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후순위 전망, 전장기업 전략 수정
트럼프 ‘러브콜’ 조선업계, 美 공장 검토
삼성전자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구축한 생활가전 공장 [삼성전자 제공] |
LG전자 미국 테네시 공장 전경 [LG전자 제공] |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2017~2021년)를 경험했던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 2기에선 보다 강도 높은 통상 압박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맞춰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 등 인센티브 정책을 구사했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외국 기업들에게 대미 투자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페널티 정책의 중심에는 고강도 관세가 있다. 중국산 제품에는 10%의 추가 관세, 인접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바 있다. 20일(현지시간) 대통령 취임 첫 날 서명하게 될 행정명령 서류 중 하나도 무역 관세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 및 제조업 부흥을 위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관세 부담을 못 이긴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2018년 高관세 경험’ 삼성·LG, 상황별 생산 시나리오 준비=수출 최전선에 서 있는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 2기가 제시할 관세 부과 수준과 부과 품목, 부과 지역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생산거점별로 할당된 생산 물량을 조정하거나 생산지를 이전하는 방법 등으로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며 관세 폭탄을 피하겠다는 전략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은 공장을 꽤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것”이라며 “부품 공급부터 제조에서 소비자에게 가는 루트가 잘 돼 있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해 멕시코 케레타로 공장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생산해 미주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멕시코 티후아나에는 TV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브라질 마나우스 공장에선 TV와 에어컨, 스마트폰 등을 생산해 중남미에 공급한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도 CES 2025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면 생산지 조정, 생산지 간 ‘스윙 생산’이라고 해서 같은 모델을 여기저기서 생산하는 방식 등 시나리오별 최적의 대응책(플레이북)을 준비해 놨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미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세탁기에 20~50% 관세를 물리는 세이프가드를 경험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당선 이후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한국산 수입 세탁기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1기를 거치면서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LG전자는 미국 테네시에 세탁기 공장을 짓고 안정적인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그만큼 미국은 가전 기업에겐 놓칠 수 없는 핵심 시장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트럼프 2기에도 현재 보유한 글로벌 생산거점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전략으로 대처하겠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사업 둔화…전장 기업들 전략 수정=트럼프 정부 들어 친환경 정책이 후퇴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기차 등을 겨냥한 국내 기업들의 전장 사업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LG전자 역시 주력 신사업 중 하나인 전장 사업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
이삼수 LG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 부사장은 “지난 3개월 간 관련 부서가 다 모여 대응 시나리오를 리뷰해봤다”며 “기회보단 위협이 더 많다”고 내다봤다. 특히 “일렉트리피케이션(전기화)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전체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2~3년 정도 딜레이될 것으로 예측하고 그에 따라서 전체 사업계획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멕시코를 겨냥해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멕시코에 투자했던 기업들의 전략 변경도 눈에 띈다.
삼성전기는 당초 멕시코에 짓기로 한 전장용 카메라 모듈 생산공장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CES 2025에서 “아직 클리어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멕시코 공장은 홀드시키고 제3의 위치를 찾고 있다”며 “공급망 이슈가 굉장히 중요한데 여러 고객을 상대할 수 있는 곳으로 다변화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러브콜’ 받은 조선업계, 美에 생산거점 추진=국내 조선사들은 미국 내 생산거점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기대감이 커진 미국 군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것이다. 글로벌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중국과 달리 선박 건조 경쟁력이 뒤처진 미국은 최근 우리나라에 지속해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직후 “우리 선박 수출 뿐만 아니라 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도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번스-톨리프슨 수정법에 따르면 미국 군함의 해외 건조 및 수리는 불법이다. 국가 안보 관련 긴급 상황이 있을 시 해외 건조를 허용하는 예외 조항이 있지만, 국내 조선사들이 미국 시장에 확실히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우선 현지 조선소를 인수해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한화는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 인수를 최종 완료했다. HD현대도 조선소 인수 등을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일·한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