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말’의 재미…‘토크쇼’의 부활

숏폼의 범람 속 ‘긴 호흡’ 토크쇼 주목
강호동 토크쇼 MC 컴백·‘유퀴즈’ 롱런
‘핑계고’·‘짠한형’ 등 수다형 콘텐츠 인기
“콘텐츠의 일상화로 ‘듣는 재미’ 부상”

 

[쿠팡플레이, SBS, tvN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잔잔한 대화 속 가공되지 않은 웃음이 경쾌함을 더한다. 그저 남들 사는 이야기일 뿐인데도 재미와 감동, 때로는 뭉클함이 물 흐르듯 교차한다. 고자극의 무언가 대신 타인의 경험과 인생으로 채워지는 시간, 그 중심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 즉 ‘말’이 있다.

‘말’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시대는 지난 듯 보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숏폼의 대중화는 시각을 자극하고 압도하는 콘텐츠의 범람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맥락보다 순간의 자극과 화려함을 좇는 취향이 만연해졌다. 어느 때보다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하는 ‘즉각성의 시대’. 한때 대중을 울고 웃겼던 ‘말의 시대’는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는 ‘말의 시대’의 부활을 기대하게 하는 변화들이 눈에 띈다. ‘무릎팍 도사’와 ‘힐링캠프’ 등 2010년대 예능을 이끌었던 토크쇼 유형의 프로그램들이 다시 늘어나고, 그것이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게스트의 인생과 경험을 ‘말’로 풀어내며 대중의 공감을 얻었던 과거의 방식이, 빠름이 최고의 덕목이었던 시대를 넘어 다시 안방극장으로 소환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쿠팡플레이 ‘강호동네 서점’ 이세돌 편 [쿠팡플레이 제공]

말과 입담 시대의 부활을 알리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무릎팍 도사’로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민 MC’ 강호동의 토크쇼 복귀다. 강호동은 지난달 6일 첫 방송된 쿠팡플레이 ‘강호동네 서점’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MBC ‘무릎팍 도사’가 2013년 종영한 이후 13년 만의 단독 토크쇼다.

‘강호동네 서점’은 자칭 ‘호크라테스’ 강호동이 ‘인생 책 한 권’을 들고 책방을 찾아온 손님과 서로의 인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첫 손님 배우 하정우를 필두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로 얼굴을 알린 옥동식 셰프, 이세돌 전 바둑기사, ‘대도시의 사랑법’의 박상영 작가, 악뮤(AKMU) 등 톱스타부터 예능에서 보기 어려웠던 인물들까지 다양한 인사들이 책방을 찾았다. 24일 공개되는 8회에서는 소리꾼 이자람과의 시간이 예고돼 있다.

호스트 강호동과 게스트가 낮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가는 40여 분의 이 토크쇼가 가진 차별점은 편안함과 진솔함이다. 오로지 대화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강호동의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질문, 그리고 이와 어우러진 게스트의 철학과 인생에 대한 고백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자극이 없는 대신 깊이가 있는 ‘인생 인터뷰형 토크쇼’다.

어느덧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 퀴즈’)은 오늘날 토크쇼 부활 움직임의 선봉에 서 있다. 2018년 첫 시즌이 공개된 후 올해 7주년을 맞은 ‘유 퀴즈’는 포맷 변경과 MC 하차 논란을 돌파하며 여전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340회 [tvN 제공]

실제로 지난 22일 ‘비로소 보인다’ 특집으로 방송된 340회는 전국 가구 기준 최고 6.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종편 포함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고,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FUNdex) 조사 TV 비드라마 화제성 부문에서도 4월 3주차 정상에 올랐다.

비록 찾아가는 토크쇼에서 섭외 토크쇼로 모양새는 바뀌었지만, ‘유 퀴즈’는 유명인과 일반인을 막론한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지키며 두터운 시청층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출연한 ‘메릴 스트립’부터 ‘빌 게이츠’까지 해외 유명 인사들이 내한하면 반드시 거쳐 가는 프로그램이 됐음에도, ‘유 퀴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게스트의 절반가량을 일반인으로 채우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SNS에서는 화제가 되거나 눈에 띄는 일반인이 나타나면 ‘유 퀴즈에서 곧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댓글이 어느새 밈(meme)처럼 굳어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더 큰 감동을 이끌어 내는 ‘공감형 토크쇼’의 성공 사례다.

제작진은 헤럴드경제에 “‘유 퀴즈’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한 사람의 삶을 차분히 복원해 내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결국 시청자에게 남는 건 그 사람의 인생과 태도이기 때문에, 이 점이 ‘유 퀴즈’를 오래가게 만든 힘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처음 방송된 SBS ‘최강로드-식포일러’(이하 ‘식포일러’)도 이러한 토크쇼의 연장선에 있다. ‘식포일러’는 ‘흑백요리사 2’에서 재도전자들로 출연했던 최강록·김도윤 셰프와 래퍼 겸 방송인 데프콘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각자의 경험과 비법을 바탕으로 감춰진 맛의 비밀을 밝히는 신개념 미식 예능이다.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인 ‘맛’과 ‘요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이 아닌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특정 지역을 찾아가 음식을 맛보고, 그 맛의 원천이 된 식재료와 숨겨진 비밀에 대해 셰프들이 들려주는 미식 토크는 이 프로그램이 강조하는 타 요리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이다.

SBS ‘최강로드-식포일러’ 방송 화면 [SBS 제공]

더불어 식재료와 맛의 비밀을 둘러싼 두 셰프의 ‘티키타카’도 프로그램의 매력 중 하나다. 1회 방송에서는 최강록 셰프가 지리산 흑돼지 카레를 선보이며 “숙성 없이도 밑간 후 구우면 충분한 맛이 난다”고 말하자, 김도윤 셰프가 “그래도 숙성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나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제작진도 ‘식포일러’가 생산자 입장에서 전하는 진솔한 ‘미식 토크쇼’임을 강조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손정민 PD는 지난 17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다른 음식 프로그램들처럼 화려하게 잘 말하지도 못하고 맛있게 먹지도 못한다”면서도 “소비자 입장이 아닌 생산자 입장에서 맛의 비밀을 진심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밥 친구처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유튜브에서는 유재석이 진행하는 채널 뜬뜬의 ‘핑계고’, 채널 십오야의 ‘나불나불’, 신동엽의 ‘짠한형’ 등 호스트와 게스트 간의 ‘수다’가 전부인 콘텐츠들이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며 가장 ‘핫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핑계고’의 경우 주지훈과 김남길, 윤경호가 출연한 1시간 54분까리 에피소드의 조회수가 1278만회(23일 기준)에 달한다. 릴스, 숏폼의 유행과는 반대로, 토크쇼와 롱폼이 결합으로 이뤄진 새로운 바람이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핑계고’ 100번째 에피소드 [‘핑계고’ 화면 갈무리]

업계는 이를 자극적인 숏폼에 대한 반작용이자, 콘텐츠가 일상과 가까워지며 생겨난 변화로 분석한다. 한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 관계자는 “유튜브의 경우 많은 사람이 팟캐스트나 음악 앱처럼 굳이 보지 않더라도 들으면서 밥을 먹거나, 화장을 하거나, 운전을 하는 등 일상을 함께 보내는 매체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콘텐츠의 일상화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듣는 재미가 다시 주목받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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