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글로 쓰는 사랑하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대졸이시다. 세계적인 고학력 사회 대한민국에서 대졸이 자랑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84세 대졸은 자랑할만하다.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4년을 꼬박 수업에 출석하고 시험도 치면서 졸업하셨다. 84학번인 아들의 뒤를 이어 84세에 학사가 되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아들과 다르게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셨다. 손주뻘 되는 동기들 사이에서 장학금을 계속 받은 이유는 산학협력 장학생으로 입학하신 덕분이다.

어머니는 최고령 요양보호사이시다. 암 투병 중인 남편을 간호하면서 요양보호사 제도를 알게 되셨다. 남편을 보내고 74세에 필자의 고시 공부 시절이 부끄러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합격하셨다. 단순히 자격증만 취득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하셨다. 그 과정에서 업무의 폭이 더 넓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 산학협력제도를 통하여 관련 학과에 진학하신 것이다.

필자는 2020년 1월 14일 헤럴드경제 ‘라이프칼럼’에 “언제까지 공부할 것인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어머님이 대학에 진학하신 것을 알고는 2020년 5월 12일 “정말 공부는 끝이 없다”라는 글도 썼다. 혹시 만학을 꿈꾸거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독자 여러분은 위 칼럼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새로운 삶의 세계를 소개받는 행운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수고에 대한 작은 보답이다.

지난 2월 22일 최고령 졸업생인 어머니의 학위수여식이 있었다. 평생을 아들 졸업식에 참석해주신 어머니시다. 아들 된 도리로 당연히 직접 축하해야 했는데 참석하지 못했다. 같은 시간 한국스카우트연맹 정기총회에서 총재로 선출되느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 대원이었다. 알록달록한 항건을 두른 멋진 단복은 한때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스카우트인 것이 자랑스러워 매일 학교에 입고 오던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다. 제복비와 등록비가 부담스러운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을 알기에 부모님께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세를 살고 있던 주인집 딸이 걸스카우트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무심코 부러움을 표시하였더니 어머니께서 즉시 보이스카우트에 가입시켜 주셨다.

보이스카우트 활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야영 등 단체생활을 통하여 협동 정신과 독립심을 배웠다. 수많은 스카우트 관련 자격증을 따면서 끈기와 성실함을 배웠다. 잼버리 참가를 통해 난생처음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이 넓다는 것을 배웠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도전정신을 배웠다. 리더는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구성원을 배려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나는 나의 명예를 걸고”라는 스카우트 선서의 첫 문구는 평생동안 삶의 원칙이 되었다. 살면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혼란스러울 때는 항상 지금 하는 결정이 나의 명예를 걸 수 있을 만큼 올바른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명예는 순간적이거나 개인적인 이익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 스카우트에서 배웠다.

AI 시대에 자녀를 리더로 만들고 싶으면 자녀에게 스카우트 활동을 시켜보길 권한다. 공부 잘하면 성공하는 시대를 살아왔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공부는 어찌 보면 암기력 테스트였을 뿐이다.

정성평가가 공정성 시비 끝에 매번 후퇴하는 교육제도 아래서, 가장 말이 없는 방법은 정량적으로 계산된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천재라도 지식의 저장량에서 따라갈 수 없는 AI 시대이다.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에게 입시학원의 좁은 강의실에서 AI가 몇 초 만에 해결해주는 지식을 암기하느라 정신과 신체를 병들게 할 수는 없다. 대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책에 없는 지혜를 나누며 도전과 개척의 정신을 배운 청소년이 미래를 이끌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인생은 우연 같아도 필연이다. 어머니는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어린 아들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길을 열어주셨다. 보이스카우트가 되고 싶었던 아들은 끊임없는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자라서 스카우트연맹 총재가 되었다.

귀중한 지면을 개인적인 일화로 채워 미안하지만, 2018년 3월 6일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펑크 없이 칼럼을 기고해왔다. 이러한 성실과 열정의 유전자를 물러주신 어머님에 대한 헌사 한번은 기꺼이 할애해주리라 믿는다.

공부가 끝이 없는 것처럼 자식 사랑도 끝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어머님의 사랑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선해하여 주면 고맙겠다.

지금까지 만6년을 꼬박 쓴 칼럼인데 오늘 글쓰기가 참 힘들다. 미안함 때문인지 감사함 때문인지. 나는 왜 이순이 다 되도록 어머님께 사랑한다는 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릴까.

이찬희 변호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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