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 신작‘마돈나’칸영화제 초청 신수원 감독]“영화판서 뿌리뽑자는 초심으로 버텼죠”

교단 떠나 첫 장편작업 7년이나 걸려
빠듯한 예산에 다양한 앵글 욕심 접어
국경·언어 뛰어넘는 찬사에 뿌듯

“칸에서 ‘마돈나’ 상영이 끝나고 기립박수가 나왔어요.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는데 그 눈빛이 가식이 아니었어요. 진심으로 영화를 좋아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순간, 영화를 더 잘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신수원(48) 감독은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신작 ‘마돈나’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덕분이다. 이번이 벌써 3번째 국제영화제 나들이다. 앞서 ‘순환선’(2012)과 ‘명왕성’(2013)이 각각 칸과 베를린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영화의 활약이 뜸해진 시점에, 신 감독은 내놓는 작품마다 국경과 문화, 언어를 뛰어넘어 공감과 찬사를 이끌어냈다. 


10년 전, 신수원 감독은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이, 신 감독에겐 지속 가능한 공간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신 감독은 휴직을 하고 글을 쓸 수 있겠다는 흑심(?)을 품고,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발을 들였다. 그곳에서 참여한 영화 만들기 워크숍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영화를 찍는 일은 신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마약의 중독성’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결국 2005년 사직서를 내고 홀가분하게 카메라를 들었다.

“소설이나 시나리오나 속성은 비슷해요. 결국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거죠. 당시 영화를 찍겠다고 하니 친구들이 다들 말렸어요. 서클 선배가 조감독을 했는데 1년 수입이 500만 원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먹고 살지’ 싶으면서도, (영화를) 한 번 만드니까 두 번 만들고 싶고…. 마약의 중독성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교단을 내려온 뒤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3년 단편영화 ‘면도를 하다’가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지만, 첫 장편 ‘레인보우’(2010)를 내놓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그 기간 준비했던 영화가 투자 문제로 좌절되고, 작품에 참여하고 잔금을 못 받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하고, 홍보 영상을 찍으며 생활비를 벌었다. 교사 경력을 살려 참고서를 쓰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여기서 뿌리를 뽑자는 독한 마음은 있었어요. 영상원 모임에 가면 지도교수님이 ‘넌 정말 독한 년’이라고 그러셨죠.(웃음) ‘레인보우’ 시사회 때 교수님을 초대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신수원 독하다! 장하다!’고 외치시더라고요. 그 때 정말 울컥했어요.”

이내 신수원 감독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일당백의 각오로 현장을 지킨 기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마돈나’는 전작들보다 규모는 커졌지만, 여전히 빠듯한 예산에 발을 동동거려야 했다. 미술이나 세트는 엄두도 못 냈다. 다양한 앵글로 찍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포기했다. 대신 신 감독은 ‘연기에 집중하자’, ‘배우들만 보고 가자’고 생각했다. 그나마 감독과 배우는 조명이라도 받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의 고생은 어떤 공치사로도 부족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에, 칸의 선택을 받았을 때 더 뭉클할 수 밖에 없었다.

“전 운이 좋은 편이예요. 돈은 없지만 영화제에서 초청받고 알아준 것이 또 다른 기회를 줬으니까요. 지금 제 모토는 ‘지속적인 딴따라질’이예요. 조영각 씨(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가 한 말인데 훅 들어오더라고요. 도박처럼 확 흥하고 망하는 것보단, 조금씩 예산을 늘려가며 성장하고 싶어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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