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의 이웃공동체 복원 판타지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tvN ‘응답하라 1994(응사)’는 지난 한 해를 대표할 만한 드라마다. 케이블 콘텐츠여서 지상파의 집안잔치 시상이 돼버린 연기대상에서는 수상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단순히 복고를 넘어 ‘신드롬급’ 현상이 나온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눈여겨봐야 될 요인과 코드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응사’에는 지금 우리에게 없는 것들, 우리가 갖고 싶은 것들을 많이 채워주었다. ‘결핍’이 문화를 끌고가는 원동력이다. 우선 ‘응사’가 그렸던 1900년대는 말기에 와서 IMF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지만, 사회적 경쟁이 지금처럼 그리 치열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대학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대학을 졸업해서도 취업이 안 돼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하는 요즘의 20대들에게는 무슨 ‘팍스 코리아나’ 시대 이야기쯤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학생활이 낭만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요즘 세대는 사랑(멜로)도 사치일 정도로 힘들다. ‘응사’의 두 가지 큰 줄기인 멜로와 의리(우정)는 서로를 치열한 경쟁상대로 여기는 데서는 진가를 발휘하기 힘들다. 하지만 ‘응사’는 이런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학교’와 ‘지역’이 한 곳에서 어울릴 수 있고, 지역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데서 비롯되는 판타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숙집 주인 성동일이 쓰는 말투는 우악스럽다. 성동일이 가장 많이 쓴 말은 “염병할!” “지랄염병해쌌네” “염병할 년”이었다. 말투는 살벌하지만 속에 담긴 정만은 깊고 훈훈하다. 하숙집 안주인 이일화가 하숙생을 위해 만든 음식을 보면 손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국수 만드는데 무슨 동네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다.

성동일-이일화 부부는 매정한 듯해도 하숙생을 자기 집의 아들 딸처럼 챙긴다. 요즘 이런 하숙집이 어디 있을까. 거칠기는 해도 하숙집 1층에 있는 식탁은 대단히 민주적이다. 그래서 따뜻함을 준다. 성동일-이일화 아래에서 팔도 유학생들이 ‘유사가족’으로 지낼 수 있었고, 이들이 마지막까지 뜨거운 우정을 다져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숙생들은 2002년 6월 모두 하숙집을 떠나며 이별을 했지만, 현실에 찌든 40대가 돼서도 여전히 유쾌한 인연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펼쳐졌다.

요즘 하숙하는 대학생 상당수가 ‘원룸’에 산다. 하숙생들끼리 살가운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 ‘응사’의 하숙집은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이다. ‘응사’를 보고 있으면 이 같은 이웃공동체를 복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응사’는 ‘성나정의 남편찾기’라는 멜로도 일상과 맞물린 사랑 이야기여서 몰입과 공감 효과가 컸다. 성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가 중간에 헤어지게 되는 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직업과 상황 등이 부딪힌 현실적인 이야기다.

윤석호 PD의 ‘사랑비’가 보여준 사랑은 현실적인 것도 아니고 일상적이지도 않다. 1970년대의 순수하고 운명적인 사랑은 시대가 바뀌어도 가슴이 떨리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임을 보여준 바 있다. 수채화같이 맑고 순수한,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것이 단순히 예쁘다는 반응으로 그쳐버렸다. 복고 콘텐츠는 사랑이건, 일반적인 이야기건 현재와 조응하는 부분이 필요한데, ‘사랑비’는 과거의 예쁜 사랑 이야기로 그친 감이 있다. “그땐 그랬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아쉬웠다.

반면 ‘응사’는 과거로 현재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확실했다. ‘응답하라 1997(응칠)’에서는 어른들이 한심해하던 ‘빠순이’를 긍정함으로써 빠순이가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등장인물들은 ‘빠순이’ 시절 갈고 닦았던 기술로 대학에도 진학하고, 취업에도 성공했다. ‘빠부심’(빠순이, 빠돌이 자부심)이라는 단어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응사’는 따뜻한 하숙집 이야기로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소통과 공감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피폐화된 개인들의 삶은 힘들고 외롭다. ‘응사’의 하숙집에서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싶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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