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암컷 대게(빵게).[유튜브 ‘입질의 추억’ 채널 갈무리]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1~2월은 대게 제철이다. 그런데 요즘 미식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게 있다. 일명 ‘빵게’. 빨간 알을 가득 품은 산란 직전의 암컷 대게를 뜻한다.
대게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국내에선 포획 및 유통이 금지된 대게다. 하지만 일본산 빵게가 수입 유통되면서 요즘 암암리에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포획 금지된 국내산 빵게가 섞여 유통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일본산과 구별하기 쉽지 않으니, 불법으로 국내산 빵게를 포획해 같이 판매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일각에선 산란 직전의 대게를 굳이 수입까지 하면서 유통시키는 데에 반발, 빵게 수입을 금지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류성 수산물인 대게의 어획량이 갈수록 크게 줄고 있어, 대게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본산 암컷 대게(빵게)가 판매되고 있다.[네이버 쇼핑 페이지 갈무리] |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동해안 대게 어획량은 2007년 4129톤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어획량은 1848톤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2022년에도 제철에 해당하는 1~5월 어획량이 720톤으로 전년 동기(823톤) 대비 12.5%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인해 한류성 어종인 대게의 개체수 자체가 줄어든 영향이다.
정부는 한때 동해안 어획량 30%가량을 차지한 대게 생산량을 지키기 위해 대게류 자원 관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연중 내내 암컷 대게 포획이 금지된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수산자원 관리법상 국내산 대게 암컷 또는 대게 몸길이 9cm 이하의 대게를 포획하거나 유통·판매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한 음식점의 암컷 대게 홍보 사진.[X(구 트위터) 갈무리] |
하지만 현재 네이버 쇼핑몰 등에서는 암컷 대게 판매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종 식당에서도 암컷 대게를 활용한 메뉴가 나타나는 등 암컷 대게를 소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난 10월부터 일본산 암컷 대게 수입이 시작된 영향이다. 현재 일본은 일부 지역에서 암컷 대게뿐만 아니라 몸길이 8cm 이하의 대게까지 포획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영덕군과 해경 등에 따르면 국내 수산물 유통업자들은 지난해 10월 초부터 일본산 암컷 대게 33톤을 합법적으로 수입했다. 이는 각종 수산시장과 온라인 등에서 ‘북해도산 생물 암컷 대게’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산 암컷 대게가 대거 유통될 경우, 한국의 대게 생태계는 파괴될 수 있다. 특히 1~2월 대게 제철이 시작되며, 국내서 잡힌 암컷 대게가 일본산에 섞여 유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경에 적발된 국내산 암컷 대게(빵게).[포항해양경찰서 제공] |
국내산 암컷 대게와 일본산 암컷 대게의 구분은 쉽지 않다. 일본산 암컷 대게가 혼합될 경우, 적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기존에는 암컷 대게가 국내서 유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보 등으로 판매처 추적이 쉬운 편이었다.
이에 어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 경북 동해안 대게어업인연합회는 지난 11월 충북 식품안전의약처 앞에서 ‘동해안 대게어업인 궐기대회’를 열고 일본산 암컷 대게 수입허가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연합회는 “자국민 어업을 불허하고 일본산 암컷 대게를 수힙한 것은 법을 무시한 행위”라며 “일본산 대게가 국내 시장에 대량 유입된다면 국내산 불법 대게와 혼합돼 시장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연중 포획을 허용하는 일본에서 대게가 국내에 들어올 경우, 금어기를 준수하는 어민들의 생존권도 위협받는다”면서 “유통 질서 혼란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입을 즉각 철회하라”고 강조했다.
강구항에 열린 영덕대게 위판 모습.[영덕군 제공] |
가장 큰 문제는 혼합 유통으로 인해 국내산 암컷 대게 포획이 덩달아 늘어나며, 대게 개체수 감소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 수온 상승과 더불어 악재가 겹치는 셈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 따르면 2023년 동해의 봄철 평균 해면 수온은 10도로 2021년(9도)과 비교해 1도가량 상승했다. 이는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 평균보다 1.8도 높은 수치다.
대게는 2도 이하의 차가운 물에서 서식하며, 고수온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 이에 영덕, 울진, 구룡포 등 경북 일부 지방에 주로 잡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식지가 강원도 해역으로 북상하는 경향이 포착되고 있다. 수온 상승이 지속될 경우, 50년 이내에 우리나라 해역에서 대게를 찾아보기 힘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대게 어업 구역이 밀집된 경북도는 포획이 금지된 국내산 암컷 대게가 일본산으로 둔갑돼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양경찰과 협력해 감시·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