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진 소광리 대왕소나무가 변화한 모습.[녹색연합 제공]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이게 어떻게 같은 나무야?”
모든 잎이 떨어트린 앙상한 나무. 언뜻 보면 흔한 겨울철 나무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 나무가 원래 365일 푸른빛을 뽐내는 ‘소나무’였다는 것.
600년 넘게 살아남으며 인근 산림의 ‘상징’과 같이 여겨지던 울진 대왕소나무가 끝내 고사 단계에 진입했다.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가뭄·폭염 등 극단적 날씨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는 비단 일부 한두 개체의 문제가 아니다. 소나무가 고사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기온 상승이 지속되며 전국의 소나무 분포 지역이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 산림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소나무 개체수 감소는 동·식물 생태계 파괴 등 생물다양성 훼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에 산림 보존을 위한 관리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상북도 울진 소광리 대왕소나무.[녹색연합 제공] |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지난 1월 20일 관측을 진행한 결과, 경상북도 울진 대왕소나무가 사실상 고사 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솔잎이 탈락했으며, 잔가지 끝의 솔방울과 솔잎 등이 갈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다는 게 녹색연합 측의 설명이다.
‘금강소나무’로 분류되는 대왕소나무는 울진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소나무다. 추정 수령 600년으로, 금강소나무 평균 수령(150년)과 비교해 오랜 세월 살아남아, 국가산림유산으로 지정됐다.
대왕소나무의 고사 징후는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부터는 솔잎이 녹색에서 붉은색과 갈색으로 변했다. 12월 들어서는 잎이 탈락하면서 고사 마지막 단계에 진입한 바 있다.
경상북도 봉화 태백산 소나무 집단 고사 모습.[녹색연합 제공] |
이같은 대왕소나무의 죽음에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최근 겨울철에 나타나고 있는 이상 고온 현상은 소나무 고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이 오면 소나무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광합성 등 생리적 활동을 둔화시킨다. 하지만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면 에너지 소비는 줄지 않는다. 여기다 에너지가 되는 수분이 공급되지 않을 경우 ‘수분 스트레스’가 가중되며 생존 가능성이 줄어든다.
실제 기상청에 따르면 울진 지역의 1월 평균 온도는 지난 50년 동안 약 1.67도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월 강수량은 최근 10년(2014~2023년)간 37.1mm로 50년간 평균 강수량(44mm)에 비해 줄어드는 추세다.
경상북도 울진 소광리 소나무의 집단 고사 모습.[녹색연합 제공] |
심지어 소나무가 고사하는 현상은 나이가 많은 일부 개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울진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는 지난해 8월경부터 금강소나무의 집단 고사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대왕소나무 옆에 함께 서식하던 7개체의 경우 이미 고사한 상태다.
발생 지역도 넓어지고 있다. 금강소나무 고사 현상은 2015년 울진 소광리에서 시작돼 봉화, 삼척까지 확산했다. 2022년부터는 설악산국립공원, 태백산국립공원 등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산줄기 곳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온 상승이 이어지며 소나무 고사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립공원공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립공원 소나무 고사 실태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고사 위기에 처한 소나무의 비율은 ▷설악산 47.8% ▷치악산 40% 이상 ▷태백산 30% 이상 등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 소광리에 있는 한 소나무의 뿌리가 뽑혀 있다.[녹색연합 제공] |
소나무 고사의 영향은 단순히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림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소나무는 동·식물 생태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금강소나무 고사가 활발한 곳은 대부분 보호지역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생물다양성의 거점이다.
일례로 소나무 열매를 주요 먹이원으로 하는 다람쥐, 청설모 등의 개체수가 감소할 수 있다. 또 소나무와 공생관계를 가진 곤충의 개체수도 급감할 위험이 크다. 심지어 소나무 숲에서 둥지를 트는 새의 번식지가 줄어들며 먹이사슬 체계 곳곳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경상북도 울진 소광리 대왕소나무.[녹색연합 제공] |
아울러 고사 현상이 두드러지는 금강소나무는 궁궐, 사찰 등의 건축재로 사용되며 조선시대 때부터 국가의 주요 임산 자원으로 사용됐다. 현재도 산림청에서 관리하며, 궁궐 복원 등 국가 주요 사업에만 이용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문화 유산’ 중 하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지구온난화 흐름을 늦추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기온 상승 현상은 점차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이에 소나무종 보존 및 고사 원인 파악 등 정부 차원에서의 보존 활동을 강화해, 소나무 고사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고사 양상을 깊이 있고 전면적으로 관찰, 기록하는 것에 이어 원인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기후 스트레스를 덜 받은 건강한 개체들을 찾아서 유전자를 확보하고 보관하는 작업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