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도 피해갈 수 없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독주가 시작됐다. ‘부산행’이 처음 기획될 때만 해도, 한국 최초로 시도되는 상업적 좀비물이라는 사실에 흥행을 점치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영화가 지난 5월 칸 영화제에 초청되고, 개봉도 전인 영화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부산행’ 열차가 어디까지 질주할지 알 수 없게 됐다.

개봉 후 관객들의 평도 나쁘지 않다. ‘부산행’은 정식 개봉 5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000만까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동시에 ‘유료 시사회’라는 변칙 개봉에다가, 스크린 독과점이 낳은 ‘반칙 결과’라는 쓴소리도 공존한다.

▶일일 매출점유율 최고 82.4%= 25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부산행’은 24일까지 누적 관객수 531만4661명을 기록했다. 수요일이던 개봉 첫날(20일)에는 1570개 상영관에서 8826회 상영되며 87만2232명을 모았다. 이날 매출 점유율은 82.4%에 달했다. 이날 하루 극장을 찾은 관객 10명 중 8명 이상이 ‘부산행’을 본 셈이다. 개봉 첫날이니만큼 ‘부산행’에 대한 관심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진=‘부산행’ 포스터(NEW 제공)]

‘부산행’은 23일 128만738명을 동원해 역대 한국영화 일일 최다 관객수 기록도 갈아치웠다. 이는 ‘명량’이 2014년 8월 세운 기록인 125만7380명을 가뿐히 뛰어넘은 수치다. 이날 전국 1785개 상영관을 차지하며 하루에만 1만 번이 넘는 상영회차를 가져간 덕분이다. 상영 점유율은 금ㆍ토ㆍ일 3일 내내 55~57%대를 유지했다. 매출액 점유율은 75%대를 웃돌았다.

이쯤 되면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올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었던 두 영화 ‘검사외전’,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치다. 현재까지 올해 최고 성적(970만 명)을 거둔 ‘검사외전’은 설 연휴기간 최대 1812개 스크린을 차지하고 1만 회 가까이 상영되면서 “스크린 독과점 덕으로 흥행했다”는 오명을 남겼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도 개봉 전날 예매율이 95%까지 치솟아 개봉 4일 차엔 1990개 스크린을 독식하기도 했다.

‘부산행’은 개봉 전주 주말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유료 시사회를 열어 업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금ㆍ토ㆍ일 3일간 4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하루 1000회 가까이 상영돼 개봉 전 이미 55만8928명의 관객을 모은 것.

한 영화 업계 관계자는 “개봉 전 유료 시사회와 스크린 독점 등의 반칙이 오히려 ‘부산행’의 참신한 시도와 작품성이 얻은 흥행 성적을 빛바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27일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이 최대 대항마로 여겨졌지만, 시사회 이후 반응이 좋지 않아 당분간 ‘부산행’의 독주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전망했다.

▶‘수직계열화’ 글쎄…“어쨌든 장사”=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의 원인은 ‘수직계열화’의 문제로 이해됐다. 대기업이 영화 투자에서부터 배급, 상영(극장)까지 장악한 구조가 스크린 독과점을 만들고 심지어 ‘독려’한다는 설명이었다. 쉽게 말하면 자사 투자ㆍ배급 영화를 자사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관객이 몰리는 시간대에 집중 편성해 한마디로 “밀어주는” 구조다. 이는 영화산업의 근본적인 불균형을 가져옴과 동시에 다양성 영화들의 설 자리를 잃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엄밀히 말해 ‘부산행’의 스크린 독과점은 수직계열화 문제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부산행’의 배급사 NEW는 지난 6월에서야 ‘시네스테이션Q’라는 이름으로 극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NEW가 보유한 극장은 지난 3월 인수한 신도림 CGV점 한 곳뿐이다. ‘검사외전’(쇼박스)이나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두 배급사는 국내 극장체인을 운영하지 않고 있어 최근까지만해도 “극장이 없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경쟁작이 없는 시기, 개별 극장의 자율적인 상영 스케줄 조정을 이유로 꼽는다.

한 영화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영화들이 개봉일을 정할 때 대작이나 경쟁작을 피해 한 주씩 텀을 두고 고르게 들어오게 되는데, 이 때문에 개봉 첫 주에 한 영화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영화 하나를 틀더라도 좌석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채워질 영화를 트는 것이 ‘장사하는 입장’인 극장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시장원리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에서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청년유니온 등 3개 단체는 영화 상영업과 배급업 겸영을 분리해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자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입법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 지난 1일 국회 교문위 소속 김병옥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영화시장 독과점 관련 자료’를 발표하며 “흥행위주의 투자로 다양한 영화 창작을 가로막아 영화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저해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멀티플렉스 영화관 자료사진]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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