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한국경제에 메가톤급 악재
기업들도 초비상…대응책 마련 고심
투자·사업계획 점검…경영활동 위축 불가피
대기업들이 모인 서울 시내가 먹구름에 쌓여있다 [헤럴드DB] |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정국 돌입으로 한국경제 불확실성이 극대화하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글로벌 경기침체, 트럼프발(發) 관세 리스크 등 악재가 쌓여있는 상황에서 ‘탄핵 블랙홀’로 경영환경에 먹구름이 끼면서 주요 기업들도 초비상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도 지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의 투자 및 경영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저마다 내부 긴급회의 등을 통해 이번 사태가 주력사업 및 재무 등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나섰다. 일부 기업의 경우 내년도 사업계획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SK, LG 등 주요 기업들은 앞서 비상계엄 해제된 후인 지난 4일 오전부터 줄줄이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삼성은 각 계열사별로 밤새 대책을 세우고 4일 오전 긴급회의에 돌입했으며, SK 역시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주관하는 주요 경영진 대책회의를 열었다. LG는 계열사별로 비상대책회의를, HD현대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어 분주하게 대응전략을 마련했다.
재계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존에 계획했던 투자나 사업계획 등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며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만큼, 기업들 입장에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재계는 부정적인 글로벌 경제전망, 국내 투자환경 악화 등으로 내년도 투자계획을 쉽사리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의 여파로 기업들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지난달 13~25일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122곳 중 56.6%는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투자계획이 없다’는 응답도 11.4%였다. 그나마 내년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39곳) 중에서도 투자규모를 올해보다 축소하는 경우(28.2%)가 확대하는 경우(12.8%)보다 많았다. 지난해의 경우 ‘투자 확대(28.8%)’가 ‘축소(10.2%)’보다 많았는데 1년만에 역전됐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8.15%포인트)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당장 예정된 사업이나 투자 등을 연기하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해외사업 쪽에는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일단은 정치권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전 세계에 노출되면서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기업의 입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앞서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해 경제활동에 영향을 끼치면 (한국의 국가)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며 “취약한 경제성장 전망,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환경,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 제약을 포함한 수많은 위기에 대처할 정부 역량에 부담이 가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국제 투자자들 관점에서는 분명한 마이너스 쇼크로 부정적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여파로 유동성 확보가 급선무인 기업들 중심으로 자칫 자금조달 금리 상승 부담으로 이어져 재무 리스크가 심화될 가능성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금융 수장들은 사흘 연속 거시경제금융(F4) 회의를 여는 등 이번 사태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당분간 주식·채권·단기자금·외화자금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키로 한 상태다.
국가신인도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 4일에는 50곳 이상의 해외기관에 최상목 경제부총리 명의의 긴급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기획재정부가 국제사회에 이 같은 서한을 발송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난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6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계엄 사태의 여파로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의 중요한 구조개혁이 지연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경쟁 심화, 트럼프 관세가 한국 수출업체들에 미칠 영향과 비교할 때 국내 정치적 위기에 따른 경제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