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올라타자’ 상장사들 자사주 벌써 2조원 소각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주주환원 관심이 커지자 올 들어 벌써 상장사들은 2조원 넘는 자사주 소각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가 예상되며 여기에 추후 예정 물량까지 더하면 5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오는 5월초 예정된 밸류업 가이드라인 발표에 맞춰 자사주 관련 시행령 개정도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2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자기 주식 소각을 마친 상장사(코스피·코스닥)는 총 24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곳)보다 11곳이 증가했다. 이 기간 소각을 마친 규모는 총 2조2164억원이다. 지난해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상장사들이 공시한 자사주 소각 금액은 2조1352억원에 달했는데, 1분기만 놓고 보더라도 자사주 소각 금액이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배당확대·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을 독려하면서 기업들도 ‘밸류업’ 대열에 하나둘 합류하고 있다는 평가다. 월별 추이를 살펴보면, 올 1월 6곳에 그쳤던 자사주 소각 기업 수는 지난달 정부가 ‘밸류업’ 윤곽을 보여주면서 이달(20일까지) 13곳까지 늘어났다. 2월(5곳)과 비교하면 2배 넘게 늘었다.

기업들도 자사주 소각 규모를 더 늘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7936억원 규모(491만9974주)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SK텔레콤도 2000억원(404만주)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그러자 하나증권은 “시가총액 대비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를 고려한다면 국내 최고 수준의 주주이익환원이 기대된다”고 반겼다. 이 밖에도 4대 금융 지주(KB·신한·하나·우리)를 포함해 이달에만 ▷KT&G ▷미래에셋증권 ▷에스엠 등이 자사주를 소각했다. 여기에 소각 예정 물량까지 더하면 총 4조9000억원 규모를 웃돌 것으로 집계된다.

자사주 소각 규모도 세제 지원에 힘입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20일 기업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을 확대하면 기존보다 증가한 금액에 대해선 일정한 수준의 법인세 감면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물산이 1조원(감자를 통한 소각 계획 포함)으로 가장 크고 키움증권은 3년간 자사주 210만주를 분할 소각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을 선제적으로 실행하겠다는 취지다.

시장에선 자사주 제도 정비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금융당국은 기업들의 부담을 고려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주주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를 방지하고 주주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명재엽 KCGI운용 주식운용팀장은 “자사주 소각에 따른 법인세 혜택 등의 유인책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금지, 자사주 관련 공시강화 등 자사주의 유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도 ‘밸류업’ 발표 시기에 맞춰 속도감 있게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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