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 난동’ 후유증 앓는 마포 주민들
“환청 들리듯 그날의 소음 귀에서 맴돌아”
전날 헌법재판소 앞 모여든 尹 지지자들에
안국 일대 “이제 우리 차례냐” 고통 호소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3차 변론이 열리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효정·김도윤 기자] “원래 법원 앞이라 안전했던 동네가 이젠 법원 앞이라 안전하지 않게 됐어요. 아직도 그날의 소음이 귀에서 윙윙 울리는 듯 합니다.”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민모(40) 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이같이 말했다. 민씨는 ‘서부지법 난동’이 끝났어도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민씨는 “이 동네에 10년 넘게 살았지만 그렇게 시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정말 조용하고 살기 좋은 동네였다”면서 “밤에 자려고 누우면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서 계속 뒤척이곤 한다”라고 말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지역들을 중심으로 주민 사회에서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각종 집회·시위는 서울 광화문 광장이나 서울시청 앞 광장 등에서 열리곤 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이후 ‘집회의 메카’는 서울 한남동(대통령 관저)→마포(서부지법)→안국(헌법재판소)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서부지법 난동’과 같이 미신고 집회를 기습적으로 열고 과격한 행동을 보여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일상생활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 직원 전용 출입구가 폐쇄돼 있다. [연합] |
공덕역 인근에서 자취하는 A씨도 ‘서부지법 난동’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A씨는 “대통령이 체포되고 ‘한남동은 이제 조용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집회가) 내 집 근처로 넘어올 줄 몰랐다”면서 “출퇴근길에 항상 서부지법을 지나는데, 미처 정리되지 못한 시위의 흔적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서부지법 집회 당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마이크 볼륨 소리가 창문을 뚫고 방 안까지 들어와서 헤드셋을 끼곤 했다”며 “아직도 집에 들어서면 지난 주말 밤이 생생히 기억난다. 악몽이었다”라고 전했다.
안국역 일대 주민들은 ‘이제 우리 차례냐’라며 집회 후폭풍을 우려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하자 보수 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반대’를 외치며 헌재 앞으로 속속들이 결집했다.
안국역의 한 잡화점에서 일하는 최모(56) 씨는 최근 집회 때문에 자신의 둥근 성격이 뾰족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건 장사 잘 되고 안 되고의 문제를 넘어섰다. 밖 자체를 못 나가겠다”라면서 “문 앞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 받아 죽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집회 참가자들이 ‘화장실 금방 쓰고 나가면 안 되냐’ ‘화장실 어디냐’ 물어보면서 가게 문을 열고 닫으니까 미칠 노릇”이라면서도 “혹시나 정말 정신 나간 사람들이 난리칠까봐 뭐라하진 못하고 말만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가회동에 사는 김모(33) 씨는 헌재 앞 골목을 지나면서 초등학생 아이에게 ‘사람들이 이상한거야’라고 말한 뒤, 아이 귀를 자신의 두손으로 꼭 막았다. 김씨는 “시위대가 ‘누굴 죽이고 사형시켜라’ 그런 말들을 자꾸 하는데, 물론 나도 듣기 불편하지만 애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서 그저 가던 길을 빨리 지나가려고 했다”고 했다. 김씨는 “집이 가회동이어도 헌재 쪽을 자주 지나치게 되는데 앞으로 얼마나 이렇게 무질서하고 정신없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안국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권모(40) 씨 역시 집회로 하루하루 불안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권씨는 “괜히 말 한 번 잘못 했다가 가게에 해코지 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면서 “그냥 조용하고 산책하기 좋은 동네였는데, 갑자기 집회 장소가 되니까 동네를 뺏긴 것 같아 우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