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검토 중인 사업 재편 구상안에는 에너지 계열사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진행 중인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재구조화)’의 일환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배터리 사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SK는 또, 219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대폭 줄이는 계획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SK는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리는 경영전략회의(옛 확대경영회의)를 앞두고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포함한 다양한 자회사 사업구조 개편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번 경영전략회의에서는 에너지·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리밸런싱’에 대한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SK E&S와의 합병설에 대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만약 실제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이 성사된다면, 매출 규모만 90조원에 육박, 자산총액은 105조원을 웃도는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국내 최대 정유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매출 77조2885억원, 영업이익 1조9039억원을 기록했다. SK에너지와 SK온, SK엔무브,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SK어스온 등 9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SK㈜의 100% 자회사인 SK E&S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매출 11조1671억원, 영업이익 1조3317억원을 달성했다.
복수의 SK 관계자들은 “사업 구조 최적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양사 합병이 논의되는 이유는 SK온 재무구조 정상화를 위해서다. SK온은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정체) 여파로 올해 1분기에만 331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당분간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자금 조달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반면, SK E&S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알짜기업’으로 꼽힌다. 지난해 뿐만 아니라 2022년에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 SK E&S 모두 수소 사업 등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합병 시 친환경 사업 분야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앞서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이 지난 10일자로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SK E&S 수석부회장을 겸임하는 등 SK온과 SK E&S 사정에 모두 정통한 만큼 합병 추진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다만, 재계에서는 양사 합병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고 분석한다. 특히 합병을 위해서는 합병 비율을 정해야 하는데, 현재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장부가액에 비해 많이 하락한 점이 장애요인으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전날 기준 1주당 10만4700원으로 주당 14만원을 넘었던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25%이상 감소한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워낙 많이 빠져있는 상태라서 이 상황에서 바로 합병을 하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 다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 합병을 추진하면 주주들뿐만 아니라 사외이사들도 찬성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했다. 다만 SK E&S와의 합병설이 나오면서 이날 오전 한때 SK이노베이션 주가는 15% 넘게 급등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SK 안팎에서는 SK온과 SK엔무브 합병, SKIET 지분 매각, SK E&S와 SK온 합병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그룹 내부에서 합병안이 잠정 결정되더라도, 각 사의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현실화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실제 SK엔무브과 SK온의 합병 방안이 거론됐을 당시 SK엔무브의 2대 주주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합병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SK온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SK도 빨리 대책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라며 “28일 경영전략회의에서 SK온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SK는 또 219개에 달하는 계열사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 작업에도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무분별한 중복투자·사업으로 비효율이 발생하는 만큼, 과감한 통폐합을 진행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 등 핵심 분야 투자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SK는 지난해보다 21개 늘어난 219개 계열사를 보유하며 두 번째로 많은 계열사를 보유한 카카오(128개)를 훌쩍 뛰어넘었다. 삼성(63개), 현대자동차(70개), LG(60개) 등과 비교해도 약 3배에 달한다.
정윤희·김은희·한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