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스탠리 등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 제기한 ‘반도체 겨울론’이 오판이었던 것으로 판명났다. 메모리 업황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마이크론이 2024회계연도 4분기(6~8월) 실적에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다음 분기 전망 가이던스 역시 종전보다 높이는 자신감을 보였다. 내달 3분기 실적발표를 앞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메모리 겨울’ 없었다…“HBM·고성능 낸드 등 수요 강력”=마이크론은 25일(현지시간)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77억5000만 달러, 영업이익 15억22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시장 예상치였던 76억6000만 달러를 넘어서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68억1000만 달러) 보다도 10억 달러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주당 순이익 역시 1.18달러로, 월가 예상치인 1.11 달러를 상회했다.
마이크론의 ‘깜짝 실적’으로 일각에서 제기됐던 반도체 겨울론은 힘을 잃게 됐다. 마이크론은 글로벌 메모리 3사 중 가장 먼저 분기 실적을 발표해 메모리 업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불린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지난 15일 ‘겨울이 곧 닥친다(Winter looms)’라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4분기 D램 업황이 고점을 찍을 것이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역시 공급 과잉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K하이닉스 목표 주가를 기존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절반 이상 낮췄다.
그러나 마이크론 실적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강력한 AI 수요가 데이터 센터 D램 제품과 HBM 판매를 주도했다”며 “낸드 사업부도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매출이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돌파하며 판매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앞서 마이크론은 지난 6월 2024~2025년치 HBM 제품이 모두 매진됐다고 밝힌 바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에 대한 투자를 유지함에 따라 HBM을 포함한 고부가가치 D램, 고성능 낸드 등에 대한 수요는 견조한 것이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PC 및 스마트폰 수요 부진에 따른 범용 D램 시장 약세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성으로 실적 개선에 성공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는 보고서를 통해 HBM의 영업이익률이 53%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표준형 D램의 영입이익률 35%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등에 따르면, HBM의 1GB(기가바이트)당 평균 가격은 10.6달러다. 표준형 D램은 2.9달러다. 이를 기준으로 고정비용과 가변비용을 제외한 HBM의 영업이익은 5.6달러, 표준형 D램은 1달러 수준이 될 수 있다고 BI는 추정했다.
▶삼성·SK도 깜짝 실적 나올까…4분기도 ‘맑음’=삼성전자는 내달 8일께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매출 79조~80조원대, 영업이익은 10조원대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의 경우 SK하이닉스 보다 범용 D램 매출 비중이 높아 PC 및 스마트폰 수요 부진에 따른 단기 가격 정체에 따른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또한, 상반기에 들어가지 않은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부문의 PS(성과급)충당금이 반영된다. 메모리 사업의 3분기 영업이익은 5~6조원대로 전분기 대비 다소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내달 말 3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금융투자업계는 6조~7조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BM 시장에서 절반 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8단 HBM3E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으며 12단 제품 대량 양산도 시작했다.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경신했던 지난 2018년의 6조5000억원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메모리 3사의 오는 4분기 실적도 ‘맑음’일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론의 경우, 4분기 전망 가이던스를 87억 달러로 발표했다. 종전 82억800만 달러에서 크게 늘어난 수준이며 월가 전망치인 83억 달러보다도 높다. 주당 순이익 역시 1.74 달러로 전망하며 월가 전망치 1.52 달러를 상회했다.
AI 반도체와 AI가 탑재된 스마트폰·PC 등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며 전세계가 2차 반도체 공급 부족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25일(현지시간) 발간한 연례 글로벌 기술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 확산으로 소비자 기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발생했던 글로벌 반도체 부족사태가 AI 수요 급증으로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베인의 기술 실무 책임자 앤 호커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 급증으로 반도체 공급망의 특정 요소에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며 “GPU 수요 증가와 PC 교체 주기를 가속화하는 AI 기기의 물결이 만나면 칩 공급에 더 큰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반도체 공급망은 매우 복잡해 AI 수요가 20% 이상 증가하면 균형을 깨고 칩 부족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임계점을 넘어 공급망 전반에 걸쳐 병목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