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꽁지돈 반드시 갚아라…차용증 작성했다면 상환 의무 [세상&]

도박자금이라도 차용증 작성했다면…대법 “돈 갚아야”
대여 1년 6개월 뒤 아버지가 대신 차용증 작성
돈 안 갚고 며느리 등에게 부동산 넘겨
대법 “별도 차용증 적었다면 도박자금이라도 갚아야”


영화 타짜의 도박에 중독된 교수. 교수는 돈을 빌려 도박을 하는 역할로 나온다. [영화 타짜 갈무리]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도박자금에 쓸 돈을 빌려줬더라도 사후에 차용증을 작성했다면 돈을 갚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원칙상 도박자금은 불법 원인으로 빌려준 돈이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다만, 돈을 빌려주고 시간이 흐른 뒤 별도의 차용증을 작성했다면 별도의 약정이라는 취지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채권자(돈을 빌려준) A씨가 채무자(돈을 빌려간) B씨 가족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 패소 취지로 판결한 원심(2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깨고,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수원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2~5월께 2차례에 걸쳐 친구인 B씨에게 도박자금으로 쓸 돈 총 5000만원을 빌려줬다. 돈을 빌려주고 3개월 뒤 A씨는 차용증도 받아냈다. 차용증엔 금액과 언제 돈을 갚을지에 대한 내용만 있었고 이자율이나 돈을 빌려주는 명목 등은 기재돼 있지 않았다.

대법원. [연합]


B씨는 얼마 뒤 도박으로 돈을 모두 잃었다. A씨가 돈을 갚을 것을 독촉하자 B씨의 아버지는 2022년 10월께 “대신 돈을 갚겠다”는 내용의 보증서를 작성해줬다. 문제는 B씨의 아버지가 보증서를 작성한 직후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다른 자식과 며느리에게 이전하면서 생겼다.

A씨는 B씨의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일명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걸었다. 이는 채무자 측에서 채권자에게 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재산을 빼돌렸을 때 해당 법률행위(부동산 소유권 이전)를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이다. 받아들여지면 부동산이 다시 B씨 소유로 돌아간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에선 A씨가 이겼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여주지원 조정웅 판사는 2023년 7월 A씨 측 승소로 판결했다. 무변론 판결이었다. 이는 피고(B씨) 측에서 원고의 주장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때 원고 측 승소로 간주하는 판결이다.

반대로 2심에선 A씨가 졌다. 2심을 맡은 수원지법 9-2민사부(부장 진현지)는 지난해 7월,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A씨도 돈을 빌려줬을 당시 돈이 도박자금으로 사용된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불법원인 급여이므로 반환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따라서 B씨가 소유권을 이전한 부동산에 대한 A씨의 권리도 없으므로 A씨의 사해행위 취소권 행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가 돈을 빌려주고 3개월 뒤 별도의 차용증을 작성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비록 도박자금으로 돈을 빌려줬더라도 사후에 별도의 약정을 한 이상 채무가 존재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B씨는 A씨에게 차용증을 작성해 줌으로써 5000만원을 반환하기로 하는 별도의 약정을 했다”며 “B씨의 가족도 그 반환약정에 따른 채무를 보증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결했다.

이어 “그렇다면 반환약정은 그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며 “보증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은 해당 약정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며 깨고, A씨 승소 취지로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수원지법에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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