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
소설가 이외수의 글처럼 다소 거칠면서 자유로운 말투로 시와 일상, 문학을 들려준다. 과연 그가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1994년의 청춘이 아니라 2013년의 중년이니 책 곳곳에서 마주하는 욕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말이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원하지 않는 곳에서 이별하고 원하지 않는 곳에서 눈을 뜨는 우리의 삶은 그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처럼 외롭다고 솔직하게 소리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그의 상처가 모두를 위로한다. 술로 시작해 술로 하루를 마감하고,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누추한 공간에 몸을 의탁하며 부르는 그의 시가 힘이 된다.
‘쓰러졌을 때 아무도 없이 스스로를 일으켜야 하는 사람은 외롭다. 높은 곳에서 쓰러지는 사람, 깊은 곳에서 쓰러지는 사람, 먼 곳에서 쓰러지는 사람은 외롭다. 혼자 일어나야 한다. 아무도 없다. 외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다다른 사람들이므로 결국 혼자 일어나야 한다. 스스로 눈을 뜨고 스스로 이마를 짚고 스스로 아직 멈추지 않은 심장의 박동을 확인해야 한다. 가장 늦게 지는 별을 바라보는 순의 낙타처럼, 살아서 지워지지 않는 길을 건너가야 한다.’ (90쪽)
책은 그가 왜 떠도는지,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슬픔을 견뎌왔는지 세세하게 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상처로 얼룩진 삶을 마감하며 때로 세상을 원망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러므로 그의 곁에 머무는 이들 역시 상처라는 빛나는 흔적을 안고 살아갈 터.
‘매미가 운다. 맹렬하게 운다. 미움, 미움, 미움…… 하면서 운다. 지상에 머물 날이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으면서 하필이면 미움, 미움, 미움……이라는 발음으로 울다니! 쓰르라미는 아침부터 밤까지 쓰라림, 쓰라림, 쓰라림…… 하면서 운다. 풍장으로 죽은 제 죽음을 장사지내는 순간까지 쓰라림, 쓰라림, 쓰라림…… 하면서 운다. 그래, 생각해보니 니들이나 나나 사는 건 다 미움과 쓰라림의 뒤안길 맞다. 니들이나 나나 다 갈 데 없는 상처적 체질인 거다.’ (168쪽)
가슴까지 시린 겨울날 시인이 건네는 글이라는 이름의 술을 마신다. 그리움, 슬픔, 사랑, 이별, 눈물, 당신이라는 안주와 함께 건배를 하며 즐겁게 취한다. 당신도 함께 취하고 싶지 않은가?
‘그냥 일 없이 반갑고, 일 없이 그립고, 일 없이 술잔을 건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런 까닭 없이 옛 이름들을 한 번 불러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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