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가 미국 증시 랠리에 던진 화두 3개 [홍길용의 화식열전]

rcv.YNA.20250128.PAF20250128221401009_P1‘딥시크’(Deep Seek)가 새해 증시에 3가지 화두를 던졌다. 요약하면

①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대결이 가져올 파장과

② AI를 기반으로 한 미국 증시의 거품 가능성

③ 트럼프노믹스가 가져올 글로벌 유동성 흐름의 변화 가능성이다.

①이 ②로 이어지고 ③이 ②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글로벌 증시에서 ‘미국 예외주의’가 인정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주와 달러의 힘이다. 위 3가지 포인트와 이 둘을 합쳐 점검해보면 올해 미국 증시의 랠리가 지속될 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기록만 보면 미국 증시가 1월에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을 때 그 해 연간으로 상승할 확률은 80% 이상이었다. 올 들어 30일까지 상승률은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과 S&P500이 각각 1.9%, 1.8%, 다우존스가 5.5%다. 올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S&P500 연간 기대수익률 전망은 8~10% 수준이다.

▶ 미·중 AI대결, 결국 반도체 전쟁으로…투자 대상종목 확대해야 할 수도

딥시크의 등장은 미국이 독주하던 AI 생태계가 중국과의 대결구도로 바뀌었다는 신호다. 지난 3년간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7) 중에 주가가 가장 많이 올랐던 앤비디아가 직격탄을 맞은 게 그 증거다. 더 적은 수의 저사양 칩을 사용해 꽤 높은 효율을 냈으니 앤비디아 실적에는 악재라 할 만하다. 하지만 뒤이어 반론이 나왔다. 딥시크로 AI 투자의 문턱이 낮아지면 전체 칩 수요가 오히려 더 크게 늘 것이라는 주장이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는 증기기관의 효율이 높아져도 석탄 사용량은 오히려 더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자원 사용의 효율성이 높아져도 그 자원의 전체 소비는 오히려 증가한다는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다. 제본스의 논리라면 딥시크는 AI 칩 수요의 전반적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까지 AI 생태계는 ‘쩐(錢)의 경쟁’이었다. 초대형 IT기업들이 값비싼 앤비디아의 고사양 칩을 대거 구입해 앞다퉈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짓는 경쟁이었다. 딥시크는 적은 수의 저사양 칩으로 충분한 성능을 구현했다. 그렇다고 고사양 칩을 대규모로 사용한 데이터센터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수요에 딥시크 성공에 따른 새로운 시장까지 더해진다면 AI 칩 생태계에는 되레 호재다. 기존 AI 붐의 주역인 앤비디아 역시 인정하는 대목이다.

앤비디아 CEO 젠슨 황은 최근 포드캐스트에서 “추론형 칩 시장이 향후 10억 배 이상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앤비디아의 히트상품 H100은 ‘학습용’(train) 칩이다. 딥시크는 학습보다 ‘추론’(inference)으로 효율을 높였다. 올해 AI 칩 시장 구성은 훈련용 22%, 추론형 78%로 예상(트랙티카)된다. 추론형은 훈련형 대비 값이 싸지만 딥씨크와 같은 특정 AI 모델 실행에 특화된 제품이다. 추론형 칩에서도 앤비디아가 절대 강자지만 최근 중국의 화웨이도 급부상하고 있다. 딥시크도 화웨이와 협력 관계다. 중국 정부의 화웨이 추론형 칩에 대한 지원은 국내 AI 관련 업체들에게 의무사용을 강제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추론형 칩 시장에서 미중 간 경쟁이 꽤 치열해지게 됐다.

강력한 경쟁자가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딥시크의 출현은 그 동안 독점적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았던 앤비디아의 주가 수준에 의문을 던질 계기라 할 만하다. 화웨이 외에 AMD와 인텔, 브로드컴 등도 추론형 반도체에서 제품개발과 시장점유율 확대에 적극적이다. 반도체 투자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 미국 증시 기술주 버블(?)…닷컴 버블 때와 닮았지만 같지는 않아

딥시크가 던진 앤비디아 주가에 대한 의심은 기술주를 중심으로 급등한 미국 증시의 가격수준(valuation)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전설적인 투자자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진단은 ‘과열’(exuberence)이다.

그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에 “미국 증시의 가격은 아주 높은 수준”이라며 “이는 금리 위험과 결합해 거품 붕괴를 촉발할 수도 있다”라고 꼬집었다.

달리오는 1999년의 ‘닷컴 버블’을 지금과 비교했다.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기대가 투자의 성공을 담보할 것이란 믿음으로 이어져 거품이 부풀었다는 분석이다.

미국 증시는 1995년부터 닷컴 열풍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1994년 3%였던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금리는 1995년 잠시 6%까지 올랐지만 이후 낮아져 1999년 초 4.75%까지 떨어졌다. 당연히 증시도 랠리를 이어갔다. 연준은 1999년 6월부터 다시 정책금리 인상에 나섰다. 2000년 7월에는 6.5%까지 끌어올렸다. 이 때부터 증시는 내리막을 탄다. 5년 반 동안 337%나 상승했던 S&P500은 이때부터 2002년 7월까지 반 토막이 났다.

닷컴버블 당시 S&P500 주가수익비율(PER) 최고치는 47배였다. S&P500의 현재 PER는 22배 수준이다. 최근 10년 역사적 평균(15~16배)보다 높다. 유럽 증시와의 격차도 20년 만에 최대다. 그래도 닷컴 버블 때에는 못미친다. 연준도 금리인하에 신중하다. 닷컴 버블 때와 비교하면 주도주의 실적은 압도적이다. 증가율이 둔화되고는 있지만 매출과 이익은 여전히 늘고 있다.

현재 미국 증시를 전통적인 밸류에이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기술 혁신이나 글로벌 질서의 재편이 이뤄지는 격동기에는 ‘과거 평균’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높은 밸류에이션은 결국 어느 정도의 수심(水深)에 배가 떠 있느냐와 통한다. 물, 즉 유동성이 밸류에이션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40여 년 만의 초강력 긴축에도 미국의 통화량은 여전히 증가 추세다. 미국은 2022~2023년 글로벌 자금의 41%를 빨아당겼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23% 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미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 해외기업들의 직접투자(FDI)가 급증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는 개인투자자의 증시 참여를 늘렸고 투자플랫폼의 발달은 차입(leverage) 투자와 투기적 거래(초단기 콜옵션 등)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서학개미와 같은 해외 금융투자자들도 뉴욕증시로 몰리고 있다. ETF는 특정 종목의 시장 내 쏠림을 더 높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특정 종목 초집중 현상이다.

 

▶ 주가 영향력, 밸류에이션 < 유동성

ETF 등으로의 자금 순유입이 계속되면 초집중을 통한 지수 상승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파생상품을 통한 투기적 접근까지 더해지면 유동성에 의한 상승 탄력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이같은 매커니즘은 반대방향으로도 작용할 수도 있다. ETF의 투자 회수와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상품 투자 확대가 아래로의 변동성을 키울 위험이다. 실제 최근 시장의 변동성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실제 코로나19가 글로벌 증시를 강타한 2020년 3월의 폭락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강도였다. 딥시크 쇼크 이후 앤비디아 주가는 이틀 새 30% 가까이 급락했다. 뚜렷한 실적 기반이 없는 양자컴퓨터 관련 주는 한국의 서학개미 투자로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 포인트의 변동폭을 보일 정도다.

줄이면 결국 최근 미국 증시의 향방은 밸류에이션 보다는 유동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금리와 재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감세,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 등은 모두 물가 자극 요인들이다. 연준이 추가 금리 인하에 신중할 만하다.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국채 발행 부담이 커져 재정정책을 펼치기 어려워진다. 물가를 못 잡고 금리를 못 떨어뜨리면 2년 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할 확률이 낮아진다. 민주당이 상·하원 어느 한 곳에서라도 다수당이 되면 트럼프의 ‘레임 덕’ 가능성은 높아진다. 트럼프 취임 직후 관세 정책이 예상외로 강한 모습을 띄지 않는 이유로 볼 만하다.

미국으로 향하는 달러에 영향을 미칠 또 다른 요인은 환율이다. 보호무역으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면 다른 나라들은 그만큼 달러 수입이 감소하게 된다. 달러 빚도 문제지만 달러로 사야하는 에너지와 식량을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미국을 제외하면 올해 전세계 주요국 중 경제 전망이 밝은 곳이 없다. 기축통화가 역할을 하려면 국제시장에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무역에서 적자를 보거나, 국내의 달러를 다른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을 택하는 나라 통화가 기축통화라면 아이러니다.

달러의 무기화는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달러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면 장기적으로 미국 금융시장으로의 글로벌 자산 쏠림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미국의 일방통행에 글로벌 국가들의 대응이 어떨 지가 관건이다. 해외에서 국채를 사주지 않으면 장기금리가 올라 미국의 재정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최근 금과 가상자산 등 달러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자산가격이 고공행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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