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금년 한일수교 60주년 행사를 “더 박차를 가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1965년 을사년(乙巳年) 수교 조약은 양측의 해석이 전혀 달라 오히려 매년 발생하는 역사갈등의 발화점이 되곤 했다. 한일기본조약이 식민지의 독립협정인지, 교전국 간 평화협정인지, 외교관계수립협정인지 그 성격은 편의적으로 해석된다. 청구권협정도 배상협정인지 채무변제를 위한 협정인지, 경제원조협정인지 모호하다. 일본은 조약으로 역사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65년 체제’라며 집착한다. ‘65년 체제’라는 용어는 일본의 주장을 상징한다. 이를 축하하는 기념행사는 일본에 유리한 외교프레임이다.
기념행사는 오히려 한일관계를 악화시키곤 했다. 수교 40주년을 기념하는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는 독도와 역사문제로 갈등의 골만 더 깊어졌다. ‘나가자 미래로, 다함께 세계로’라는 슬로건은 무색해졌다. 50주년인 2015년 12월 양국 간 위안부문제 합의는 국내 갈등과 외교마찰만 악화시켰다. 금년 60주년 행사의 슬로건인 ‘두 손을 맞잡고, 더 나은 미래로’는 20년 전의 판박이다. 일본은 올해도 2월부터 독도, 역사교과서 검정, 야스쿠니 참배로 이어가며 재를 뿌릴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행사를 취소하게 되고 이유는 늘 한국이 설명하게 된다. 최근 사도광산 추모식 불참도 그런 류의 패턴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념행사를 10년마다 개최한다.
2025년은 간지상 60년마다 오는 을사년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탈취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으로부터 120년이다. 수교 60주년 행사와 겹치면 국내의 반발과 갈등을 더 자극할 수도 있다. 물론 외교는 국민감정을 넘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사문제는 국민감정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제동원피해자 3자 배상안을 ‘주관식 수학문제를 풀이과정은 쓰지 않고 정답만 달랑 쓰면 대폭 감점당하는 것’에 비유하며 비판한 바 있다. 외교가 민심과 괴리되면 비판에 대해 정부가 변명할수록 오히려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는 ‘웃픈 현상’이 되풀이된다. 지난 연말 윤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로 새해분위기도 을씨년(을사년)스러워졌다. 안중근 의사를 그린 영화 ‘하얼빈’은 연일 최고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역사인식에 관해 우리 내부의 의견이 대립하고 일본과도 접점이 없으니 요란하게 축하할 일도 없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신냉전과 인공지능(AI) 시대에 전략적으로 협력해야할 분야가 많다. 역사문제는 이견을 존중하며 논쟁하면서도 동시에 경제·기술·안보 분야의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과유불급’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선 역사논쟁에 관한 역사적·법적·정치적 논리(내러티브)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내부정리부터 해야 한다. 국내 갈등을 치유하고 총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이 외교력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 출발점은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대표해 ‘19세기말 이래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고통에 대한 보상을 소홀히 했던 것’을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다음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이행할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금년에는 성대한 기념행사는 하지 않는 게 낫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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