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크로스오버]시계바늘을 돌려야 계절이 바뀔까…서머타임 유감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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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초의 일간신문이었던 ‘저널 드 파리’는 1784년 4월 26일 미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편지를 실었다.

프랭클린은 “어느 날 늦게까지 외출했다가 돌아와 잠들었지만 하인이 깜빡 잊고 닫지 않은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온 햇빛에 깨어나 3시간 밖에 잠을 못잤다”라며 “6~7시간 더 잘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썼다.

이어서 “파리 시민들이 낮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수백만 파운드의 양초 왁스를 절약할 수 있다”라며 “양초를 배급하고, 일출 시간에 교회 종을 울리게 하고, 필요하다면 거리마다 대포를 쏘아 게으른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고 구원이냐”라고 했다.

파리 시민들이 잠꾸러기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었던 건지, 진심으로 아이디어라고 여겼던 건지 모르겠다. 오늘날 흔히 서머타임으로 불리는 일광절약시간(Daylight Saving Time)의 개념을 최초로 퍼뜨린 사람이 프랭클린이라는 근거로 자주 언급되는 편지다.

미국날짜로 3월 9일 새벽 2시부터 다시 서머타임이 시작됐다.시계바늘을 한시간 더 앞으로 보내 새벽 3시로 만들어야 한다. 하루전까지 아침 6시에 눈을 떴다면 이제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야하는 셈이다. 11월 첫째 일요일 새벽 3시를 1시간 뒤로 물릴 때까지 8개월 동안 일광절약시간제가 이어진다.

한국에서 1987년부터 1년 동안 서머타임을 실시한 적이 있어 잠깐 경험했지만 미국생활 30여년 동안 해마다 시계바늘을 두번씩 옮길 때마다 여간 귀찮고 성가신 게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은 서머타임에 맞춰 자동으로 시간을 맞춰주지만 자동차 시계나 집안, 사무실의 벽시계는 일일이 바늘을 돌려줘야 하니 말이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만든 것이니 서머타임을 인위적인 시간조작이라고 과장스럽게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봄과 겨울의 문턱인 3월과 11월이 올 때마다 번번이 시계바늘을 앞으로 보냈다 뒤로 물렸다 하는 일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불편하다는 얘기다.

1시간 앞당기고 뒤로 물린다고 해서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걸까라는 생각조차 매년 두차례씩 똑같이 반복된다.

잠을 한시간 더 잘 수 있다는 11월 첫째 일요일보다 출근이나 등교시간을 앞당겨야 하는 3월 둘째 일요일에 불만이 더 커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임무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최근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엑스(X) 사용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일광절약시간제를 폐지할 경우 시계가 한 시간 더 빨라지는 것을 선호하는지, 아니면 늦어지는 것을 선호하는 지에 대해 물었더니 응답자의 58%가 후자, 즉 잠을 한시간 더 자는 쪽을 선택했다.

어쨌거나 미국에서는 매년 두차례씩 ‘제발 시계 좀 내버려두자’라는 아우성이 터진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미 의회가 전쟁을 위해 연료와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연광을 저녁까지 활용하기 위해 시계를 앞당기자며 서머타임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처음 제정한 지 107년이 됐다. 연방 의회가 미국 전역의 서머타임 시작일과 종료일을 통일한 게 1966년이니 그 또한 59년째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20개주에서 2018년부터 서머타임을 영구화하는 법안과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연방의회에서 입법화되지 못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국무장관이 된 마코 루비오가 공화당 상원의원 시절이던 2022년 초당적 발의로 일광절약 시간제를 일년 내내 이어가자는 이른바 일광 보호법(Sunshine Protection Act)을 상정한 적이 있다.

이 법안은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 ‘사상 최초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를 이뤘다’는 농반진반의 평가도 나왔지만 하원에서 부결됐다. 루비오는 2023년에도 이 법안을 다시 발의했지만 상하 양원을 통과하지 못했고 2018년부터 5년간 줄기차게 제기해온 서머타임 연중 상설화 노력은 거기서 멈췄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논설위원실 공동 명의로 일광절약시간제 폐지를 주장해온 LA타임즈는 “의회의 관심을 끌 만한 더 중요한 이슈가 많은 상황에서 의원들은 시간을 들여 검토하는 것보다 이 무의미한 전통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라고 비아냥 가득 찬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서머타임을 시행하는 가장 큰 명분은 에너지 절약과 소비활동 증진 등이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절약에 효과를 봤다는 증거는 없다고 단정한다. 소비증진에 관해서는JP 모건 체이스가 조사한 게 있다. 서머타임이 시작되면 신용카드 지출이 0.9% 증가하고 종료되면 3.5% 감소한다는 것이다.

낮 시간을 더 길게 끌고 가려는 서머타임의 취지를 살리자면 1년 내내 이어가는 게 옳지 않나 싶다. 굳이 11월 첫째주에 다시 시계바늘을 되돌리게 된다면 그건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하는 거라는 관성 말고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모두 알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애호가이다. 그가 새벽 6시 부옇게 동 트는 하늘을 향해 티샷을 날리고, 저녁 8시가 다 돼 노을빛 가득 한 18번홀 그린에서 퍼팅하는 묘미를 느낀다면 서머타임을 미국 표준시간으로 정하자고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을까. 한 시간 덜 자니 하품에 섞여 헛소리가 나오는 참이다.

2025031001000010900000341황덕준/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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