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도 野도 ‘기승전 이재명’…원톱 李, 중도 확장 숙제

“이념·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아”
‘성장’ 방점 찍은 ‘우클릭’ 시동
反明정서 극대화 전략 택한 與
“권력 위한 신종사기, 사과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상섭 기자


조기대선 가능성이 고개 든 정치권에서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 구도가 빠르게 굳어지고 있다. 두 번의 전당대회와 지난해 총선을 통해 당 장악을 마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지지율 하락세에도 대선 물밑 채비에 한창이다. 유력한 1강 없이 ‘잠룡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여권에서는 반이재명 반사이익을 노린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례적인 지지율 상승을 경험한 국민의힘 지도부도 노골적인 ‘이재명 때리기’에 나섰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0~22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28%가 이 대표를 꼽았다. 뒤를 이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14%) ▷홍준표 대구시장(7%) ▷오세훈 서울시장·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각 6%)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우원식 국회의장(각 3%) ▷김동연 경기지사·유승민 전 의원(각 2%)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김경수 전 경남지사(각 1%) 순으로 조사됐다(응답률 22.2%, 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이 대표는 최근 실시된 다수의 차기 대권 적합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추이는 하락세다. 지난 6~8일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 이 대표는 31%를 얻었고, 이 대표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모두 한 자리 수에 그쳤다. 보름 새 달라진 건 이 대표의 지지율뿐만이 아니다. 당시 조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강성 보수 성향의 김문수 장관이 2위로 급부상한 배경에 짙어진 ‘반이재명’ 정서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들어 하락한 민주당 지지율(36%)은 국민의힘(38%)과 오차범위 내로 붙었다.

이 대표가 꺼내든 카드는 ‘우클릭’이다. 이 대표는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며 “‘민간 주도 정부 지원’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변함없는 무역과 투자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반도체·배터리·에너지 등 주요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한미동맹을 거듭 강조했다.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라며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꺼내들기도 했다.

‘공정성장’이란 키워드를 제시한 이 대표는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자신의 대표 정책 의제인 ‘기본사회’ 정책 철회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경제 주자’ 이미지를 선점하고 기업친화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자, 반이재명 정서를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구속으로 보수가 결집하고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상황”이라며 “향후 대선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중도층을 공략하는 회견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야권에선 이른바 ‘신삼김(김경수·김동연·김부겸)’을 비롯한 잠룡들도 조기대선을 염두에 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 대표의 원톱 체제를 저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확정하면 ‘60일 이내’에 대선이 치러져야 한다는 물리적인 시간제한과 ‘일극체제’란 평가를 받는 이 대표의 당 장악력 때문이다.

이 대표가 지난해 8월 당대표직 연임에 성공한 이후 출범한 ‘집권플랜본부’와 ‘당대표 특보단’은 대표적인 대선 준비 기구로 거론된다. 원외 친명계 인사들이 주축이던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해 총선에서 국회의원 31명을 배출해 원내·외를 아우르는 명실상부 당내 최대 조직으로 부상했다. 사실상 민주당 안팎의 인적 자원이 ‘이재명 조직’이 된 셈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 공천에서 ‘비명횡사’라는 말까지 생기지 않았나”라며 “170명의 민주당 의원 중 대다수가 친명(친이재명)계”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반이재명 정서를 자극하는 메시지가 국민의힘 안팎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의 실용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실용이 아니라 오직 권력을 잡기 위한 신종 사기”라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은 “기본사회가 정말 잘못된 정책임을 인정한다면, 이 대표는 그동안 기본소득으로 국민을 기만해온 점을 사과하라”며 “민주당은 기본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정강정책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지율 회복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할 것이 아니라, 법정에 제때 제때 출두해야만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거대야당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표정하나 안 바뀌고 온 국민 앞에서 자기 정책과 노선을 멋대로 갈아엎을 수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원내대표는 경제계 반발 속에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처리됐던 노란봉투법,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을 거론하며 “이제 와서 기업을 위하겠다고 한다. 스토킹 범죄자의 사랑 고백처럼 끔찍하고 기괴하다”라고 비판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실제로는 민주노총 눈치를 보며 주 52시간 규제를 제외하는 반도체 특별법 처리를 반대하고 있고, 신성장 동력 창출의 에너지 공급 기반이 돼 줄 에너지 3법도 계류돼 있다”며 “이 대표의 기자회견이 거짓이 아니라면 미래먹거리 3법 등 초당적 협력과 상법 개정안 등 악법의 과감한 철회로 진심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반이재명 기류와 관련해 “계엄 사태 전에는 이 대표 위에 더 큰 권력을 가진 것 같은 대통령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라며 “현재의 최고권력자는 이 대표이고, 국민들은 고개 숙이지 않는 최고권력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진·양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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