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후 관내 술에 취한 시민을 놔둔 채 철수했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한 파출소를 점검차 방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일하다 잘못되면 경찰청에서 보상해 준다는 공지사항은 다 거짓말이네요.”
한 경찰서 소속 경사의 푸념이다. 한파 속 계단에 방치돼 있던 취객이 사망한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2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자, 일선 경찰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14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 경사와 B 경장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30일 새벽 112 신고를 받고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던 60대 남성 A씨를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 야외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가 A씨가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됐다. 두 사람은 따로 감봉 및 견책 경징계 처분까지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판결이 알려진 이후 일선 경찰들의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 내부 게시판과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주취자 관련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한 경찰은 “(주취자 사건을)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 사건이) 남아있는 애정마저도 다 식게 만드는 사건인 것 같다”라며 “능력있는 사람들은 그냥 다 이 조직을 떠나는 게 맞다. 이래도 꾸역꾸역 경찰 할래? 라고 묻는듯한 기분”이라고 썼다.
다른 경찰은 “주취자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서 귀가한 것을 왜 경찰에게 책임지게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검찰에 넘긴 동료 경찰도, 약식 기소한 검찰도 다 문제다. 나쁜 선례를 남겼다”라고 비판했다.
일부 경찰들은 “주취자를 다세대 주택 안까지 데리고 가서 이불까지 덮어줘야 하는거냐”라며 “해장라면까지 끓여주고 와야 칭찬 플랫폼에 올라올 것 같다”라며 자조하기도 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경찰청 탭 갈무리 |
현재 주취자를 대상으로 한 규정은 ‘경찰 직무집행법’에 나와 있다. 경찰 직무집행법 4조에는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보호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지침이 없기 때문에 지휘부 ‘현장 매뉴얼’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바뀐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에는 ‘정상적인 판단·의사능력이 없는 주취자는 소방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 응급의료센터 등 의료기관으로 옮긴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주취자 관련한 병상 부족으로 모든 신고를 감당하기 역부족이란게 현장 경찰 다수의 설명이다. 경찰에 따르면 주취자 관련 신고는 연간 90만 건에 달한다.
경찰은 주취자 보호조치 관련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현재 국회에는 ‘주취자 보호법’과 관련된 법안 4건이 6개월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의 주된 내용은 경찰·소방·지자체 및 의료기관 등 유관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주취자를 보호하는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장의 불만에 윤희근 경찰청장은 진화에 나섰다. 윤 청장은 전날 주재한 주간 업무 회의에서 “(해당 사건을 보고)청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실감한다. 법무와 감찰, 범죄 예방을 포함한 관련 기능에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