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둔덕 위 로컬라이저
경사 맞추고 구조물 지지 목적
국토부, “사고 연관성 조사할 것”
지난 29일 제주항공 여객기가 약 4m 높이의 콘크리트 둔덕에 부딪혔다. 김도윤 기자. |
[헤럴드경제=박지영·김용재 기자] 지난 29일 181명의 사상자를 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콘크리트가 타설된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가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로컬라이저가 종단안전구역 바깥에 설치됐기 때문에 규정 위반이 아니다”며 해명에 나섰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 지점으로부터 251m 거리에 설치돼 있다. 로컬라이저는 여객기의 정확한 착륙을 돕는 안테나 시설로 높이는 약 2m다. 이 로컬라이저는 흙더미로 뒤덮인 약 2m가량의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세워졌는데, 안테나를 견고히 지지하기 위해서다. 지지대 역할을 하는 둔덕을 포함하면 무안공항 로컬라이저의 전체 높이는 4m가량이다. 사고 여객기는 동체 착륙한 뒤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로컬라이저와 외곽 담벼락을 연이어 충돌했다.
군 출신 항공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영국 스카이뉴스에 출연해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했는데 원래대로라면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행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며 이탈했는데 이때까지도 기체 손상은 거의 없었다. 항공기가 둔덕에 부딪혀 불이 나면서 탑승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무안국제공항의 평행유도로를 보면, 01활주로와 19활주로 높이가 약 5.6m 정도 차이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무안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한 공항시설 개선방안 발췌] |
그렇다면 왜 콘크리트 둔덕이 만들어졌을까. 무안국제공항은 활주로가 전반적으로 경사진 형태로 조성됐다. 활주로 끝단을 지나면 지면이 더 기울어진다. 이 때문에 경사를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 둔덕을 쌓고 로컬라이저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둔덕이 위치한 공항 남단의 지대는 9.9m지만, 반대편인 북단은 15.5m로 양 끝의 차이는 5.6m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로컬라이저는 정밀도를 위해서 흔들리면 안 되기 때문에 견고하게 지탱되어야 한다”며 콘크리트를 친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로컬라이저는 무안공항이 개항한 2007년부터 사용되어 지난해 봄 내구연한(15년)이 끝나 로컬라이저 장비를 한 차례 교체하는 공사가 있었다.
로컬라이저가 화를 키웠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면서 위법 논란도 이어졌다. 국토부예규 ‘항공장애물 관리세부지침’ 제23조에는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실중량과 높이를 최소로 유지하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에 대해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종단안전구역 외에 설치된 장비에 해당하기 때문에 항공장애물 관리세부지침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고설명했다. 더불어 “‘공항시설법’에 따른 ‘항행안전무선시설의 설치 및 기술기준(국토부 고시)’에는 로컬라이저의 주파수, 신호세기 등에 관해서만 규정돼 있고 안테나 지지 구조물의 높이나 재질 등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는다”며 “관련 국제규정(ICAO ANNEX 10 Vol.Ⅰ)에도 관련사항이 규정돼 있지 않다”며 위법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선 브리핑에서는 콘크리트가 타설된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타 공항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국내 제주공항의 경우 콘크리트 구조물과 H빔을 써서 로컬라이저 안테나 높이를 높였고, 여수·포항경주 공항은 성토와 콘크리트를 활용했다”며 “미국 LA,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 등에서도 콘크리트 위에 안테나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경우 로컬라이저가 지면에 돌출돼 있지 않다. 인천공항의 경우 둔덕 없이 7.5cm 이하 낮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살짝 올라와 있다. 2016년 UPS 소속 화물기가 인천공항에서 랜딩기어 파손으로 활주로를 벗어나 로컬라이저와 충돌했을 당시 큰 피해가 없었던 이유다.
2015년 4월 일본 히로시마공항에서 활주로를 이탈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충돌한 로컬라이저. 비행기가 로컬라이저의 흰색 점선 부분을 뚫고 지나갔다. [국토부 제공] |
2015년 4월 일본 히로시마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도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와 충돌했지만 구조물 위에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구조라 81명의 탑승객 중 경상자만 27명 발생하는 데 그쳤다. 히로시마 공항 활주로 또한 경사가 져 있지만 콘크리트가 아닌 철골 구조물을 세워 경사를 맞춘 것이다.
최인찬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로컬라이저 밑에 있는 콘크리트 둔덕에 속도를 줄이지 못한 사고기가 1차 충격을 받아 대파됐기 때문에 이 구조물이 피해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며 “콘크리트 구조물이 없었다면 항공기가 로컬라이저를 부서뜨리고 외벽을 친 뒤 속도가 줄었을 수도 있다. 면밀하게 조사를 해야 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이번 사고와 로컬라이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종합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