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L·오라·AKG 등 오디오 브랜드 인기
작년 최대 영업이익 추정…시너지 본격화
디지털 콕핏·카오디오로 미래차 새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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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하만이 1월 CES 2025 전시장에서 선보인 차량용 신제품과 솔루션을 관람객이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삼성전자의 오디오·전장 자회사 하만은 지난해 연간 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7년 삼성전자에 인수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초대형 인수합병(M&A) 사례로 남아 있는 하만은 최근 삼성과의 시너지가 본격화하면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 기존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들이 정체된 시기에 나온 결과인 만큼 그 성과가 더욱 돋보이는 상황이다.
하만이라는 이름은 일반 대중에게 낯설 수 있지만 하만이 보유한 오디오 기기 브랜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거나 사용해봤을 만큼 매우 친숙하다.
블루투스 스피커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JBL’, 진공관 디자인과 무드등으로 인기가 높은 ‘오라(AURA)’, 헤드폰과 마이크로 유명한 ‘AKG’, 명차들이 사운드 시스템으로 선택한 ‘렉시콘(Lexicon)’과 ‘뱅앤올룹슨(B&O)’ 등이 모두 하만의 이름 아래에 있다.
그러나 하만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장치 부품, 즉 전장부품 사업이 떠받치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이었던 자동차 계기판과 오디오 장치 등이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면서 하만의 매출 60%를 차지하는 전장 사업도 탄력을 받았다.
운전석에서 주행 정보와 차량 상태·엔터테인먼트 정보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차량 내 멀티 디스플레이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과 카오디오가 하만 사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5000만대 이상의 자동차에 하만의 카오디오와 커넥티드 카 시스템이 들어간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무선 통신 등 모바일·IT 부품에서 경험이 많은 삼성전자는 하만의 전장 기술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과의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전장 분야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다지는 중이다.
▶‘아픈 손가락’에서 최대실적 ‘효자’로=하만은 2023년 연간 영업이익 1조1737억원을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1~3분기 하만의 누적 영업이익은 9163억원이다. 4분기에는 약 4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렸을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정한다. 시장 예상치대로라면 1조3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둬 1년 만에 또 다시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셈이다.
2023년 기준 하만의 연간 매출은 14조3885억원으로,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5.6%를 차지했다. 2018년 1.6%였던 것을 고려하면 꾸준히 몸집을 불리며 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첫 해인 2017년 하만의 영업이익은 574억원에 불과했다. 2020년에는 상반기 적자를 내면서 그 해 영업이익이 555억원까지 떨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완성차 업계가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타격을 받았다.
본격적인 성장 모멘텀을 맞은 건 2021년이다. 유럽과 북미 지역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대형 수주에 성공하며 최대 수주 실적을 달성했다.
그 해 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전년 대비 10배 이상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하만의 불필요한 법인과 자회사를 정리하고 디지털 콕핏, 카오디오, 텔레매틱스 등 성장성이 높은 전장 사업에 집중한 것 또한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하만카돈의 카오디오 시스템은 현대자동차와 기아, 폭스바겐 전기차 등에 탑재됐고, 메르세데스-벤츠의 럭셔리 전기차 EQS에도 하만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공급됐다. 제네시스 GV60과 GV70, GV80, GV80 쿠페, G80, G90에서도 하만의 뱅앤울룹슨 사운드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9월 하만 멕시코 공장을 찾아 사업장을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
▶전장사업 성장 내다본 삼성, 9.4조 승부수 통해=하만의 사업이 본격적인 성장세를 타면서 9년 전 삼성전자의 결단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이사회에서 하만을 총 8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의결하고, 이듬해 3월 인수 작업을 완료했다.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9월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뒤 처음 단행한 초대형 M&A였던 만큼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인수금액은 총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로, 삼성의 역대 최대 규모 M&A이자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 역사에서 가장 큰 ‘빅딜’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는 지나치게 비싸게 샀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전장 사업 확대를 노렸던 삼성전자는 과감하게 베팅하며 하만을 품에 안았다.
이전까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전장 사업에 나섰던 삼성전자는 하만을 새로운 중심축으로 삼아 전장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에 나섰다.
이재용 회장은 2022년 9월 멕시코에 위치한 하만 공장을 직접 방문해 사업 현황을 보고받고, 생산 현장을 점검하기도 했다.
하만 인수 이후에도 전장 사업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후속 M&A 작업이 이어졌다. 하만은 2021년 독일 증강현실(AR)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아포스테라(Apostera)’를 인수했다. 2023년 12월에는 음악 관리, 검색 및 스트리밍 플랫폼 ‘룬(Roon)’을 사들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산하 전장사업팀 이름을 하만사업팀으로 바꾸고 전장 사업과 관련된 사내 모든 역량을 하만 중심으로 통합하며 힘을 실어줬다.
삼성전자가 2023년 한 해 생산한 디지털 콕핏은 765만개에 달한다. 지난해 3분기까지 생산실적은 467만개다. 디지털 콕핏의 평균 판매가격은 전년 연간 평균 대비 약 1% 상승했다.
▶삼성·하만 시너지, 갤럭시 넘어 ‘미래차’에서 극대화=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이후 갤럭시 스마트폰, 갤럭시 탭, 갤럭시 버즈 등 모바일 기기에 하만의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AKG의 음향 기술을 탑재하며 하만과의 시너지를 꾀했다.
양사의 협력은 단순히 갤럭시 기기에 하만의 오디오 기술을 접목하는 수준을 넘어 자동차를 겨냥하고 있다. ‘미래 자동차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시너지를 보다 강화하는 모습이다.
2018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에서 삼성전자와 하만이 공동 개발한 디지털 콕핏을 처음 공개한 이후 양사는 미래 자동차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올 1월 열린 CES 2025 현장에서도 삼성전자와 하만이 구축한 한층 더 똑똑해진 ‘차량용 지능’을 앞세워 운전자와 탑승자의 기분까지 챙기는 최신 개인화 기술과 제품들을 대거 만나볼 수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하만의 새로운 인공지능(AI) 음성 비서(보이스 에이전트) ‘루나(Luna)’였다. 차량 안에서 “하이 루나!”를 외치자 귀여운 루나 캐릭터가 차량 앞 유리의 헤드업 디스플레이 ‘레디 비전 큐뷰’에 등장했다.
루나는 운전자의 졸음 여부나 스트레스 등을 감지할 뿐만 아니라 피곤해 보이는 운전자에게 커피숍으로 갈 지 묻고, 곧바로 최적화된 경로까지 척척 안내했다.
이는 운전자와 탑승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하만의 ‘레디 케어’ 기술 덕분에 가능했다. 삼성전자와 하만의 협업으로 탄생한 레디 케어는 운전자의 신체와 감정 변화를 인지해 상황에 맞는 기능을 작동시키는 솔루션이다.
이외에도 주행 중 도로 위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고를 보내 사고를 막는 하만의 ‘레디 어웨어’, 차량에서 쇼핑할 수 있는 통합 디지털 상거래 플랫폼 ‘레디 링크 마켓 플레이스’까지 가까운 미래 차량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술을 총 망라해 선보여 완성차 고객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자동차가 하나의 커다란 전자장치 덩어리가 되면서 하만 외에도 다수의 기업이 전장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실제로 중국 TLC도 이번 CES 기간 전시관 한 켠에 자동차 조종석 콘셉트의 공간을 마련하고 관람객들에게 디지털 콕핏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IT 부품 분야에서 쌓은 기술 개발 경험과 하만이 보유한 전장 노하우가 결합해 발휘하는 시너지를 차별화한 강점으로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도 양사의 협업을 통해 전장 사업의 거래선을 다변화하고 신규 수주 확대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