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릴지 몰라도 포기 않는다”…언더독 김상겸, 12년을 밀어붙여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다[2026 동계올림픽]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언더독
400번째 메달의 주인공
‘자신을 믿어라’가 만든 은빛 결말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결승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상겸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정주원]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은 가장 오래 기다린 선수에게 돌아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언더독의 이름, 한국 스노보드 알파인의 맏형 김상겸(37)이었다. 김상겸은 8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선수단에 대회 첫 메달을 안겼다. 이 은메달은 동·하계를 통틀어 대한민국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로도 기록됐다.

김상겸은 결승에서 오스트리아의 베테랑 베냐민 카를에게 0.19초 차로 밀렸다. 카를은 2022 베이징에 이어 올림픽 평행대회전 2연패를 완성한 ‘절대 강자’다. 금메달에는 닿지 못했지만 김상겸의 은메달은 2018 평창에서 이상호가 따낸 은메달 이후 8년 만에 같은 종목에서 나온 한국 스키·스노보드의 올림픽 메달이자 설상 종목 공동 최고 성적이다.

김상겸이 시상대에 올라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

이번 결과가 더 특별한 이유는 출발선에서의 평가 때문이기도 하다. 메달 전망표의 중심에는 후배 이상호가 있었고 김상겸은 늘 뒷순위였다. 예선을 8위로 통과한 그는 토너먼트에서 판을 뒤집었다. 8강에서는 이번 시즌 월드컵 순위 1위이자 개최국의 최고령 베테랑 롤란드 피슈날러를 넘었고, 준결승에서도 신예를 제치며 결승에 올랐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언더독의 반란이었다.

김상겸의 가능성이 처음 국제무대에서 증명된 순간은 2011년이었다. 그는 터키 에르주룸에서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로서도 최고 성적이자 김상겸 개인의 첫 국제대회 메달이었다. 당시만 해도 실업팀조차 없어 생계를 걱정하던 시기였지만, 이 금메달은 김상겸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이정표였다.

김상겸의 커리어는 늘 험난했다. 어린 시절 천식으로 병원 신세를 지던 그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중학교 때 스노보드를 잡았다. 종목의 저변은 얕았고 지원은 넉넉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이 없어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로 훈련비를 벌던 시절도 있었다. 2014 소치, 2018 평창, 2022 베이징 세 번의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모두 시상대 문턱에서 멈추고 말았다.

김상겸이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겸, 베냐민 카를(오스트리아), 테르벨 잠피로프(불가리아)의 모습. [연합]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네 번째 올림픽, 37세에 찾아온 첫 메달이었다. 경기 후 김상겸은 “마침내 해냈다.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오랜 시간을 함께 버텨준 아내에게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꾸준함으로 버텨온 선수의 진심이었다.

금메달은 카를의 2연패로 기록됐지만, 이번 대회의 첫 이야기를 쓴 이는 김상겸이었다. 아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름이 만든 반전. 이번 올림픽을 앞둔 사전 인터뷰에서 김상겸은 자신을 “느릴지 몰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좌우명으로는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를 꼽았다. 늘 후순위에 놓였고 쉽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 믿음과 버팀이 마침내 네 번째 올림픽에서 첫 메달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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