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정당화하려다 한중 관계 찬물 끼얹은 尹

‘계엄 정당화’에 거론된 中 “관계에 이롭지 않아”
부정적 對中인식 노출…‘훈풍’불던 한중 관계 변수
거취 불명확해 외교적 고립…한미 조기회담 불투명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가 고도의 통치행위였다고 주장하며 중국 문제를 언급하자 중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경제협력을 고리로 훈풍이 불었던 한중 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전 조기 회담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윤 대통령의 거취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대한민국의 외교적 고립은 심화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담화에서 야당이 국가안보와 사회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인 간첩 문제를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중국인 3명이 드론을 띄워 부산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을 촬영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며 “이들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에서는 최소 2년 이상 한국의 군사시설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어 “지난달에는 40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정원을 촬영하다 붙잡혔다”며 “이 사람은 중국에서 입국하자마자 곧장 국정원으로 가서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법률로는 외국인 간첩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할 길이 없다”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형법의 간첩죄 조항을 수정하려 했지만, 거대 야당이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간첩법(형법 제98조)은 ‘적국’을 이롭게 한 경우 처벌할 수 있고, 그 범위도 군사기밀로 제한된다. 우리나라의 적국은 북한으로 간주되기에, 간첩죄 대상에 적국 외에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추가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발의됐다.

이러한 형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는데, 민주당은 간첩 대상을 ‘외국’으로 확대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간첩 조항의 남용과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며 공청회를 요구했다. 법안소위에서는 군사 및 산업기술 유출과 관련해서는 군사기밀보호법과 산업기술보호법에서도 규정하고 있어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법안 조정 과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지목하고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고 내란 혐의를 부정하는 가운데 거론된 ‘중국’은 화들짝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동안 한국의 계엄 사태에 대해 말을 아꼈던 중국 외교부는 전날 “한국 측의 언급에 깊은 놀람(意外·뜻밖이다) 불만을 느낀다”고 밝혔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 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이는 중한(한중)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오 대변인은 또 윤 대통령이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선 “중국의 녹색 산업 발전은 세계 시장의 수요와 기술 혁신, 충분한 경쟁의 결과”라며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글로벌 환경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중요한 공헌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중국은 간첩 문제에 대해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담화로 윤 대통령의 대중(對中) 인식이 드러나면서 향후 대중 관계에서 외교적 공간을 스스로 좁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페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2년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면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정상 간 신뢰와 우의를 다지면서 양국 관계의 근간인 경제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중국과의 외교적 공간을 넓히려던 하반기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끼쳤다. 중국 체제의 특성상 정상 간 외교가 특히 중요한데, 윤 대통령의 부정적인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한국에 대한 불확실성이 계속될 경우 외교적 고립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12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거론하며 “나는 아마 그가 제대로 상대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할 뿐,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대중 강경 통상정책을 쓰는 트럼프 당선인은 시 주석을 취임식에 초대하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 조기 회담을 추진하며 골프 연습까지 나섰던 윤 대통령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거취가 불명확해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초청받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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