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부실기업 코로나 이전부터 ‘초고속’ 증가…20개국 중 2위

[헤럴드경제 정순식·김현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인 지난해 이미 우리나라의 부실기업이 급증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부실기업 증가율은 주요국 중 2위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여파로 각국 기업의 파산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재무악화에 따른 신용등급 강등이 잇따르고 있어 국내 부실기업과 구조조정 기업들의 증가폭은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韓 한계기업 증가세 일본 다음으로 높아=9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2015년~2019년 외부 감사를 받은 국내 비금융기업 2만764개사의 재무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수는 2018년 2556개사에서 지난해 3011개사로 17.8% 늘어났다.

이를 상장사로 범위를 좁히면 한계기업의 증가속도는 더욱 두드러진다. 전체상장사 수가 30개 미만인 국가와 조세회피처를 제외한 20개국의 세계 주요 거래소 상장 기업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한계기업 증가율이 두 번째로 높았다.

우리나라 상장사 중 한계기업 수는 2018년 74개사에서 작년 90개사로 21.6% 증가해 일본(33.3%) 다음이었다. 국내 상장기업 중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주요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증가 속도가 가파른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면서 부실기업들의 파산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지난 5월 미국에선 의류브랜드 제이크루, 백화점 체인 니먼 마커스와 JC페니, 렌터카 업체 허츠가 파산을 신청했다.

프랑스에서도 코로나19 발생 이후 파산과 법정관리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가구 및 장식품 체인 알리네아는 마르세이유 상업법원에 지불정지를 신청했고, 남성 기성복그룹 셀리오와 고급 식품점 포숑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계기업 올해 더욱 폭증…韓 대기업들 줄줄이 신용등급 강등= 한계기업의 증가 기조는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친 올해 더욱 두드러질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신용평가사의 상반기 정기평가가 마무리되면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 마저도 신용등급 강등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항공사들은 파산 직전의 절체절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최근 제주항공과 인수를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이스타항공은 직원들의 임금은 물론 한국공항공사에 공항사용료까지 내지 못하는 처지다. 공사의 의뢰로 고려신용정보 평가가 매긴 이스타항공 신용등급은 ‘최악’에 해당하는 CCC등급(현재 시점에서 채무불이행 가능성 내포)으로 나타났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으로의 인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사실상 파산의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 또한 이같은 위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대한항공은 기내식 사업과 기내면세품 판매 사업을 매각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앞두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대한항공에 대해 장기 신용등급을 ‘BBB+’로 유지하되,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반영해 등급전망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할 경우 기업이 생사 기로에 설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에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등급 전망을 ‘상향검토’에서 ‘미확정검토’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물동량 감소에 따른 직격탄으로 휘청이는 해운업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국내 해운업계 5위인 흥아해운은 지난 3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결국 흥아해운도 이스타항공처럼 신용등급이 CCC로 강등됐다.

정부로부터 3조6000억원을 지원 받으며 가까스로 유동성을 확보한 두산그룹 또한 주요 계열사들이 줄줄이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정기평가를 통해 ㈜두산과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을 각각 BBB, BBB-로 내렸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자생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에 따른 악영향까지 받고 있다”라며 “올해는 코로나19로 한계기업이 더욱 증가하는 상황인 만큼 정부가 규제 완화 등으로 대응 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경연은 이에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이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개선해 상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촉법은 채권단 100%가 찬성해야 구조조정이 가능한 자율협약과 달리 75%만 찬성해도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해 법정관리보다 신속하게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다.

김윤경 한경연 연구위원은 "기업의 재무상황, 사업기회 등의 차이를 반영한 다양한 구조조정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며 "회생절차를 이용 시 부실기업이라는 낙인과 불필요한 고용축소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촉법을 개선함과 동시에 상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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