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화에 핫팩 칭칭…칼바람 맞으며 일해 9만원 벌었다

지난 7일 오전 7시께 경기도의 한 쿠팡 물류센터에 도착한 출근자들 모습. 구인난이라는 향간의 이야기에 맞지 않게 일용직 일자리도 경쟁이 심하다. 이날 출근을 확정받기 전에 20여곳에 지원했으나 모두 지원 마감이고 단 한 곳에서만 출근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건비 부담에 직원을 내보자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한 단면으로 보인다. 이민경 기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초짜 티를 냈다. 팔토시, 앞치마, 신발 깔창, 핫팩을 들고 왔어야 했다. 고참들은 딱딱한 안전화 안에 폭신한 깔창을 넣고, 롱패딩의 소매 시보리가 닳을까 팔토시를 장착했으며, 옷을 버리지 않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안전화 위에 핫팩을 붙인 후 박스테이프로 동여매 언 발을 녹였다. ‘패션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근무 시작 30분 경과 후, 그것들이 ‘생존템’이었음을 깨달았다.

기온이 전날 대비 뚝 떨어져 춥게 느껴졌던 지난 7일, 기자는 경기도의 한 쿠팡 센터에서 단기직(일용직) 주간조(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일했다.

일용직으로 처음 온 사람들 30여명은 한 곳에 모여 1시간 가까이 안전 교육 등을 들어야 했다. 함께 교육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중년과 20대 초반 청년으로 나뉘었다.

특히 중년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77년생 주부 A씨는 이전에도 간간이 쿠팡 단기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 경제가 안 좋다. 남편 수입으로는 생활이 힘들다”고 말했다. 또 “이전에 음식점을 창업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됐다”고 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04년생도 있었다. 그는 “카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면접에서 자꾸만 떨어진다”며 “사고싶고 하고싶은 것이 많아 돈을 벌어야 하는데 쿠팡 일용직은 아무것도 안 보고 뽑으니까, 하루 고생하고 돈 벌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10시간(1시간 휴게시간)을 일하면 은행계좌에 들어오는 돈은 9만~11만원 남짓이다. 통상 일당이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일용직에 지원하기에 쿠팡 일자리는 취소자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배정된 업무는 반품된 물건을 꺼내어 검수하고, 이 물건을 중고로 되팔 수 있을지, 폐기처분할 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작업자 한 명당 바코드가 연결된 컴퓨터와 작업대를 할당받았다. 옆에는 긴 컨베이어벨트가 지나갔다.

지급된 목장갑은 커터칼의 날에 손이 베이지 않게 보호해줬지만, 칼바람에 손이 에는 것까지는 막아주지 못했다. 작업장 바로 옆에서 물건을 실은 트럭이 지나다니고 있기에 실내와 실외를 구분짓는 것이 무의미했다.

전국 각지에서 반품된 물건이 2m 높이로 작업자 옆에 탑처럼 쌓였다. 랩핑을 뜯고 박스를 하나씩 뜯어 물건을 검수했다. 퇴근 전까지도 탑을 다 해체하지 못했다. 나머지 일감은 오후 5시58분에 옆에서 대기하던 오후조(오후6시~오전4시) 근무자가 처리했을 테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달린다. 폐박스를 수거하는 사람도, 손수레로 일거리를 가져다 주는 사람도, 관리자도 달린다. 물건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안내방송이 울리자 모두가 전력질주를 했다. 1시간의 휴게시간을 알차게 쓰려면 식당에 빨리 도착하는게 무조건 이득이다.

음료수를 300~400원 가격대에 팔고 있는 근로자 휴게실 내 자판기 모습. 이민경 기자

함께 내달려 식당에 도착해 식판을 집었다. 특별하지 않은 학교 급식과 같았지만 인기 반찬인 꼬마돈까스는 1인당 8개로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조금 더 많이 가져가면 제재를 받았다. 밥을 다 먹은 사람들은 또다시 달렸다. 이번 목적지는 휴게실이다. 서둘러 양치하고 300원 자판기 음료수를 마시며 사물함에 두고 온 휴대폰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50분이 쏜살같이 지났고 1시 50분께가 되자 슬슬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눈치였다.

밥 먹기 직전, 오후에 조퇴를 할까 고민했지만 밥을 먹고 돌아오니 4시간만 더 버텨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오전보다 일이 손에 익어 점차 속도도 붙었다. 무엇보다 조퇴를 하면 집까지 교통비가 더 든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일당 9만원을 온전히 번 것이 될 거라는 생각에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추위에 발에 감각이 사라지고, 시간 개념을 잃은 채 반복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업장으로 들어왔다. 서로를 아는 듯한 중년 아주머니 무리는 “오늘 하루 힘내보자”며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었다. 그들의 출근 인사가 ‘오늘 하루 드디어 끝났다’는 퇴근 인사로 들려왔다.

안전화를 반납하고 내려간 주차장에는 45인승 관광버스 수십 대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사분란하게 새벽에 타고 온 버스를 찾아 탔다. 오후 6시20분 앞줄부터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 유리창 너머로 석양이 졌다.

‘일할 사람이 없다’는 소상공인들의 한탄이 흔하다. 하지만 막상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뒤져보니 채용 글을 찾기 어려웠다. 특히 서울 시내에 있으면서 따뜻한 실내에서 일할 수 있는 카페, 베이커리, 식당 아르바이트는 전무 하다시피 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물가 고공행진으로 ‘나홀로 사장님’이 늘어난 여파로 보인다.

대신 쿠팡, 컬리 등 물류센터 채용 글은 수십건씩 도배하다시피 올라와 있었다. 여기만은 구인난이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구직난이 있었다. 20곳에 지원했지만 번번히 ‘지원이 마감됐다’, ‘T/O(빈자리)가 없다’는 답장만 돌아왔다. 쿠팡 알바가 이렇게 인기가 좋았는지 몰랐다. 딱 한 곳에서 채용 확정을 받고 근무했다. 새해 벽두, 여전히 일자리가(돈이) 필요한 사람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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