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게 사랑했어요” 불륜 들킨 유부男의 변명…결국 파국 맞았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에드워드 번 존스 편]

[140 인물편. 에드워드 번 존스 & 마리아 잠바코]

<동행하는 그림>
피그말리온과 이미지
속임수에 빠진 멀린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에드워드 번 존스, 용서의 나무(일부 확대), 1881~1882, 캔버스에 유채, 190.5×106.7cm, 리버풀 국립 박물관


에드워드 번 존스, 불길한 머리, 종이에 유채 등, 153.7x129cm, Southampton City Art Gallery


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미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풍성한 미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은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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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뛰어들래요?”
죽음 앞 그녀는 진심이었다


에드워드 번 존스, 바다의 깊이, 1887


“나와 함께 뛰어들 수 있어요?”

“아니, 그건….” …그럴 줄 알았다. 마리아 잠바코 에드워드 번 존스가 이 제안을 거절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존스는 유약한 사내였다. 매번 몽상가인 척하지만, 알고보면 누구보다도 현실을 따지는 남자였다. 그래. 그의 그런 점이 매력적이기는 했다. 앞뒤 재지 않는 맹수가 판치는 예술계에서 이는 보기 드문 기질들이었다. 매 순간 격정적인 그녀 자신에게도 부족한 자질이었다. 난상 토론이 벌어지는 가운데서 조용히 책을 읽고, 이런 와중에도 주변 눈치를 끝없이 살피는… 그렇기에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이 초식동물 같은 사람에게.

에드워드 번 존스, 사랑과 순례자, 1896~1897, 캔버스에 유채, 304.8×157.5cm, 내셔널 갤러리


그러나 잠바코는 이번만큼은 존스에게 야성을 품길 바랐다.

그대 또한 지금껏 나를 사랑한 게 맞다면 결단해보라. 어떤 식으로? 죽음으로. 그러니까, 잠바코는 지금 존스에게 함께 강물로 들어가 잠기기를 권하고 있었다.

물론 잠바코 또한 이 부탁이 억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그것에는 현자를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세상 제일 가는 겁쟁이조차 용자로 우뚝 서게하는 마법이 있다. 즉, 나와의 사랑이 진실이었다면 어디 한번 증명해 보라는 얘기였다. 당신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 삶의 부정, 생의 변절로.

에드워드 번 존스, 저녁별, 1872~1873, 종이에 수채 등, 79x56cm, 개인소장


“아주 잠깐만 용기를 내보세요. 그러면, 모두가 우리 진심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잠바코는 존스의 팔을 잡고 다시 방벽으로 향했다. “마리아. 그건 너무 극단적이오.” 존스가 재차 말을 끊었다. 그의 동공과 두 손은 미친 듯 떨리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이것까지 챙겨왔어요.” 잠바코가 주머니 하나를 보였다. 그 안에는 하얀 가루가 있었다. 아편이었다.

“이걸 먹고 같이? 안 돼. 이건 아니야.” 존스가 또 한 번 몸을 움츠렸다. “그럼…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군요?” 잠바코가 부드럽게 물었다. 존스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왜?” “마리아. 당신은 지금 너무 흥분했어.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소.” 존스가 잠바코의 푸른 눈을 응시했다. 하지만, 잠바코는 더 이상 존스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번 존스, 밤, 1870, 종이에 수채 등, 122.2×45.7cm, 포그 박물관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하겠어요.”

잠바코가 홱 돌아서 방벽 위로 손을 뻗었다. 깜짝 놀란 존스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끌듯 붙잡았다. 둘은 뒤엉킨 채 바닥에서 뒹굴고, 울고, 절규했다. 시끌벅적한 소란은 경찰이 오고서야 겨우 잠잠해질 수 있었다. 이는 1869년의 어느 늦은 밤, 영국 런던 리젠트 운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건 무슨 미친 사랑의 해프닝인가.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처연한 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까. 이유가 있긴 했다. 첫째. 둘은 현재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 둘째. 그 관계가 끝내 들켜버렸다는 것. 한바탕 난리를 쳤던 두 사람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각자의 집에 돌아가 누웠다. 그날 밤 잠바코도, 존스도 무언가를 결심한 듯했다. 둘은 어디서부터 꼬였으며, 점점 꼬이고만 있는 이 상황을 풀어가게 될까.

라파엘 전파 정글 속에서
남다른 남자 만나 반하다


에드워드 번 존스, 판의 정원, 1886~1887, 캔버스에 유채, 152.5×186.9cm, 빅토리아 미술관


잠바코는 존스를 1866년, 런던에서 처음 봤다. 당시 잠바코는 스물셋, 존스는 서른셋이었다.

잠바코는 첫 대면 순간부터 존스를 흥미롭게 봤다. 그의 작업실에는 옛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등 고전에 대한 메모가 가득했다.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니면 글을 쓰고, 직접 시나 가사를 구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존스가 일원으로 있는 당시 라파엘전파 화가들 사이에선 신화나 전설에 대한 이야기가 유행하긴 했다. 라파엘전파는 라파엘로 산치오로 대표할 수 있는 르네상스 후기 회화의 전(前) 시기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모임을 뜻했다. 더는 라파엘로처럼 이상적 구도, 완벽한 조화를 좇지 말자는 게 기조였다. 뭘 그리든 조금 더 사실적으로,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보자는 것 또한 핵심이었다.

당시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옛이야기, 특히나 고전 문학을 주제로 즐겨 삼았다. 이들 입장에선 그 안에 있는 극적 장면을 더욱 현실적으로 표현해보는 게 중요한 과제이자 실험이었다.

즉, 엄밀히 말해선 존스가 과거 신화를 노래한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에게 관심을 두는 일 자체는 특이하다고 볼 수 없었다.

에드워드 번 존스, 숲으로 들어간 왕자, 1871~1872, 캔버스에 유채, 60×127.5cm, Museo de Arte de Ponce


그럼에도 잠바코가 존스만은 남다르게 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존스가 뿜어내는 농도 짙은 유함 때문이었다.

이 사내는 다른 숱한 이들과 달리 말이 많지 않았다.

무언가에 대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저질스러운 싸구려 농담도 던지지 않았다. 문학적 조예와 감성을 앞세워 이곳저곳 들쑤시는 타 라파엘전파 화가들과 달리, 그는 조용히 연구와 작업만 이어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런 와중에도 《일리아스》의 어떤 구절을 읊어달라고 하면 이를 노래하듯 외웠는데, 그의 성대를 통해 흘러나오는 문장들이 참 황홀했다. 그녀 눈에 비친 존스는 알면 알수록 신비한 사내였다. 매순간 금방 타오르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사내에게 더 끌린 게 아닐까.

에드워드 번 존스, 수태고지, 캔버스에 유채, 250×104.5cm, Lady Lever Art Gallery


당시 잠바코는 라파엘전파 화가와 두루 친한 어머니의 권유로 존스를 만난 것이었다.

원래는 두어 번 모델이나 서준 후 느슨한 인연이나 이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잠바코는 그를 사랑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녀에게는 돈도 있고, 옆자리도 비어있었다.

잠바코는 런던을 근거지로 둔 부유한 그리스계 사업가의 딸이었다. 열일곱 살에 결혼을 한 번 하긴 했지만, 때마침 존스를 만난 그 무렵 남편과 갈라선 상태였다. 지금의 그녀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자유였다.

신이 짠 듯한 상황이었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됐다


에드워드 번 존스, 테세우스와 미궁의 미노타우로스, 1861, 종이에 연필 등, 26.1×25.5cm, 버밍엄 미술관


존스 또한 그런 잠바코와 로맨스를 꽃피울 준비를 하긴 했다.

누구보다도 그리스 문화를 사랑하는 그에게 그리스계 여인이 불쑥 나타난 일, 그런 그녀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일. 마치 신이 설계해 건넨 듯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당시 잠바코는 예술계에선 ‘스터너(stunner)’로 불리고 있었다. 이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만큼의 미인이라는 뜻이었다.

에드워드 번 존스, 피그말리온과 이미지(갈라테이아), 1878, 캔버스에 유채, 143.7×116.8cm, 버밍엄 미술관


잠바코를 향한 존스의 솔직한 마음은 그 무렵 작업에 나선 연작 <피그말리온>을 통해 확실히 엿볼 수 있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다. 실력이 출중한 피그말리온은 그의 이상형도 조각으로 직접 만들어본다. 어찌나 혼을 실어 빚었는지, 피그말리온은 곧 그 작품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는 그녀에게 ‘흰 여인’이란 뜻의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녀 앞에서 밥을 먹고, 그녀와 함께 잠드는 나날을 이어간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향해 기도한다. “내 필생의 연인인 이 조각상과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에드워드 번 존스, 피그말리온과 이미지(갈라테이아), 생명을 얻은 모습, 1878년경, 캔버스에 유채, 76.6×99.4cm, 버밍엄 박물관 존스는 잠바코를 갈라테이아의 모델로 삼으며 그가 바란 꿈의 여인이 그녀라는 점을 은연중에 공표했다. 그림 속 피그말리온은 생명을 얻은 갈라테이아의 발밑에 무릎을 꿇은 채 경배하듯 올려다보고 있다. 갈라테이아 또한 그런 피그말리온에게 저항 없이 몸과 마음을 내줄 듯 보인다.


그 순간, 딱딱했던 조각이 말캉해진다. 피그말리온의 순정에 감동한 아프로디테가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존스는 잠바코를 그림 속 조각상, 막 인간이 되고 있는 갈라테이아의 모델로 삼았다. 이러한 신화에 빗대 ‘무례하고 가까이 다가가기는 힘들지만, 정말 아름답고 재능 많은’(만화가 조르주 뒤 모리에가 잠바코를 두고 한 말) 잠바코를 향한 마음을 가감 없이 내보였다. 그녀가 나에게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란 점을.

에드워드 번 존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1876, 캔버스에 유채, 15.2×22.9cm, 남호주 미술관


존스가 잠바코에게 끌리는 이유는 외모와 출신 말고도 또 있었다.

잠바코가 존스의 유함을 좋아했듯, 존스는 잠바코의 매사 자신감 넘치는 성격에 호감이 갔다. 존스는 출생 후 고작 엿새 만에 어머니를 잃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곧장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이런 탓에 어린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가 약간의 의기소침함을 달고 산 데는 이러한 배경도 영향을 줬다.

그런 존스에게 잠바코는 처음 보는 갈래의 사람이었다. 본인의 이혼 사실 또한 알아서 밝히고, 아예 “나랑 같이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으로 도망칠래요?”라며 호기롭게 내지를 줄도 아는. 누가 누구를 먼저 유혹하지 않았다. 둘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스며들어서는 안 될 사이가 스며들었다는 것. 문제는 이것이었다.

에드워드 번 존스, 펠레우스의 향연, 1881, 캔버스에 유채, 36.9×109.9cm, 버밍엄 박물관


특히나 이유야 어떻든 존스는 그러면 안 됐다.

존스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일곱 살 연하의 여인, 조지아나였다. 존스는 조지아나와 잠바코 사이에서 몇 년간 위험한 줄타기를 했다. 조지아나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고, 잠바코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여러 면에서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행보였다. 잠바코 또한 존스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 또한 아슬아슬한 관계를 끊지 않았다.

잠바코는 계속 존스의 모델로 나섰다. 존스도 잠바코의 화가로 꾸준히 붓을 쥐었다.

두 사람은 관계를 끝까지 비밀스럽게 이어가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어느새 주변 인물들은 이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부정은 언제나 파국을 맞는다. 단지 그 시기가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 속
남녀의 전혀 다른 선택


에드워드 번 존스, 페르세우스의 무장, 1885, 캔버스에 유채, Southampton City Art Gallery


1869년의 어느 날.

잠바코가 한 가정집의 문고리를 돌렸다. 그녀는 지금 존스의 친구, 찰스 하웰의 초대를 받고 이곳까지 온 상황이었다. 문을 열자 방이 보였다. 하웰은 없고, 다른 사람도 없고, 오직 한 여인만 그 집에 있었다. 존스의 아내 조지아나였다.

그러니까, 하웰은 짓궂게도 이 두 여인의 만남을 유도하기 위해 술수를 쓴 것이었다. 잠바코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얼마 후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이는 존스였다. 존스는 먼저 조지아나를 봤다. 그다음… “조지아나. 당신이 왜 여기에?” 얼어붙은 존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또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인 건 마찬가지였다. 불륜을 말 그대로 딱 걸려버린 격이었다.

에드워드 번 존스, 레바논에서 온 신부, 1891, 캔버스에 유채, 워커 미술관


잠바코는 당장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둘 중 한 명을 골라보라는 식의 모습이었다. 조지아나 또한 그간 남편과 이 여자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그렇다면 존스는…? 말이든, 몸짓이든 어떤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졸도부터 해버렸다.

잠바코와 존스의 강물 옆 극단적 시도 소동은 이번 일이 끝난 직후 빚어진 건이었다. 여기에는 잠바코의 제안에 존스가 시종일관 거절했다는 설, 함께 가기로 해놓고선 막판에 변심했다는 설, 함께 실행까지 했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 실패했다는 이야기 등도 있다.

에드워드 번 존스, 마리아 잠바코, 1870, 캔버스에 유채, 76.3x55cm, 클레멘스 젤스 박물관 어찌 이처럼 고혹적인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존스가 비너스의 화신 격으로 그린 잠바코를 보면, 그가 그림을 통해 이런 변명을 내놓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정면을 바라보는 잠바코는 분명 매력적이다. 큐피드 또한 그런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존스와 잠바코 사이 관계가 합리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잠바코와 존스는 그러한 난리를 겪고도 얼마간은 서로 이어져있었다.

잠바코는 문제의 사건 이후로도 존스의 그림 속 모델로 종종 등장했다. 가령 소란이 있고 1년 후, 잠바코는 존스의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돼 등장한다.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가 커튼을 열어젖히고, 모습을 보인 아프로디테는 깊은 눈망울로 화폭 밖을 바라본다.

당시 이런 류의 구성은 화가가 모델의 해사함을 찬양한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이를 통해 존스가 여전히 잠바코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가 펼친 책은 고대 브르타뉴의 노래인 ‘사랑의 영창’이 쓰여있다. 화폭 하단 에로스의 화살에선 ‘스물여섯 살의 마리아. 1870년 8월 7일. EBJ(에드워드 번 존스)가 그림’이라는 문장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번 존스, 돌로 변한 아틀라스, 1878, 150.2×190.2cm, Southampton City Art Gallery


이쯤 잠바코는 지금의 상황을 정면 돌파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존스와의 위태로운 관계가 좋게 끝나든, 나쁘게 끝맺든 마지막까지 가볼 마음이었다.

하지만 존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착한 사람과 좋은 사람은 완전한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딱한 사람도, 유약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는 말과 딱 맞게 포갤 수 없는 법이다.

에드워드 번 존스, 조지아나, 마가렛과 필립, 1883, 캔버스에 유채, 76x53cm, 개인소장 맑은 회색 눈의 조지아나가 단색 옷을 입은 채 화폭 밖을 보고 있다. 느껴지는 감정은 차분함, 그리고 침착함이다. 조지아나가 든 책이 보여주는 건 팬지다. 그 위에는 같은 식물이 책갈피처럼 놓여있다. 팬지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Think of me).’ 이 외에도 영원한 사랑, 변함없는 애정을 뜻하기도 한다. 조지아나 뒤에선 아들 필립과 딸 마거릿을 볼 수 있다. 이젤 앞에 앉은 필립은 아버지에 이어 화가의 생을 살아가게 된다.


존스는 떠났다.

갑자기 로마로 가겠다며 짐을 들고 사라졌다. 존스의 지인들 사이에선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실상 도망쳐버렸다는 말이 돌았다. 이 소식을 들은 잠바코는 존스의 친구와 주변 예술가를 마구잡이로 찾았다. 존스가 어디 있는지, 대체 무슨 생각인지를 묻고 다녔다. 존스의 동료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가 “악을 쓰는 카산드라(예언 능력은 있지만,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아 매번 좌절하는 트로이의 공주) 같았다”고 돌아볼 만큼 끈질기게 들쑤셨다.

에드워드 번 존스, 판과 프시케, 1872~1874, 캔버스에 유채, 65.1×53.3cm, 포그 박물관


잠바코는 곧 존스가 여행길에 오르고 얼마 안 돼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쇠약해진 존스가 돌아간 곳은 자기 곁이 아닌, 그의 아내 조지아나 품이었다는 말 또한 들을 수 있었다. 잠바코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존스는 앞으로도 늘 조지아나와 함께 하리라는 점을. 잠바코는 존스와 이어진 마지막 실타래를 스스로 자를 수밖에 없었다.

화폭 속 니무에, 거지 소녀…
복잡한 심경 그대로 묻어나다


에드워드 번 존스, 속임수에 빠진 멀린, 1873~1874, 캔버스에 유채, 186x111cm, 레이디 레버 아트 갤러리. 호수의 여인 니무에가 커다란 책을 펼치고 있다. 멀린의 마법 비법서일 것이다. 멀린은 그런 니무에를 미심쩍게 쳐다보지만, 이미 도와주기로 한 이상 뜻을 물릴 수는 없다. 니무에는 거짓말을 상징하는 뱀을 왕관처럼 쓰고 있다. 멀린의 몸 곳곳에서는 벌써 가지가 피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갇혀버릴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멀린이 이렇게 말한다면 이는 사랑의 토로일까, 뒤늦은 변명일까.


“선생님. 저에게 마법을 알려주세요.”

호수의 여인(Lady of the Lake) 니무에가 현자 멀린에게 제안한다. “그렇게만 해주면, 저는 선생님에게 최고의 사랑을 드릴게요.” 니무에는 멀린을 향해 싱긋 미소 짓는다. 멀린은 니무에에게 그 능력을 가르친다. 변신술과 소환술의 힌트를 주고, 흙과 나무줄기를 부리는 법 또한 알려준다. “오, 선생님. 드디어 저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어느 날, 니무에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멀린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이제 저는 선생님을….” 멀린이 니무에의 고혹적인 입술 앞에서 긴장을 푼 사이, 그녀는 마법으로 그를 나무에 가둬버렸다. 니무에는 졸지에 옴짝달싹할 수도 없게 된 멀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선생님께 사랑을 준다고요? 웃기는 이야기죠. 흥미가 있는 건 그 신묘한 능력뿐이었어요. 종국에는 이렇게 뒤통수를 치리라고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

에드워드 번 존스, 속임수에 빠진 멀린(일부 확대), 1873~1874, 캔버스에 유채, 186x111cm, 레이디 레버 아트 갤러리


에드워드 번 존스, 속임수에 빠진 멀린(일부 확대), 1873~1874, 캔버스에 유채, 186x111cm, 레이디 레버 아트 갤러리


존스는 이러한 이야기를 소재로 <멀린의 기만>을 그렸다. 이는 잠바코와 멀어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돼 만든 작품이다.

존스는 본인(실제 모델로는 지인을 세웠지만)을 멀린, 잠바코를 니무에로 두고 작업했다. 멀린은 남의 본심 따위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니무에의 속마음 또한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니무에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마법을 가르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끝은 역시나 파국이었다. 존스와 잠바코, 둘 사이 아슬아슬한 관계 또한 결국은 파멸로 끝났다는 점을 선언하듯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존스가 잠바코를 ‘악역’으로 세운 건 의아하게 보일 수 있는 지점이다. 유약한 그는 “당시에는 그 유혹이 너무도 달콤했다”는 식의 속 보이는 자기 합리화를 한 걸까.

에드워드 번 존스,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 1884, 캔버스에 유채, 293.4×135.9cm, 테이트 브리튼 왕보다 윗부분에 앉아 있는 거지 소녀는 허름한 차림새와 달리 당당해보인다. 외려 왕이 그 밑에서 애타는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왕관도 벗은 채, 왕의 위엄 또한 내려놓은 채 오직 그녀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존스는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라는 그림도 내놓았다.

이번에는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이 과거 엘리자베스 1세 시절의 민요를 참고해 쓴 시 ‘거지 소녀’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내용은 이렇다.

옛 아프리카의 왕 코페투아는 평생을 이성에게 흥미를 보이지 않은 채 살았다. 그런 그는 우연히 거리에서 한 소녀를 본다. 외모는 아름다웠지만, 행색은 남루하고 지저분한 거지 소녀였다.

코페투아는 살면서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왕과 거지의 결혼은 당시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코페투아는 결국 왕좌와 소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그가 택한 건 소녀였다. “(…)그대가 가진 게 없기에 외려 기쁘오. 온전히 나로 그대를 채울 수 있으니 말이오.” 이토록 감미로운 말과 함께.

에드워드 번 존스,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일부 확대), 1884, 캔버스에 유채, 293.4×135.9cm, 테이트 브리튼


에드워드 번 존스,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일부 확대), 1884, 캔버스에 유채, 293.4×135.9cm, 테이트 브리튼


존스가 이 그림에서 누구를 거지 소녀에 빗대 그렸는지를 놓고는 몇몇 설이 있다.

여기에는 오직 얼굴형만 보면 존스의 아내 조지아나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나온다. 이 분석이 맞다면, 존스가 두 여인 중 끝내 누구를 택했는지에 대해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부귀영화를 다 쥔 왕이라고 해도 당신을 위해서는 다 버리리다. 뒤늦게나마 이러한 연서를 보내는 마음이었을 터였다.

“어리석게 사랑했다”
갈라진 男女 그 끝은


에드워드 번 존스, Love‘s Wayfaring


존스를 내려놓은 잠바코는 프랑스 파리로 몸을 옮겼다.

그녀는 그곳에서 조각을 배웠다. 그려지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빚고 그리는 주체가 되기로 결심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을까. 잠바코는 곧 유명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사이 존스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흔적은 있다. 다만, 둘은 당연히도 다시는 예전 같은 관계가 될 수는 없었다. 잠바코는 외모와 행동에서의 매력은 그대로였는지, 파리 사교계에서도 큰 존재감을 보였다. 나이가 든 후에도 그녀를 구심점으로 사람들이 모일 정도였다. 잠바코는 1914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향년 71세였다.

에드워드 번 존스, 황금 계단, 1880, 캔버스에 유채, 269x116cm, 테이트 브리튼


존스는 그녀보다 빨리 죽었다. 1898년, 65세 나이였다. 그의 말년을 괴롭힌 건 지독한 독감이었다.

진작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힌 그는 죽기 4년 전인 1894년에는 준남작의 작위를 받는 영예도 누렸다. 이처럼 생전에 작품성을 인정받았기에, 그의 추모식 또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릴 수 있었다. “내게 말해보시오. 어리석게 사랑한 일 말고 내가 행한 일을.” 존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글귀를 통해 지난날을 돌아본 적이 있다. 포괄적 기준에서 보면 ‘어리석게 사랑한 일’ 말고 그가 무엇을 행했는지 짚어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애초에 거기에 저항없이 휩쓸린 일부터가 문제였다. 무슨 말을 하든, 그 대가로 인한 잘못은 결코 씻겨내려갈 수 없으리라.

<참고 자료>

그리다, 너를, 이주헌, 아트북스

Sir Edward Burne Jones, Bell, Malcolm, Burne-Jones, Edward Coley, Wentworth Press

Edward Burne-Jones, Fitzgerald, Penelope , Spalding, Frances, Fourth Estate

에드워드 번 존스, 비너스의 거울, 1875, 캔버스에 유채, 120x200cm, 굴벤키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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