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美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발탁
틸 팔란티어 회장, 밴스 부통령으로 만들어
대선 기점 실리콘밸리 넘어 정계 영향력 확대
핀테크 기업 페이팔의 초기 구성원들이 미국 정·재계 전면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왼쪽부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 팔란티어 회장, 리드 호프먼 링크드인 창업자, 맥스 레브친 슬라이드 창업자이자 핀테크회사 ‘어펌’ 대표 [AP·로이터·AFP·어펌 홈페이지] |
미국 핀테크 기업 페이팔의 초기 구성원인 ‘페이팔 마피아’가 다시 정·재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발탁되고, 피터 틸 팔란티어 회장은 J.D. 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으로 만들었다. 실리콘밸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 페이팔 마피아는 올해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정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포춘지는 ‘페이팔 마피아는 여전히 실리콘밸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제목의 지난달 9일 기사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 페이팔 마피아의 영향력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더 커졌다고 전했다. 페이팔 마피아는 1990년대 후반 결제 업체 페이팔을 탄생시킨 주역들을 일컫는 말로 머스크 CEO, 틸 회장, 맥스 레브친 슬라이드 창업자, 리드 호프먼 링크드인 창업자, 채드 헐리 유튜브 설립자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페이팔을 떠난 이후에도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 사회 곳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마피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실리콘밸리를 주름잡고 있는 페이팔 마피아를 탄생시킨 페이팔이라는 회사는 사내 문화 자체가 특이하다. 협력을 추구하는 게 일반 회사라면 페이팔은 ‘갈등’을 독려했다.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생산성을 올린 것이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레브친은 “페이팔의 경영진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지만 생산적이었다”며 “뒤에서 험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능력에 신뢰를 가진 채 정답을 찾아내기 위한 갈등이 주를 이뤘다”고 했다.
페이팔 창업 후 30년이 지난 AI시대에도 페이팔 마피아가 투자하거나 창업한 기업들은 성과를 내고 있다. CNBC에 따르면 머스크 CEO의 xAI는 최근 500억달러(약 69조7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xAI는 머스크가 지난해 7월 설립한 AI기업으로, 지난해 7월 ‘그록’이라는 AI 챗봇을 출시했다. 그록은 머스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X·옛 트위터)에서 구동된다. 8월에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호프먼 창업자는 오픈AI 초창기에 투자해 ‘황금손’을 인정받았다. 오픈AI의 투자자 명부에 이름을 올린 코슬라벤처스와 세쿼이아캐피털의 경영진도 페이팔 출신이다. 포춘은 “실리콘밸리에는 페이스북 마피아, 오픈AI 마피아 등이 있다”며 “하지만 최초의 기술 마피아는 페이팔 마피아”라고 소개했다.
페이팔 마피아의 창시자인 틸은 페이스북, 링크드인, 스페이스X의 초기 투자자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부통령 후보로 밴스 의원을 추천하는 등 정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보기 드문 공화당 지지자인 틸은 2016년부터 트럼프 당선인을 후원했다.
틸은 1998년 페이팔을 창업하고 2002년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하면서 큰 부를 이뤘다. 최근 AI 업계 다크호스로 떠오른 팔란티어테크도 틸이 2003년 알렉스 카프 CEO와 공동 설립한 회사다. 20여년 전에 이미 AI 사업을 키운 셈이다. 팔란티어는 올해 엔비디아를 웃도는 주가 상승률을 보이며 시장의 주목을 끌고 있다.
틸과 함께 페이팔을 만들었던 머스크 CEO는 트럼프 2기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임명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성명에서 “정부효율부가 기존 연방정부의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과도한 규제와 낭비성 지출을 줄이며, 연방 기관 구조조정의 기틀을 닦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는 기존 미 연방정부 예산(6조7500억달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조달러 이상을 삭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두 사람 외에 다른 페이팔 마피아 멤버들도 현업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은 페이팔 매각 수익으로 부를 얻었지만 다시 위험 요소가 있는 창업의 길을 택했다. 페이팔에서 기술 책임자로 일했던 레브친은 여전히 여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페이팔이 이베이에 인수된 후 레브친은 슬라이드라는 미디어 공유 서비스를 설립했다. 슬라이드는 구글에 매각됐고, 현재는 핀테크 회사 ‘어펌’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호프먼은 페이스북, 케어 등 거대 IT 기업에 초기 투자하면서 빅테크 거물이 됐다. 고용 플랫폼 링크드인을 창업해 성과를 냈고, 현재는 오픈AI 등 AI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호프먼 창업자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틸과 머스크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호프먼은 트럼프 당선인이 성추문 입막음 형사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자 “그저 범죄자”라고 맹비난했다. 이후 틸과 콘퍼런스에서 만났지만 “틸이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그와 대화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자베드 카림 유튜브 창업자는 페이팔에서 만나 2005년 유튜브를 창업했다. 세 사람은 2006년 유튜브를 16억5000만달러에 매각해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헐리는 2010년까지 유튜브에서 CEO를 담당하다 최근에는 교육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고 있다.
김빛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