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수련 중인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안’ 저지를 위해 집단 사표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면허 취소’를 언급하며 초강경 대응을 공언했다. 이에 대해 전공의들은 “내가 싫어 계약 연장을 안 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이유로 쓰는 사표도 현행법이 금지하는 ‘진료 거부’”라고 했다.
17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따르면 빅5 병원 전공의들은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10명이 사직 후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10명 모두에게 처분이 내려질 것이고, 명령 불응에 따른 고발로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판결만 나와도 면허 취소까지 가능하다"며 "정부는 굉장히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개시 명령은 의료법 59조 2항에 명시돼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 3항에는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업무개시 명령을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고 벌칙 조항에는 3항을 위반했을 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강경하게 나올 수 있는 법적 근거다. 다만 전공의들도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진료를 중단할 수 있다. 정부는 ▷환자가 의료인의 치료를 따르지 않거나 새로운 치료가 어려운 경우 ▷의료인이 환자를 치료할 만한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경우 정도 등을 정당한 사유로 본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건강 문제나 일신상 이유 등의 개인적 사유로 사표를 제출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법조계에선 정부가 ‘개인이 일을 그만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표를 내는 건 직업인으로서 가지는 자유의사인 만큼 사직서가 업무개시명령 거부에 해당하는지를, 정부가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채다은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에는 직업을 가질 자유도 있지만 그 직업을 그만둘 자유도 포함하는 것”이라며 “사직서를 내는 것까지 국가가 나서서 제지하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사표 제출이 ‘진료 거부의 구체적 행위’로 연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개별 병원에 “집단 사직서를 수리하지 말라”고 내린 명령의 정당성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의 인사업무를 방해하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전문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겠다는 것 그 자체는 최후의 저항권을 표시하는 것인데 우려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에 근거해 집단행동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겁박용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집단행동도 일종의 저항권 내지는 의사의 표시인데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역시 “공무원도 노동 3권 중 단체행동권만 제한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인데 공무원도 아니고 의사들의 노동 3권 자체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 7일 의사 집단행동 중수본에서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행정명령서를 반송하거나 수신하지 않았을 경우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이 발생하는 지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일부 전공의들은 행정명령서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읽지 않거나 반송처리하고 있다. 행정명령 발동에서 중요한 쟁점이 대상자에게 적법 절차로 ‘도달’했느냐이기 때문이다. 실제 법원은 송달의 절차적 요건을 중요하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