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타고온‘19禁 로맨스’…잠자던 욕망을 깨우다

개봉 전부터 폭발적인 화제 집중 실제 흥행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그레이의…’수위 높은 섹스신 탓 일부 이슬람국가선 상영금지도 ‘순수의…’도 강렬한 애정 멜로물 저마다 ‘제2의 색, 계’자처 흥행몰이 봄 바람을 타고 멜로 영화들이 극장가의 문을 두드린다. 평범한 로맨스는 아니다. ‘19금’ 딱지가 붙은 끈적끈적한 이야기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감독 샘 테일러-존슨)가 25일 개봉한 데 이어, ‘순수의 시대’(감독 안상훈ㆍ제작 (주)화인웍스, (주)키메이커)가 다음 달 5일 선보인다. 같은 달, 성인 로맨스의 고전이 원작인 ‘마담 보바리’도 개봉 예정이다. 아이들 소꿉놀이가 아닌, 솔직하고 현실적인 연애담을 기다려온 성인 관객이라면 설렐 만한 소식이다.

19금 로맨스의 화제성은 상당하다. 개봉 전부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스틸과 예고편이 공개될 때마다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순수의 시대’는 24일 언론·배급 시사회와 기자 간담회가 열린 직후, 관련 키워드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물론 이 같은 화제성이 흥행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배우들의 연기 도전과 노출 수위가 시선을 끌더라도,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끄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중박’ 이상의 흥행작들을 떠올리면 수위 높은 로맨스물은 찾기 어렵다.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등급 제한이 걸림돌이기도 하고, 자극적인 장면에 압도 당하지 않을 만한 수작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처음 선보이는 파격 멜로작들이 단순 화제몰이를 넘어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높다.

성인들을 위한 파격 멜로영화가 스크린을 찾아온다. 과거 수위 높은 로맨스물이 저마다 제2의 ‘색,계’를 자처하며 나섰지만, 대다수가 대중과 평단의 외면을 받았다. 분명한 것은 흥행은 영화의 완성도가 담보될 때 따라온다는 점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엄마들의 포르노’, 스크린에서 부활하다=전 세계 극장가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열풍이 불고 있다. 무려 56개 국에서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흥행작 ‘아바타’, ‘트와일라잇’의 첫 주 박스오피스 기록을 넘어섰다. 스파이 영화의 새 역사를 쓰고있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따돌리고 개봉 2주차에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쯤 되면 신드롬 수준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치명적인 매력의 억만장자 크리스찬 그레이와 그에게 매혹된 여대생 아나스타샤의 파격 로맨스를 담은 영화다. ‘엄마들의 포르노’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물론, 가학적인 성적취향과 같은 파격 설정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가져왔다. 원작 1부의 2권 분량을 2시간에 담아내다 보니, 소설의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보다는 아나스타샤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인물들의 감정 흐름에 치중한 면이 있다. 원작 팬의 입장에선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지만, 사도마조히즘(SM) 플레이가 등장한다는 점 만으로도 ‘수위 높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 박스오피스의 흥행 열기를 뒤로 하고, 일부 국가들에선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말레이시아, 케냐, 인도네시아 등에선 극장 상영이 금지됐다. 미국에서도 가학적인 성행위 묘사를 이유로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졌으나, 영화는 40%가 넘는 점유율로 지난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흔한 역사극인줄 알았더니, 한국판 ‘색,계’?=‘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언론에 공개된 다음 날, 한국 영화 ‘순수의 시대’가 첫 선을 보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순수의 시대’ 역시 강도 높은 애정신을 포함한 멜로 영화였다. 명문가 남성의 비극적인 로맨스를 담은 동명 소설·영화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꽃핀 남녀의 애절하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그려냈다. 조선 초기 ‘왕자의 난’이 소재로 등장하지만, 그 이면을 상상력으로 채워넣었다.

특히 영화는 서로 다른 욕망을 순수하게 쫓는 세 남자의 드라마가 중심이 된다. 이 가운데 대쪽같던 무장 김민재(신하균 분)는 매혹적인 기녀 가희(강한나 분)를 만나 사랑과 욕망에 눈 뜬다. 두 사람 사이에 농밀한 애정신이 몇 차례 펼쳐지는데 그 수위가 꽤 높다. ‘신경질적 근육’으로 단련된 신하균은 물론, 청초한 듯 뇌쇄적인 강한나의 매력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가상 인물들을 내세운 것이 무색한 진부한 설정, 예상 가능한 전개가 완성도를 떨어뜨리지만, 주인공들의 애정신 만큼은 역대 사극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순수의 시대’

▶19금 멜로, 화제 모으지만 흥행은 ‘글쎄’=수위 높은 애정신을 담은 영화들은 앞다퉈 ‘제2의 색,계’라는 수식어를 자청한다. ‘색,계’는 파격적인 베드신이 화제가 된 것은 물론,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작품성도 인정받은 보기 드문 영화다. 신인이었던 탕웨이를 일약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최근 노출 수위로 화제가 된 한국 영화들은 흥행에 쓴 맛을 본 경우가 많았다. 지난 해 개봉한 ‘인간중독’은 베드신 경험이 없던 송승헌과 신인 배우 임지연의 과감한 애정신이 화제를 모았지만, 부실한 스토리와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로 관객의 외면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마담 뺑덕’ 역시 톱배우 정우성과 신인 이솜의 파격 베드신이 기대감을 모았으나 흥행 성적표는 참담했다. ‘제2의 색,계’로 불렸던 ‘비밀애’(2010), ‘나탈리’(2010), ‘두 여자’(2010) 등도 줄줄이 흥행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결국은 영화의 재미가 관건인 셈이다. 아울러 노출신이 단순히 화제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의 스토리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얽히고 적절하게 쓰였는 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순수의 시대’ 모두 노출신을 이용하거나 낭비한 경우는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전자는 원작 자체가 파격적인 섹슈얼리즘을 담았고, 인물들의 ‘욕망’에 집중한 ‘순수의 시대’ 역시 스토리상 성욕을 드러낸 장면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16%(25일 오전 9시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의 예매율로 ‘킹스맨’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 흥행 전망을 밝히고 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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