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테마 통해 희망메시지 찾고 싶어
“자식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는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되고 보니 오히려 제가 자식으로 인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걸 깨달았죠.”
일본의 차세대 애니메이션 거장 호소다 마모루(48·사진)가 멋쩍게 털어놨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등의 작품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그는, 새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 홍보 차 한국을 찾았다. ‘괴물’ 스승과 ‘인간’ 제자의 특별한 동행을 담은 영화는, 일반적인 성장담과 달리 어른과 아이 모두의 변화를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괴물의 아이’는 일본에서 450만 명 이상을 모아, 애니메이션으로선 이례적인 흥행 기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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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 일본영화감독.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
“아직도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적 없는 세계가 무궁무진해요. 해외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공통적으로 문제 의식을 가지는 테마가 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가족의 변화에 관한 것이죠.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붕괴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 속에서 희망적인 메시지 찾고 싶어요.”
국산 애니메이션은 성인 타깃의 작품 혹은 유아용 애니메이션으로 양분돼 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 드물다. 대신 관객들은 독창적인 스토리와 울림 있는 메시지의 픽사 영화에 열광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서정적인 작품에 감동했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는 국내 관객들에게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은퇴를 선언하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잠정 휴업하자 팬들은 시름에 잠겼다. ‘제2의 하야오’로 불려온 호소다 마모루에게 쏠리는 시선도 많아졌다.
“‘포스트 하야오’라는 표현을 자주 듣고 있죠.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어요. 하지만 내가 그 분이 되고 싶진 않아요. 수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품을 만들면서, 전체 영화가 풍요로워지는 법이죠. 제게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건 아까운 일이예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3D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는 동안, 호소다 마모루와 그의 스튜디오는 2D 애니메이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연필선이 살아있는 손그림은 누군가에겐 따스한 정서를 주지만, 누군가에겐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하는 고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는 2D 애니메이션을 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거창한 사명 대신, “붓이나 연필이 내용을 정하는 건 아니다. 표현의 도구로서 손그림에 매력을 느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본격적인 연출 데뷔 전, 그는 작화를 담당하는 애니메이터로 긴 시간을 보냈다. 그림보다 연출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거의 노예처럼 일했다”고 웃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림 실력이 좋아진 건 물론, 연출에도 큰 보탬이 된 ‘수행의 기간’이었다.
“내가 원하는 바가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고 실망할 건 없어요. 그 시간이 뜻밖의 공부가 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해요. 제가 애니메이터로 일할 때,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은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참여했어요. 지금 감독이 된 나 역시 스태프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겪어보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깨달음이죠.”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