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성우·박지영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영풍과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공개매수 청약일 기한인 4일 ‘자사주 공개매수 최초 응모주식수 한도’를 삭제하기로 전격 결정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고려아연이 응모주식 미달 여부와 관계없이 주당 83만원의 자사주 매입가를 보장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조치다.
재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장 시작 전 기재 정정 공시를 내고 관련 내용을 밝혔다. 앞선 공시에는 “전체 응모주식수가 121만5283주(발행주식총수의 약 5.87%)에 미달하는 경우 회사와 베인캐피탈(고려아연의 전략적 투자자)은 해당 응모주식 수를 취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를 삭제한 것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사주 공개매수 관련 전량매수가 공식적인 공시 사항이며, 앞서 금감원에 신청하고 이사회에서 승인도 이뤄진 사항”이라며 “이사회 의사록에는 원칙이 전량 매수로 승인돼 있고 예외적으로 5.87%에 미달하는 경우 매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돼 있었는데, (정정 공시에서) 전량매수 내용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 측이 기존 주주들이 안심하고 주당 83만원에 매각할 수 있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장마감 기준 고려아연의 주가는 71만3000원이었으며, 4일 오전에는 75만원을 장중 돌파했다.
이는 영풍·MBK 측이 제시한 공개매수가 75만원을 웃도는 가격이지만 최 회장 측의 공개매수가인 83만원에는 못 미친다.
고려아연은 4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최대 15.5%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하고, 우호 세력인 베인캐피탈이 대항 공개매수 방식으로 최대 2.5% 지분을 각각 확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투입 금액은 총 3조1000억원이며, 지분은 최대 18%까지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이에 대항해 영풍·MBK 측은 4일 영풍정밀의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2만5000원에서 3만원까지 인상하는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어, 양측의 경영권 분쟁에서 ‘숨겨진 격전지’로 꼽힌다.
향후 변수로는 법적공방 리스크와 정부의 행정적 절차 등이 거론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일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를 개최해 고려아연이 자사 보유 기술에 대해 신청한 국가첨단전략기술과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 등의 안건 심의에 나선다.
지난달 24일 고려아연이 산업부에 제출한 국가핵심기술 판정신청과 관련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기술이 국가 핵심기술이 될 수 있을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해당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이라고 판정될 경우 국가가 이를 법적으로 보호하게 되며,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에 대해서도 일종의 제약사항이 발생한다. 산업부 판단에 따라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이후 출구전략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양측이 향후 추가적인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최 회장 측은 금융권 차입 약정 한도 금액인 1조7000억원을 추가 동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K는 6호 바이아웃 펀드에서 동원하는 자기자금과 영풍에서 빌린 차입금, 인수금융 등에서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
최 회장은 지난 2일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MBK파트너스가 우리 측 조치에 또 다르게 대응한다면, 우리도 그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이 4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을 포함해 단기간에 차입 규모를 3조1000억원까지 늘린 점은 부담으로 꼽힌다.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이번 차입 조치는 단기적으로 경영권 방어 효과는 높여도 장기적인 지속가능성 면에서는 불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