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번의 참사, 60년의 트라우마

1964년~2024년 참사 분석
자연재해 시달리던 60~70년대
90년대 들어서 재난 복합화 양상

2000년대 이후 붕괴사고 줄었지만
정책·시스템 아직은 갈 길 멀어
트라우마 관련 치료 고도화 필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현장 [헤럴드DB]


딸을 낳고 기쁨에 휩싸였던 젊은 부부는 세월이 흘러 80대를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올해로 6년째 ‘삼풍유족회장’을 맡고 있는 손영수(78·부) 씨와 부인 김덕화(71·모) 씨 부부다. 1995년 6월 29일 아침, 일터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잡화부로 출근한 딸 경아는 그날 이후로 영영 퇴근하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일어난 지 꼭 30주년이 됐다. 그사이에도 수많은 안타깝고 끔찍한 사고가 터졌다. 남겨진 가족과 그걸 지켜보는 우리 사회 전체에 큰 비극이었다. 지난해에도 끔찍한 사건이 우리 사회에 생채기를 남겼다. 경기도 화성에선 배터리 공장에 큰불(6월)이 났고 서울에선 승용차가 역주행(7월)했다. 세밑엔 전라남도 무안에서 여객기가 폭발했다. ▶관련기사 4·5면

헤럴드경제는 1964년부터 2024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주요 대형 재난 참사를 되돌아봤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대형 참사가 몇 번이나 반복해 발생했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해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으로부터 입수한 대형사고 현황 통계에, 행정안전부 자료(재난연감·재해연보) 등을 종합해 지난 60년치 사회 재난(사망자가 10명 이상인 사고) 통계를 집계하고 유형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을 할퀸 비극은 300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유형별로 보면 자연재해(164건)가 가장 많았고, 육상교통사고(42건)와 대형화재(38건), 붕괴·폭발 등(26건), 해상사고(21건), 항공기 사고(9건) 순이었다. 특히 사회가 발전하고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자연재해에 따른 참사는 줄었으나 대형 화재나 해상사고, 항공기 사고 등 사회재난에 해당하는 참사가 비교적 높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대별로 달라진 참사의 양상=주요 참사를 시대적 양상으로 따져보면, 1980년대까지는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했다. 특히 사망자 10명 이상이 발생한 자연재해는 1960년대부터 124건에 이르렀는데,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공식기록이 체계화하기 이전이던 1959년 9월 발생한 태풍 ‘사라’가 대표적인 자연재해로 기록돼 있다.

태풍 ‘사라’는 그해 추석 당일 새벽 한반도에 상륙했다. 태풍 방재 시스템이 미비했던 당시에 강력한 폭풍우를 동반한 태풍에 시민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장대비로 하천이 범람하거나 역류했고, 침수 피해는 광범위했다. 결국 전국적으로 84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부상자는 2533명, 이재민 37만여명이 발생했다. 이 밖에도 1972년 8월에 발생한 태풍 ‘베티’로 전국적으로 550명의 사망·실종자가 나왔고 1987년 7월 태풍 ‘셀마’는 178명의 사망·실종자를 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재난의 양상이 복합화한다. 건설, 화재, 해상 사고 등으로 다양한 유형이 발생하는 것.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로 풀이된다. ‘안전’은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인식되던 시절이다.

재난 전문가인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1990년대는 압축 성장을 하면서 성장 위주로 정책이 펼쳐지다 보니 안전은 뒤처지게 된 경향성이 뚜렷한 시기”라며 “삼풍백화점 붕괴 전후로 서해 페리호, 성수대교 참사 등이 그러한 현상의 기점”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연이어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1994년)와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는 건설 주도의 급속 성장이라는 부작용을 노출하며 우리 사회에 막대한 충격을 준 참사로 기록됐다. 성수대교 붕괴 참사는 당시 부실시공과 유지·보수 소홀로 발생해 약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삼풍백화점까지 붕괴하며 507명의 생명이 안타깝게 희생됐다.

1980~90년대 대한민국은 건설과 개발을 중심으로 한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안전 불감증과 부실 공사가 만연했고 결국 이런 대형 붕괴 참사로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들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1990년대보다는 붕괴 사고는 줄었지만, 안전 시스템이나 초기대응 체계는 여전히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화재 대응 시스템의 미비로 192명이 사망하는 대구 지하철 화재(2003년) 참사로 이어졌다.

2008년에도 경기도 이천시에서 냉동창고 화재가 발생해 40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우레탄 발포작업 중 시너로 인한 유증기에 불이 붙어 화재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지만, 당시에도 관할 관청의 허술한 감독과 안전교육 미실시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2010년대 들어 대한민국 재난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세월호 참사(2014년)는 정부의 선박 안전 관리상 허점과 무능한 구조 대응을 드러내며 시민으로 하여금 ‘사회재난’을 새롭게 각인시킨 사건이 됐다. 이후 정부는 재난 대응 체계를 개편하고 안전 관련 법안을 강화했지만, 2020년대에도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사고(2022년)라는 후진국형 참사로 이어지며 다시금 새로운 재난 예방 시스템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재난관리 총체적 부실 ‘삼풍 참사’=특히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재난 관리에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평가된다. 1995년 작성된 내무부 재난연감을 보면,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께 건물 2개 동 중 지상 5층·지하 4층 규모의 A동 건물이 슬래브부터 지하층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건축설계는 물론 시공·감리, 시설유지관리 등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였다. 재난수습 총괄지휘 체계마저 미비했다. 구조와 수습 작업은 중구난방이었다. 삼풍 참사는 재난사고 관리의 토대가 된 재난관리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전신)이 제정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잇따라 발생하는 재난 발생에 지친 유가족과 시민이 많아지면서 전문가 사이에서는 정부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트라우마 치료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난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사회재난과 관련해 대한민국이 제도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처음 개입하기 시작한 게 삼풍백화점 참사가 처음”이라며 “재난 발생에 관한 유족들의 트라우마를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도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인데, 여전히 트라우마와 관련한 치료는 고도화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측면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용경·이영기·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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