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애국자네. 애국자야’ 소리. 10번은 들어요.”
7월 셋째 출산이 예정된 만삭의 김도연(가명) 씨는 최근 아이 둘 손을 잡고 동네 마트 가는 것이 싫어졌다. 길거리를 오며가며 듣는 주변인의 ‘애국자 칭찬’이 너무 과도해서다. 한 번 두 번은 칭찬이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애국자 칭찬’은 좋아하던 마트 쇼핑에 있어 또 다른 부담이 됐다. 김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4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2세 유아의 엄마다. 아이들이 하원하는 오후 4시께 만삭으로 아이 둘 손을 잡고 외출하면 주변에서 ‘애국자’ 칭찬을 열 번은 넘게 듣는다고 했다. 이는 김씨 하루 일과 가운데 최대 고역이 됐다.
김씨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칭찬해주시는 분들, 주로 어르신의 마음도 이해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저출생’ 문제가 TV와 신문에 보도되는데 ‘투 플러스 원’ 자녀 계획을 한 나를 보면 ‘애국’이란 얘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같은 소리를 하루 10번씩 들으면 힘이 들어요. 두 아이 손을 잡고 마트 다녀오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2020 원더키디’ 대신 ‘코로나 키드’=김씨의 첫 아이는 2020년생, 둘째는 2021년 생이다. “저는 어렸을 때 ‘2020 원더키디’를 보며 자랐어요. 멸망한 지구에서 어린아이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싸우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2020년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이 확정된 후 그 만화가 떠올랐지요. 그러나 현실은 ‘코로나 키드’였어요. 코로나 사태가 전 지구를 강타했던 2020년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김씨는 “아이들은 어른의 입모양을 따라하면서 말을 배우는데, 다들 마스크를 써서 이 때 태어난 아이들은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올해 4살인 아이는 요새는 말이 너무 많아 문제”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코로나19 창궐 탓에 첫째 출산도 순탄치 않았다. 김씨는 “코로나 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하던 2020년 4월에 첫 아이가 나왔다. 당시 코로나 음성이 확인이 돼야 입원이 가능했는데, 사태 초기였던 당시엔 코로나 감염 여부 테스트 결과에 반나절이 소요됐다”며 “결국 코로나 사태 때문에 아이의 생일이 하루 늦어졌다”고 말했다.
둘째가 태어날 때에도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이 안돼 고역을 겪었다. 김씨는 “2021년에도 역시 코로나가 진행중이었다. 모든 병원 이용에 코로나 감염 여부를 체크해야 했다”며 “아이를 낳고 면회도 안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를 정면으로 맞은 두 아이는 다행히 잘 크고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20년 2월 대구에서 ‘신천지 사태’가 터졌다. 마스크가 부족해서 나라가 떠내려갈 듯 시끄러웠던 때”라며 “그런 일이 있을 후 두 달 만에 첫 애가 태어난 셈”이라고 했다.
▶‘두아이’에 맞벌이 양립 불가…“다들 그렇듯 그만 둘 수밖에”=현재는 전업주부인 김씨도 한 때는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을 다녔다. 그러나 코로나19 종료, 복직, 어린이집 전원 등 이슈가 맞물리면서 결국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2022년 중반 복직하게 됐는데 당시가 ‘코로나 종료’로 다들 마스크를 벗을 때였다”며 “사흘이 멀다 하고 두 아이가 40도에 이르는 고열이 반복되는 상황이라 결국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출산 휴직’에 대해 ‘놀다 왔다’는 직장 내 인식 역시 직장을 그만두게 된 원인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산 때문에 휴직했다가 복직했더니 이전에 없던 새로운 부서에서 근무를 하라고 인사가 났다. 신생 부서여서 모든 일처리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다 세팅을 해야 됐다. 팀장도 없는 신생 조직에 배치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해당 직장을 10년 가까이 다녔으나, 업무가 새롭게 떨어지니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 하는 느낌으로 일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아침에 아이 두 명을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까지 1시간여를 차를 몰고 가야 하는데 매일 아침이 전쟁이었다. 직장엔 또 직장대로 눈치가 보였고 일은 일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고 했다. 이어 “하루 일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집에 와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회사에선 ‘육아기 단축근무’를 쓰니 월급도 깎더라. 해야 하는 일은 똑같은데 월급만 깎이는 상황이 되자 한계에 부딪쳤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힘들게 자리잡았던 일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를 꼽으면 ‘직장 내 인식’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던 시기 가장 부러웠던 건 등원이든 하원이든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조부모 댁이 집 근처에 있는 가정”이었다며 “아이의 친가도 외가도 모두 지방이어서 제가 아니면 아이를 돌볼 수가 없었다. ‘등원도우미’도 써봤지만 아이와 트러블이 생겨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어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둘을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것 준다고 낳겠어 냉소는 ‘푸념’… “받아보면 생각 달라져”=김씨는 자녀 양육·보육비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각종 지원 정책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고 했다. 출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그것 준다고 낳겠냐’는 냉소는 아이를 낳을 생각 없는 이들이 내뱉는 ‘푸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대부분의 지원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간접지원 되는 방식이기에 실제로 부모가 받게 되는 액수는 크지 않아 지원을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씨는 첫 아이를 낳은 이후 최근까지 받은 지원금을 모두 합했더니 4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지원한 아동수당 등 양육비 총액이 3700만원 가량되고,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대략 200만원 안팎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원금 대부분은 아이의 보육·교육비용으로 지급이 된다. 중앙정부 지원이 비교적 크고 지자체는 아직은 액수는 크지 않다”며 “그래도 지원을 해주지 않을 때에 비해선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씨는 서울시가 시행 중인 ‘난임비 전액지원’ 정책에 대해 만족도가 컸다고 했다. 서울시는 현재 소득·자산 규모와 관계없이 아이를 갖는 데 어려움이 있는 예비부모들을 위해 모든 난임부부에게 시술비를 지원한다. 시술 종류와 상관없이 총 22회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난임 시술별 횟수제한도 폐지했다. 그는 “소득 제한과 횟수 제한 요건을 삭제해 아이를 가지려하는 모든 사람을 지원 대상으로 넓힌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원이 적다, 부족하다. 그것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고 지원을 받아보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변하기 힘든 ‘임신·육아’에 대한 사회 인식”이라며 “출산·육아 휴직을 다녀오면 ‘잘 쉬었다 왔느냐’는 회사 내 누군가의 한마디가 가장 큰 상처가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