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된 경찰’ 필요하면 최루액도 쓰겠다 [세상&]

경찰 시위 경비·진압 수준 높인다
경찰, ‘공격형 장비’ 현장서 적극 활용키로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지난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에 반발해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청사로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에서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이용경·박지영·김도윤 기자] 지난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불법 침입하는 폭동 사태를 일으키면서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방침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서울경찰청은 폭력 조짐이 보일 경우 관련 법령을 근거로 정당한 물리력을 사용할 방침으로 파악됐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출석을 앞둔 이날 오전 중 대책회의를 열고 이 같은 지침 등을 논의했다. 일선 경찰서와 기동대 등에 필요할 경우 적극적으로 장비를 사용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전파했다. 이날 헌재 인근에는 평소엔 접혀 있다가, 집회 현장에서 전개하면 대형 차단벽이 되는 ‘차벽 트럭’(차량형 안전펜스) 장비도 등장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경찰이 불법 집회·시위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비에는 경찰봉(3단봉)과 테이저건, 캡사이신(최루액) 분사기 등이 포함된다. 이는 집회·시위 양상에 따라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다만 그럴 때마다 ‘강경 진압’으로 질타를 받으면서 경찰은 장비 사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지난 18~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발생한 초유의 폭동으로 기류가 달라졌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격앙된 지지자들의 경찰을 폭행하고 법원에 난입해 각종 집기를 파손했다. 경찰 51명이 부상을 당했고, 이들 가운데 7명이 중상을 입었다.

서울청 관계자는 “현장 상황이 과열될 경우 장비를 사용하라는 것은 이미 관련 규정에 명문화 돼 있다”며 “경찰이 가용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위해성 장비 중 최루액도 최근에는 거의 쓰지 않았는데 (앞으로) 필요하다면 사용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수비형 장비로 버티는 경찰…‘피로누적’ 기동대 우려도


다만 경찰이 불법 폭력시위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경찰이 시위 관리에 쓸 수 있는 장비는 ‘공격형’과 ‘수비형’으로 나뉘는데, 현재 현장 경찰 대부분은 수비형 장비로 분류되는 진압복과 헬멧, 방패 등만 주로 사용하고 있다.

공격형 장비로는 ‘가스차’와 ‘살수차’, ‘3단봉’, ‘장봉’, ‘최루액’, ‘테이저 건’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살수차는 지난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집회 당시 고(故)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 이후 비판 여론이 불거지며 폐기됐다. 더불어 대규모 폭력사태를 대응하기 위해 도입했던 살수차 18대와 가스차 12대를 사용 연한 경과 등을 이유로 2021년 6월 모두 폐기했다.

이에 현재 적극적인 시위 진압에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장비는 3단봉과 방패, 최루액 뿐이다. 테이저건은 1대 1 대치 상황이 아닌 대규모 군중들이 모인 폭력 사태에는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19일 오전 서부지법 후문 인근에서 경찰이 시위 중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해산시키려고 하자 지지자들이 이를 막고 있다. [연합]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찰 안팎에선 기동대 전반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한 경찰 관계자는 “기동대 경찰들 중 크게 다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계엄사태 여파로 계속 집회시위 관리에 동원되는 와중에 현장 경찰들이 부상까지 입으니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3단봉도 공격형 장비라 쉽게 사용하기 힘들다. 그간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이 해당 장비들을 잘못 쓰면 비판을 많이 받은 터라 최루액과 방패 말고는 사실상 쓸 수 있는 게 없다”며 “동료 경찰들이 또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이 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 현장 경찰들이 위축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한 달 넘도록 비상근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현장 기동대원 중에서는 내란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자기 신분이 어떻게 될지 몰라 위축된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힘이 나서 알아서 하겠느냐”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직접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에 기동대 64기, 4000명의 경력을 배치하고 차벽을 설치했다. 연일 계속되는 근무로 피로누적을 호소하는 서울청 소속 기동대원을 대신해 경기·인천·강원경찰청 기동대원들도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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