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신 ‘애프터 넷플릭스’ 저자 |
“한국 콘텐츠 세계 정복 아니다” 일침
“비싼 제작비? 북미 시장 통할 수준으로 오히려 더 높아져야”
[헤럴드경제=박세정 기자] “시장에선 다 알고 있는 한국 콘텐츠의 한계를 ‘국뽕’에 취한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첫 마디부터 머리를 ‘띵’ 울린다.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성공을 계기로, 콘텐츠 ‘한류’를 의심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의심하기 싫었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국내 미디어의 대표적인 전문가로 꼽히는 조영신 박사는 이는 “오징어게임 성공이 가져온 착시”라고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는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면서 마치 한국 영상 콘텐츠가 세계 주류 시장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며 “한국 콘텐츠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이, 넷플릭스가 가져온 미디어 변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거침없는 직언을 쏟아냈다.
넷플릭스로 촉발된 국내 미디어 변화를 냉철하게 담은 책 ‘애프터 넷플릭스’의 저자 조영신 박사를 지난 10일 만났다. 그는 펜실베니아주립대학에서 미디어 산업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K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을 역임한 미디어·콘텐츠 전문가다. ‘애프터 넷플릭스’ 책을 통해, 넷플릭스 등장 이후 누구도 선뜻 직면하지 못했던 한국 콘텐츠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쳐 업계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조 박는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대세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세계 주류가 되기엔 아직 역부족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조 박사는 “과거 ‘판관포청천’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렇다고 대만 드라마가 세계 주류가 됐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대단한 성과지만, 이 역시 개별 콘텐츠의 성공이지 한국 콘텐츠의 세계 정복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콘텐츠가 간헐적이고, 이벤트적으로만 나온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 콘텐츠의 수요가 여전히 일정 지역, 특정 사업자에만 국한돼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조 박사는 “북미 콘텐츠에 비해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은 여전히 낮고 유럽, 중동 등에서도 선호도가 높지 않다”며 “한국 콘텐츠가 인기 있는 곳은 동남아 등 일부 지역인데 이는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 시청자가 선호하는 보편적인 콘텐츠는 아니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콘텐츠를 구매하는 사업자 역시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뿐”이라며 “HBO, 파라마운트 등은 한국 콘텐츠를 구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콘텐츠는 북미 콘텐츠에 비해 100분의 1 수준의 가성비라고 하는데 왜 글로벌 사업자들이 구매하지 않는가?”라며 “이는 한국콘텐츠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조영신 ‘애프터 넷플릭스’ 저자 |
넷플릭스로 촉발된 지나치게 높아진 제작비가 국내 미디어 환경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지만, 조 박사는 되려 “제작비가 더 커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글로벌에서 통하는 작품들에 비하면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더 투자하는 비용은 오히려 낮은 편”이라며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더 투자해 동남아뿐 아니라, 북미 시장 등에서도 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콘텐츠 질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싼 제작비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것은 되려 한국 콘텐츠를 퇴보시킬 수 있다”며 “1980년대 일본이 제작 단가를 조정하겠다는 이유로 제작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 콘텐츠가 자기 나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넷플릭스에 대항해 국내 토종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들도 티빙, 웨이브의 합병 추진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조 박사는 “안타깝지만 경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1조원을 쓰는 사업자와 1000억원을 쓰는 사업자가 경쟁이 될 수가 없다”며 “시장을 차지한 넷플릭스만이 시장을 조정할 수 있는 수준에 온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넷플릭스를 ‘기본 상수’로 놓고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봤다. 조 박사는 “‘북미에 있는 아시안’처럼 아시아가 아닌 아시안을 공략하는 전략이 필요할 때”라며 “한국 일본이 함께 콘텐츠를 만드는 등 국가 간 협력으로 콘텐츠 규모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