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제치고 세계 3위 포부 ‘혼다-닛산’ 합병, 약일까 독일까 [디브리핑]

23일 양사 이사회 열고 경영 통합 협의 결정

일본 2~4위 완성차 업체 통합→세계 3위 도약

“중국 전기차 업체 약진에 일본 위상 사라져”

 

도시히로 미베 혼다 CEO와 마코토 우치다 닛산 CEO가 지난 3월 도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로이터]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일본 자동차 2위와 3위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23일 합병을 위한 협상에 합의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 전기차의 약진에 굴지의 일본 완성차업체들이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닛케이에 따르면 두 회사는 이날 경영 통합을 위한 협의에 합의했다. 통합이 이뤄지면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가 800만대를 넘는 세계 3위 자동차 그룹이 탄생한다. 세계 20위권 자동차 회사이자 닛산이 최대주주(지분 24% 보유)인 미쓰비시도 참여한다.

지난해 판매 대수는 혼다가 398만대, 닛산이 337만대, 미쓰비시가 78만대로 3개 회사가 뭉치면 총 813만대에 이른다.

세계 1위 도요타(1123만대), 2위 폭스바겐(923만대), 3위 현대·기아차(730만대)의 기존 서열을 깨고 단숨에 세계 3위로 뛰어오른다. 또한 일본 2~4위 업체가 한 지붕에 들어간다.

혼다-닛산 기업 비교 및 세계 완성차 순위 [헤럴드DB]

혼다와 닛산, 미쓰비시는 새로 설립된 지주회사의 계열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완료되면 3개 회사는 지분 공유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맺을 계획이다.

미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닛산이 혼다에게 구조를 요청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하 기사를 통해 “닛산이 노후 모델 라인업, 불안한 차 판매업자들을 위해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경제매체 블룸버그 통신은 “혼다와 닛산의 합병 협상의 큰 이유는 중국”이라며 “BYD 같은 중국 전기차업체의 전기차, 하이브리드차가 약진하면서 일본차가 기존에 누리던 고품질 자동차 제조업체로서의 지위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이로 인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 수요에 맞춰 건설된 일본차 현지 공장의 용량이 남아돌게 됐다”며 이들이 생존하려면 공장 규모를 큰 폭으로 줄여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은 “닛산의 글로벌 생산 능력은 500만대에 달하지만 이번 회계연도에는 그보다 훨씬 낮은 320만대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요시다 타츠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수석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업계 최적의 공장 가동률은 80% 이상”이라면서 “일본차 업체들이 향후 중국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5년”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혼다와 닛산은 2020년 이래 주력 시장인 중국에서 BYD 등 현지 업체에 밀려 부진을 면치 못했고, 올해 중국 판매량은 1년 전에 비해 각각 31%, 11% 감소했다.

세계로 약진하는 중국 전기차 회사 BYD…내년 세계 5위 목표

 

일본의 혼다와 닛산 자동차가 23일 기본 합의서를 체결하고 합병을 위한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간다. 사진은 각사 로고. [각사 제공]

반면, BYD는 올해 3분기에만 전 세계에서 113만대를 판매해 세계 6위에 올랐고, 내년 판매 전망치로 600만대를 제시하며 전기차 판매만으로 세계 5위권을 노리고 있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을 촉발한 직접적 원인으로는 애플 아이폰 위탁생산업체 대만 폭스콘이 지목된다.

폭스콘 모회사인 대만의 홍하이 정밀공업은 경영 위기에 몰린 닛산의 지분 인수 의사를 보였다. 폭스콘은 전기차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지난해 닛산 출신 세키 쥰을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영입하기도 했다.

교도통신은 “아이폰 제조사인 대만의 폭스콘이 닛산 지분매수를 제안해 닛산의 대주주인 프랑스의 르노 측과 이를 협의하고 있다”며 “혼다와 닛산의 합병 움직임은 폭스콘의 지분 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고 지적했다. 르노는 닛산 지분 3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를 거부한 닛산은 먼저 혼다에 손을 내밀었다.

닛산은 지난 3월 혼다와의 협업을 검토했고, 8월 혼다와 차량용 소프트웨어 협업 등 포괄적 업무 제휴를 맺었다.

당시 두 회사가 발표한 양해각서에 따르면 양측은 차세대 소프트웨어중심차(SDV), 플랫폼 공동연구, 배터리 규격 공통화와 상호 공급, 전기구동시스템 사양 공통화 등을 함께 추진한다.

혼다 역시 지난 7월 중국 내 내연기관차 생산능력 30%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닛산은 지난 11월 세계 생산 능력의 20% 감축, 직원 9000명 감원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안까지 발표했다.

이번 합병으로 ‘일본판 스텔란티스’가 탄생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스텔란티스는 2021년 1월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PSA의 5대 5 합병으로 탄생한 브랜드다. 산하에 14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시너지 효과는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뭉칠수록 성과가 감소하는 ‘링겔만 효과’까지 거론된다.

일본판 스텔란티스 될까…뭉쳐도 약해지는 링겔만 효과 우려도

스텔란티스 산하 브랜드의 2019년 판매량은 800만대였지만, 2023년 639만대로 감소했다.

이와 달리 혼다와 닛산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지 않다. 닛산은 2010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출시했지만,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이 없다. 혼다는 도요타에 이은 세계 2위 하이브리드카 브랜드지만 전기차가 없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전기차,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판매 시장 점유 면에서도 기댈 점이 있다.

닛산은 영국과 스페인에 공장이 있어 유럽 시장에서 강점이 있지만, 혼다는 유럽에 공장이 없다. 대신 혼다는 미국에서 닛산보다 더 잘 팔린다.

지난해 닛산은 유럽에서 34만대, 혼다는 8만대를 팔았고, 미국에선 혼다가 139만대, 닛산이 127만대를 팔았다.

‘중국차 쇼크’는 미국이나 독일 차 업계에도 융단 폭격 중이다.

세계 2위 폭스바겐은 사상 처음으로 자국 내 공장 폐쇄와 감원을 검토 중이다. 포드도 영국과 독일에서 4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스텔란티스는 최고경영자(CEO)를 최근 해임했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지난 9월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도요타는 BMW와 수소차 개발에서 협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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