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전 수석연구원 A씨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법원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삼성전자 임직원의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으로 국가 핵심기술 탈취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정작 법적 처벌수위는 ‘솜방망이’에 그쳐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중국이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앞세워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 유출마저 통제하지 못하면 자칫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수 있다며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18일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20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대해 법원이 1심 판결을 내린 114건 중 유기형을 선고한 사건은 12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집행유예(40건) 또는 벌금형(11건)에 집중됐다. 다시 말해 실형 선고 비중이 10% 수준에 그친 셈이다.
법적 처벌수위가 느슨한 반면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다 적발된 건수가 한 해에 3~6건 수준이었으나 2023년엔 13건으로 집계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8년간 적발한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 165건 중 39건이 반도체 업종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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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직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은 2014년 삼성전자가 독자 개발한 20나노 D램 반도체 기술 공정을 중국 반도체 업체 청두가오전에 넘긴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청두가오전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삼성전자·하이닉스 임원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등을 유출·사용한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돼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또한 전직 삼성전자 부장은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를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유출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리기도 했다.
반도체 외 다른 산업에서도 기술 빼돌리기 사례는 늘고 있다. 경남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대우조선해양 전 직원이 잠수함 설계도면을 대만에 넘긴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처럼 해외 기술유출 시도가 끊이지 않으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할 경우 징역 15년 이하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국가 핵심기술이면 3년 이상 징역, 15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 양형기준은 기본 1년~3년6개월, 가중 2년~6년으로 규정하고 있어 법정형보다 현저히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앞서 산업부는 양형기준을 3년 6개월~5년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시키도 했다.
산업계가 기술유출 범죄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데다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기술유출범죄 양형기준 상향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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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도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외국에서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도’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현행법은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기술을 유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사용되게 할 목적’을 입증하는 것이 까다로워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홍석준 의원은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범죄 목적을 입증하기가 까다로워 범죄 예방에 한계가 있었다”며 “현재 검토 중인 기술침해범죄 양형이 강화돼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술유출범죄에 강력히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