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참모들도 몰랐다…극비리 계엄 선포 [용산실록]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새벽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상계엄 선포 해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소수 측근들과 극비리 준비한 듯…심야 발표 단행
참모들, 호출 받고 복귀…추경호 “뉴스보고 알아”
대통령실 침묵 중, 정상적 국정운영 불가 판단한 듯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 24분 경 한밤 중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철저히, 극비리에 진행됐다. 대통령실 안팎으로 “윤 대통령이 긴급 발표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던 시점도 이미 밤 9시를 넘긴 때였다. 담화 주제, 배경 등을 놓고 각종 추측이 쏟아졌지만 윤 대통령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비상계엄’이란 단어를 떠올리거나, 입에 올린 사람은 없었다.

▶극소수만 비밀리에…퇴근 후 복귀한 참모들도=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은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윤 대통령의 기습발표에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붉은색 넥타이 차림을 하고 굳은 얼굴로 담화문을 읽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다”며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번 발표는 대통령실 참모들조차 예상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윤 대통령이 소수 측근들과만 이를 비밀리에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또한 대통령실과의 사전조율을 묻는 기자들의 질의에 “저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 대통령실 참모들은 정상퇴근 후 개인약속 시간을 보내거나, 대통령실에 남아 남은 업무를 이어갔다. 긴급 발표가 열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던 9시 이후에도 ‘수석급 전원 대기’라는 설이 흘러나왔으나, 한편에서는 ‘전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말도 있었다. 개인 시간을 보내던 도중 급히 호출을 받고 대통령실로 복귀한 참모도 있었다고 한다.

언론사들에게도 공지가 되지 않은건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발표설이 돌 때에도 더불어민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 예산안 처리 등에 대해 언급할 것이라는 관측만이 흘러나온 정도였다.

윤 대통령의 회견이 열리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물으려는 기자들의 전화가 이어졌지만, 대통령실 참모들은 전화를 일제히 받지 않았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자들은 대통령실로 복귀했다. 하지만 브리핑룸은 잠겨있었다. 취재진 대면 없이 중계로만 이뤄졌고 윤 대통령은 발표 후 곧장 퇴장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발표가 끝난 뒤, 밤 11시가 돼서야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 알림을 전했다. 계엄령 발동으로 인해 대통령실 청사도 기자들의 출입이 제한되는 등 혼란스러운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국방부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를 직접 건의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계엄법상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계엄 발령을 건의할 수 있다. 김 장관의 건의 시점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 혹은 이후 다른 국무회의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찬성 190인으로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점에 왜? 입 닫은 대통령실…정상적 국정운영 불가 판단한 듯=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배경에 대해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시도, 예산안 삭감 등 행보를 두고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로 규정했다.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4일 새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가운데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 경찰들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각종 정치적 논란이 꼬리를 물고,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더라도 비상계엄을 해야할만큼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밝힌대로 탄핵 공세, 예산안 삭감 등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초강수를 던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집권 후반기에도 거부권 정국이 되풀이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구도 속 취임 후 낮은 지지율을 이어가는 점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지난 2일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1월 25∼29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천509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5.0%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실의 침묵 속에 야당은 윤 대통령이 자진퇴진을 하지 않으면 탄핵을 하겠다고 시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즉각 퇴진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뜻을 받들어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윤 대통령이 발표한 비상계엄은 4일 새벽 해제됐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약 6시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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