마움도 크다. 어릴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던 큰딸 채안(25)은 현재 연방상원 Environment and Public Works 위원회에서 공보관(Press Secretary)으로 근무하고 있고 대학 4학년인 작은 딸 수안(22)은 CIA나 FBI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그만두고 싶은 적? 솔직히 많았다. 하지만 한인사회와 주류 정치계와 적어도 끈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명감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한인커뮤니티로부터 받은 지지와 사랑도 결코 저버릴 수 없었다”
지난해 말 박 위원장은 오는 2014년 치러질 OC수퍼바이저 제2지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고 워밍업 중이다. 이미 오렌지카운티 실세인 토니 로카커스 검사장과 12선의 정계 거물인 데이나 로라바커 연방 하원의원(46지구)으로부터 캠페인 공동 의장직 수락을 받아 놓은 상태다. 한인사회 모두가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큰 만큼 그녀 또한 차세대 젊은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많은 2세, 3세 한인 정치인이 나와주길 바란다. 그들이 나와서 좀 더 힘을 발휘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터를 닦는 것이 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말해주지 않는다. 한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자라도록 엄마들이 자녀들을 많이 응원해 달라”
하혜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