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결산-영화계 핫이슈 5] ‘외화 날고, 한국영화 울상’…킹스맨 등 깜짝 대박도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외국영화는 날았고, 한국영화는 부진했다. 올 상반기 영화계를 요약하면 그렇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약 612만 명)를 시작으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약 1050만 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약 380만 명) 등 흥행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 수 외화들이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열풍을 일으켰다. 반면 한국영화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약 387만 명)과 ‘스물’(약 304만 명)이 체면치레를 했을 뿐,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었다. 이 기간, 한국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도 반복됐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여지 없이 불거졌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인들의 갈등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영화계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한 해의 절반 지점까지 달려온 시점에서, 상반기 영화계에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되짚어 봤다. 

▶눈 뜨면 신기록, ‘어벤져스2’ 흥행 광풍=상반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영화는 단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이다. ‘어벤져스2’는 1000만 관객을 모으기까지 ‘신기록 제조기’로 부를 만한 흥행 기록을 세웠다. 개봉 전부터 역대 최고 예매율 및 예매량을 기록하며 흥행에 시동을 걸었다. 개봉 당일엔 62만 명을 모아 역대 외화 평일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고, 첫 주말엔 역대 외화 최초로 일일 100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역대 외화 최단기간 100만 돌파를 시작으로, 200만, 300만…1000만에 이르기까지 최단기간 기록을 거듭하며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마블 시리즈 중 최초의 1000만 관객 돌파 작품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마블 사상 최고 제작비가 투입된 볼거리, 매력적인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활약상 등이 관객들을 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마크 러팔로 등 톱 배우들의 방한도 영화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 한 몫을 했다. 지난 해 국내에서 촬영한 분량과 한국 배우 수현의 출연에 대한 관심도 국내 관객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실제로 ‘어벤져스2’는 국내 극장가에서 유독 큰 호응을 얻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22일 기준) ‘어벤져스2’는 한국에서 총 7685만335달러(한화 약 884억 원)의 수익을 올려 북미(4억5103만9000달러)와 중국(2억4011만 달러) 다음으로 많은 수익을 냈다. 

▶“이 정도로 흥행할 줄은…” 반전 흥행 일군 외화들=‘어벤져스2’의 흥행이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면, ‘킹스맨’, ‘위플래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4’), ‘스파이’ 등의 흥행 성과는 놀라운 것이다. 기존의 흥행 외화의 공식을 벗어난 작품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는 뻔한 스토리를 물량 공세로 덮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염증을 느낀 관객들이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면서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스파이액션 ‘킹스맨’의 경우 흥행을 점치기에 걸림돌이 많았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데다, 한국영화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설 연휴에 개봉한 점, 보편적인 재미와 공감대를 갖기에 낯선 정서가 깔려 있는 점 등이 핸디캡으로 꼽혔다. 그럼에도 기존 첩보 액션의 틀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캐릭터와 비주얼 등을 선보인 점이 호평 받으며 6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킹스맨’ 열풍은 전방위로 확산돼 방송가에서 패러디되거나 패션, 문구류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위플래쉬’(누적 158만 명)는 ‘잘 만든 영화는 관객들이 알아본다’는 관계자들의 믿음을 기정사실로 만든 사례다. 대작 외화들과 비교해 폭발적인 흥행 성적을 낸 것은 아니지만, 5만 달러(약 5500만 원)에 수입해 약 126억 원의 수익을 벌어들였으니 실속은 톡톡히 챙긴 셈이다. SNS 등을 통해 퍼진 입소문의 파급력 역시 상당해, ‘킹스맨’ 못지 않은 패러디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개봉작인 ‘매드맥스4’와 ‘스파이’(누적 230만 명) 역시 반전 흥행의 주역들이다. 20여년 만에 새 시리즈로 돌아온 ‘매드맥스4’는 컴퓨터그래픽(CG) 효과 일색인 액션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러닝타임 내내 아날로그 액션을 펼치며 관객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덕분에 액션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마니아층을 양산했다. ‘스파이’의 경우 전무후무한 스파이 캐릭터와 신선한 유머 코드로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한국영화 침체, 50만 미만 영화 ‘수두룩’=크고 작은 외화들이 박스오피스를 휩쓰는 동안 한국영화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두 편의 코미디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과 ‘스물’을 제외하고는 300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없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상위 20위 중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고작 8편에 불과했다. ‘순수의 시대’, ‘연애의 맛’, ‘은밀한 유혹’ 등은 50만 명도 채 모으지 못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어벤져스2’ 광풍과 내실있는 외화들의 반전 흥행이 휩쓴 극장가에서 당연한 결과다. 그에 반해 상반기 한국영화들은 진부한 웃음 코드의 코미디나 뻔한 공식을 밟는 스릴러 범죄물이 주를 이뤘다.
다만, 상반기 성적 만으로 한국영화계의 상황을 자조하기엔 이르다는 반응이다. 4대 배급사(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NEW)가 아직까지 비장의 카드를 꺼내지 않은 것.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드는 7월부터 라인업이 풍성하다. 쇼박스의 경우 곽경택 감독의 신작 ‘극비수사’가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 한국영화 침체 분위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어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등 충무로 최고의 배우들이 뭉친 ‘암살’(7월 22일 개봉)로 성수기 극장가를 공략할 계획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경우 판타지 호러 ‘손님’(7월 9일 개봉)과 ‘베테랑’(8월 5일 개봉)으로 관객 몰이에 나선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7월 2일 개봉)와 ‘협녀, 칼의 기억’(8월 중 개봉)을, NEW는 ‘뷰티 인사이드’(8월 20일 개봉)를 꺼내들 준비를 마쳤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고질적 스크린 독과점 문제=외화와 한국영화의 희비가 엇갈린 와중에,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올해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정된 스크린을 배분하는 과정에선 늘 마찰이 생기기 마련. 극장은 최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고, 영화 관계자 측은 공정한 상영 기회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지난 해 ‘명량’, ‘국제시장’ 개봉 당시 불거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올해 ‘어벤져스2’를 향했다.
그보다 앞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을 둘러싸고 연초부터 스크린 배분의 공정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개훔방’ 측은 대기업과 직배사들의 영화에 밀려 제대로 된 상영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시민들을 중심으로 재상영을 추진했다. 어렵게 얻은 재상영 기회였지만 상영 시간 대가 조조나 심야 시간 대에 몰리면서 신통한 성적을 내진 못했다. 배급사 리틀빅픽처스를 맡고 있던 엄용훈 전 대표는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되어 버린 상영관 구조에선 공급의 양이 수요를 결정하고 있다”며 “법으로 동일 계열기업 간에 배급과 상영을 엄격히 분리시키고, 상영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합리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어벤져스2’의 경우 멀티플렉스를 소유한 배급사의 영화는 아니지만, 개봉 당시 극장들이 상한선 없이 스크린을 내어주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로 개봉 첫 주에 무려 1800곳 이상 상영관을 차지하며, 전체 스크린(2281개)의 80% 가량을 휩쓸었다. 하루에만 1만 번 이상 상영된 날도 있었다. ‘어벤져스2’와 개봉 첫 주말 경쟁한 스무 편이 넘는 영화들은 고작 400여 개 스크린을 나눠가질 수 밖에 없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반복되면서,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정 영화가 한 극장 스크린 수의 30%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식이다. 일각에선 감독의 인지도나 유명 배우의 출연 유무 등을 떠나 애당초 모든 영화가 같은 스크린 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영화 관계자들은 상영 기회의 불공정 문제 등으로 중·소 제작사들이 영화를 만들 동력을 잃는다면, 다양한 영화를 즐길 관객들의 권리는 박탈당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사진=인디플러스 독립영화전용관

▶코너 몰린 영진위, 영화계와의 갈등 ‘일촉즉발’=영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어쩌다 동네 ‘싸움닭’이 됐다. 영화계 이곳저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탓이다.
올해 초 영진위는 기존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과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을 통폐합한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을 일방 추진하려다 영화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매년 26편의 영화를 30개 스크린(지역 멀티플렉스 15개, 비멀티플렉스 15개)에서 주 1~2일 상영하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각 예술영화전용관의 자율적인 작품 선정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26편의 영화 역시 영진위의 입맛에 맞게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영화단체 대표자들은 지난 16일 영진위를 방문해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을 원상복구할 것을 요구하며 항의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도약하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발목을 잡는 움직임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심엔 안타깝게도 영진위가 있다. 올해 초 부산시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해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데 따른 보복 조치로 보인다는 것. 최근엔 영진위가 부산영화제의 지원금을 절반 가까이 삭감하고 나섰다. 글로벌 영화제의 위상을 갖춘 만큼, 자생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부산영화제가 칸이나 베를린국제영화제, 상하이영화제 등과 비교했을 때 정부 지원금이 최저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 부산영화제 측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위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부산 지역의 문화예술 단체 200여 곳도 한데 모여 영진위의 전횡에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아닌 영화‘침체’위원회라는 오명을 쓴 영진위의 행보를 지켜보는 눈이 많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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