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여자짓’ 왠지 거부감
-좋은 형·동생 관계 김재욱-양세종
한 여인놓고 미묘한 균열도 거부감
20부작 어떻게 끌고갈지 걱정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는 멜로드라마로서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 사랑을 확인한 메인남자주인공(양세종)-메인여자주인공(서현진)이 갈수록 빛이 나야 하는데, 여기에 끼어든 서브남자주인공(김재욱)이 더 큰 응원을 받고 있다.
또 서브여자주인공(조보아)은 자의식이 부족한 말 전달자에 머무르고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떨어진다. 오히려 조연인 황보 경(이초희 분) 보조작가의 시원한 사투리가 주는 러블리 사이다 매력이 어필하면서, 김준하 PD(지일주 분)와의 티격태격 러브라인이 사랑을 받고 있다.
분량이 거의 없는 굿스프 소믈리에 임수정(채소영)도 멋있다. 지홍아(조보아 분)는 계속 튕기다가는 굿스프 수 셰프 최원준(심희섭)도 놓칠 판이다.
온정선(양세종 분)과 이현수(서현진 분)라는 메인 러브라인이 디테일하게 들어가지 못하고 10~20년전에 보던 멜로물의 삼각관계 갈등구도로 돌아선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하명희 작가가 대사 한마디마다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만 하나, 이런 구도로는 멜로 자체를 즐기는 소수의 사람 외에는 진부한 스토리에 드라마가 진행이 안되는 듯한 지루한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러니 악역이 생기게 된다. 23일 방송에서 김재욱이 양세종에게 반지 케이크를 부탁하는 시퀸스는 굳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
‘닥터스’는 윤균상과 김래원 두 남자 모두 윈윈했다. 박신혜와 사랑이 이뤄져도 좋았고, 이뤄지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사랑의 온도’에서는 그러기 어렵게 됐다. 벌써부터 보기 불편한 부분이 있다. 박신혜도 윤균상에게 김래원을 사랑한다고 분명히 표현했고, 서현진도 김재욱(박정우 대표)에게 좋아하는 다른 남자가 있다고 했는데도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때문일까? 결과적으로 서현진은 김재욱에게 “나는 온정선을 사랑한다”고 딱 부러지게 말한 후 철벽을 치지 않고 업무관계로 밤 12시에도 김재욱과 함께 함으로써 미필적 고의의 ‘신(新) 어장 관리’ 느낌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현진은 조금씩 ‘민폐여주’가 돼가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현진의 ‘여자짓’은 더 이상 보기 싫어진다. ‘또 오해영’에서는 마지막까지 서현진의 ‘여자짓‘을 한번 더 보고싶었다.
김재욱은 서현진이 “대표님 존경해요”라는 말을 과잉(?) 해석한 것일까. 존경할만한 남자와 사랑하겠다고 받아들인 것일까? 여성들은 사랑하지 않는 또래 남성에게는 ‘존경한다’는 말은 이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여성은 사랑의 감정이 어떻건 남자가 대쉬하면 되는 존재라는 것인가.
그렇지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사랑의 구도로는 좋은 해석이 나오지 않는다.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구도다. 좋은 형과 좋은 동생 관계인 두사람이 한 여자를 놓고 황폐해지는 걸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김재욱을 삼각 치정관계의 한 축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순수하고 멋있는 인간으로 그려왔다. 김재욱이 연기하는 박정우 대표는 현수가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4년동안이나 옆을 지켜주며 페어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성숙한 어른 남자를 보는 듯했다.
초반만 해도 잔잔하고 예쁜 사랑을 그려갈 수 있었지만, 이제 그렇게 되기 힘들어졌다. ‘사랑의 온도’는 우당탕한 드라마보다는 미세한 감정선을 잘 살려나가는 20~40대 여성 취향 드라마를 그려내기 위한 드라마로 제시됐다.
하지만 감정선을 잘 끌고가지 못해 이야기가 막힌 느낌도 나고, 그들만의 멜로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20부작까지 가야 하는데, 12부작으로 끝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댓글은 그런 의견을 반영한 듯하다.
그 점에서는 ‘사랑의 온도’는 하명희 작가의 전작인 ‘닥터스’ ‘따뜻한 말한마디’가 보여준 멜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성장이 아니라 퇴보라고 할 수 있다. 하 작가가 과거 썼던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의 트렌디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
어쨌든 ‘사랑의 온도’가 20부작까지 가기 위해서는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방식(삼각 사각 갈등의 심화와 급해결)을 사용하지 말길 바란다. 굳이 갈등을 강화하지 않아도, 각을 세우지 않아도 각자의 심리와 디테일만으로도 잘 끌고갈 수 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