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구급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전날 강원도에서 응급환자가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3시간 동안 표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연합]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 “지난 20일 입원, 21일 수술 예정이었는데 취소됐습니다. 시기를 놓쳐서 간 이식으로 넘어갈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습니다.”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A씨는 항암 치료가 종료된 지 두 달 만에 암이 간으로 전이돼 수술을 앞두고 있었지만, 의대정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이어지면서 수술 시기가 연기됐다.
#2.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는 당뇨환자 B씨는 지난 21일 오전 11시 30분께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괴사가 일어났다. 119에 도움을 요청했고, 구급차가 B씨를 태우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았지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했다. 구급차가 도축한 병원마다 “전공의 부재로 수술이 어렵다”며 이송을 권유한 탓이다. 구급차는 3시간 30분 동안 수백㎞를 떠돌다 겨우 치료를 받았다.
정부와 의사들이 국민을 볼모로 잡고 서로 양보를 요구하는 대립이 지속되면서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위협을 느끼는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정부가 의사 집단행동 기간에 한시적으로 건강보험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보건의료위기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최상위인 ‘심각’으로 올렸다. 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어 범정부 대응을 강화한다.
23일 정부에 따르면 국내 전공의 대부분이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지난 21일까지 9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체 전공의 규모가 1만3000명이므로, 10명 중 7명 이상이 사직서를 낸 셈이다. 이들 100개 병원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8024명으로, 하루 전보다 211명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의사면허 정지’를, 법무부는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내세우며 압박에 나섰지만,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전공의들의 근무지 이탈이 나흘째 지속되고 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상황만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 피해는 환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정부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날 한시적으로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지원을 100% 인상키로 했다. 50개 권역·전문 응급의료센터에서 내원 후 24시간 수술 시 적용하던 가산수가를 100%에서 150%로 인상하고, 적용대상도 지역응급의료센터 110곳으로 확대했다.
문제는 이런 대책은 ‘임시방편’이라는 점이다. 갈등의 핵심인 의대정원 확대 규모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논의는 한 발도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감정적 대응만 지속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2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 |
전날 정부는 위기평가회의를 열고 23일 보건의료위기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최상위인 ‘심각’으로 올리기로 했다. 복지부는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을 설치하고,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로 올린 바 있다. 위기 단계를 격상하고 관련 회의도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으로 변경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총리 주재 회의체인 중대본을 열어 여러 관계 부처와 지자체를 아우르는 대응을 강화할 계획이다. 한 총리는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현재 의대 정원은 30년 전인 1994년보다도 적고, 국민 여론은 증원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며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무리한 증원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앞서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규모를 ‘매년 2000명 증원’으로 정할 당시 참고한 보고서 3개를 작성한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은 정부가 내놓은 매년 2000명 증원 방안에 대해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부도 의료계의 숙원인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정비를 포함한 구체적인 필수의료 대책을 내놓고 의사들을 설득해야 한다고도 했다. 홍 교수는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국민을 볼모로 잡고 서로 양보하라고 해선 안 된다”며 “수도권은 한 명도 증원하지 않고 지역에서만 증원을 한다면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