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울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울산, 광주, 대전, 부산 등 광폭 지방 행보를 하고 있다. [연합] |
 |
|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2012년까지 치러진 총 7번의 국회의원 총선에서 단 한 차례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현재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이 제1당을 차지했다. 그 기간 동안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인 민주당 계열 정당이 단독으로 다수당이 된 것은 2004년 17대 총선이 유일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해 한나라당(121석)을 제쳤다. 보수 정당은 민주정의당(13대)-민주자유당(14대)-신한국당(15대)-한나라당(16, 18대)-새누리당(19대)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17대 4년을 제외한 약 30년 기간 동안 제1당으로 국회를 지배했다.
국회에서 보수 계열 정당의 ‘장기 집권’이 깨진 계기는 2016년 19대 총선이었다. 당시 절대 열세가 예상되던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얻으며 새누리당을 단 1석 차로 제치는 이변을 일으켰다. 과반엔 이르지 못했지만 민주당 계열이 단독 제1당이 된 것은 12년 만이었고 역대 두번째였다. 그 후 두 번의 총선에서 민주당은 보수 정당과 격차를 더 크게 벌이며 과반도 달성했다.
미국 정치학자 크리스티 앤더슨 시러큐스대 교수의 저서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에 따르면 ‘선거 참여의 깊이와 강도가 높고, 지역공동체 내 권력관계에 상당 수준의 재편이 일어나며, 새로울 뿐만 아니라 지속성을 지닌 정당 지지 양상이 나타나는 선거’를 ‘중대선거’라고 한다. 곧 ‘거대한 유권자 재편’과 이로 인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정당 지지의 대규모 변화’가 나타나 정당-유권자 연합이 ‘재정렬’되는 선거를 이른다. 우리나라 총선에 국한시킨다면 2016년 19대 총선은 향후 10년 이상 계속될, 적어도 의회권력에선 보수 정당으로부터 민주당 우위로의 정치 지형 재편을 예고한 중대선거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 2016년과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직후엔 보수 정당 소속 대통령이 탄핵·파면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29일 현재 여당인 민주당 의석은 167석이고, 범민주·진보 계열 야당·무소속 의원까지 더하면 189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역대 최다 수준의 범여권 국회 의석수와 함께 출범했다. 이 대통령 취임 약 2개월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49.42%)을 훨씬 웃도는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지지율도 50% 전후로 20%전후인 국민의힘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그리고 내년 6월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됐다. 최근 약 10년간의 총선과 대선은 국내 정당-유권자 연합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수 계열 정당의 일방적 우위에서 보수와 민주·진보 간 ‘경합’을 거쳐 민주·진보 계열 정당이 점차 상대적 우위를 점해가는 경향이다. 만일 국민의힘이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면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현상을 가리켜 ‘레드 스윕’(상징색이 빨강인 공화당의 싹쓸이)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민주당이 행정·입법은 물론 지방권력까지 장악하는 ‘블루 스윕’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의회권력, 30년 ‘보수 천하’의 종언과 민주 우위 구도의 정착
민주당은 2016년 이후 3번의 총선에서 내리 승리함으로써 현 22대 임기가 종료되는 2028년까지 12년간 제1당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이 기간 동안 치러진 3차례의 대선에선 민주당 후보가 2번 당선됐는데, 득표율 추이 역시 보수와의 경합을 거쳐 민주당 우위 구도로 점진적으로 전환하는 정치 지형 변화를 보여준다.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지만 득표율은 41.08%에 그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보수 정당의 ‘귀책’ 사유로 치러진 대선이었지만, 문 후보의 득표율은 보수 계열인 홍준표(23.03%)·안철수(21.41%)·유승민(6.76%) 후보의 단순 합 50.9%보다 현저히 낮았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48.56%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47.83%)를 0.73%포인트 차로 앞서 당선됐다. 6·3 대선(제21대)에선 이 대통령이 득표율 49.42%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8.34%)를 보수 계열로 분류해 김 후보 득표율과 합산해도 49.49%로 이 대통령과 진보 계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0.98%)를 더한 50.40%를 넘지 못한다. 제21대 대선에서 이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 민주당 계열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1987년 이후 역대 대선 후보를 통틀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제16대, 51.55%)에 이은 득표율 2위다. 또 제21대 대선은 1987년 제13대를 제외하면 보수 세력과 연합하지 않은 민주·진보 계열 후보 득표율 합이 50%를 넘은 첫 대선이기도 하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국민소통 행보 2탄, 충청의 마음을 듣다’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
‘보수 심판’과 민주당 권력구조 개편, 인구구성의 변화
이같은 정치 구도 변화 요인으로는 크게 ▷보수 정권의 잇단 실패 ▷민주당 주류 및 권력 구조 개편 ▷유권자 세대구성의 변화 등 크게 3가지로 꼽을 수 있다. 먼저 민주당 지지층 확장은 역대 보수 계열 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의 측면이 크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첫 단독 다수당이 돼 미래의 ‘전조’가 됐던 2004년 총선 역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 결과였다. 보수가 일방적 우위를 누려오다 민주·진보 진영과의 ‘경합’을 허용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총선이었는데,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이 결정적이었다. 새누리당이 압도적 승리 예상을 깨고 제2당으로 밀려나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데 이어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탄핵되면서 결국 정권은 민주당에 넘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미 정상외교와 코로나19 대응이 지배했던 2020년 총선에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별다른 대응전략을 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2022년엔 국민의힘이 대선에 승리했지만 역시 문 정부의 임기 중·후반기 불거진 검찰개혁 갈등과 아파트 가격 폭등,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LH사태) 등에 따른 ‘반사이익’ 측면이 컸다. 국민의힘으로선 윤석열 정부 출범이 민주당 우위 구도의 고착을 막고 보수의 부활과 반격을 이룰 절호의 기회였으나 위헌·불법적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집권층의 각종 부정·비리 의혹으로 결국 집권 3년만에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허용했다.
그 사이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체제’로 당내 주류를 교체하고, 당원 가입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표결권은 확대하는 방식으로 당내 의사 결정 구조 개편을 꾀했다. ‘이재명 일극 체제’ 강화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이러한 변화는 당의 지지층을 확장하면서 당원의 효능감과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지상파 방송 3사의 6·3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50대에서 70% 전후로 압도적이었고, 2030 여성 유권자층에서도 60%에 육박했다. 기존에는 보수 성향이 강했던 60대에서도 이 대통령(48.0%)과 김문수 후보(48.9%)는 경합세였다. 학생운동 고조기였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른바 ‘86세대’가 60대에서도 점차 다수를 점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진보 성향과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4050세대는 6·3 대선 전체 유권자의 36.8%로 제일 많았다. 6070세대가 33.1%, 2030세대가 27.2%였다. 현재의 4050세대가 적어도 향후 20년까지는 최대 유권자층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보수 성향이 강한 현재의 70대 이상은 고령화에 따라 점차 비중이 줄 수 밖에 없어 민주당 최대 지지 기반인 196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 출생 유권자층의 영향력은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티 앤더슨 교수는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이전까지만 해도 공화당에 대대로 열세였던 미국 민주당이 1933년부터 1969년까지 총 9차례 대선에서 7번을 승리하며 드와이트 D.아이젠하워의 공화당 정부 8년 임기를 제외하고 28년간 ‘장기집권’에 성공했는가를 분석했다.
크리스티 교수는 유권자가 느끼는 ‘정당일체감’과 전국적인 이슈, 후보의 자질·인기 등 3가지 요인을 선거에서 정치 구도를 결정짓는 요소로 꼽는다. 이중 ‘정당-유권자 연합’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동을 가져오는 중대선거에선 유권자들이 종전의 지지정당을 바꾸는 ‘전향’과 함께, 투표에 미온적이거나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지지정당이 없었던 유권자층이 새롭게 참여하는 ‘동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청년, 여성, 이민자, 유색인종 등을 새로운 민주당 지지층으로 투표장에 끌어냄으로써 장기적인 변화의 시작점이 됐다는 것이 크리스티 교수의 분석이다. 이를 적용하면 2022년과 2025년 대선에서 2030 여성 유권자층에서의 지지세 확산은 ‘전향’보다는 ‘동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정치·사회적 경험에 의한 4050세대의 정당일체감과 ▷새로운 적극 지지층으로 떠오른 2030 여성 ▷‘보수 정당 심판’에서 민주당 지지로 정착한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전향’을 현재 민주당 우위 구도를 만들어낸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지방선거 보는 이재명 정부…정치 역동성 위해선
보수혁신과 제3정당 위한 선거제 개혁 필수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포석’은 정책과 인사, 행사 등 여러 대목에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울산을 방문해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출범식에 참석했고, 호남(광주)과 충청(대전), 부산 지역 ‘타운홀 미팅’도 가졌다. 장관과 참모로 발탁한 인사 가운데에서도 여럿이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뒀다는 평가나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더 상승하고, 국토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한 지역 공약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장관·참모로 인지도를 높인 인사가 후보로 출마하면 집권여당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은 커진다. 이 대통령과 여당이 공을 들이는 부산·울산·경남이나 약세 지역인 대구·경북 지역에서까지 선전할 경우엔, 민주당은 세대 뿐 아니라 지역으로도 ‘장기집권’을 위한 기반을 확대하게 된다. 지방 선거 전반으로는 대미 관세 협상과 경제 성장률 성적표, 주가와 부동산 가격 등이 여야의 승패를 가를 변수가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공약 이행과 국정 운영 성과로 지지층을 확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거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정책·노선 경쟁을 할 대안 세력의 부재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아직도 대선 패배의 늪에서 못 빠져나오고 있다. 윤석열 전 정부 및 강경 보수세력과의 단절과 절연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혁신의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고, 찬탄(탄핵찬성)·반탄(탄핵반대), 친윤(친윤석열)·친한(친한동훈)·친길(친전한길계) 등 말조차 어지러운 사분오열·자중지난을 거듭하고 있다.
견제와 비판세력 없는 특정 정당의 장기 집권은 결국 특권층의 득세와 민주주의의 약화, 정치적 역동성 및 다양성의 저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보수의 혁신과 아울러 다양한 이념과 이해를 대변하는 제3정당, 소수정당의 출현을 북돋우고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처럼 제1 보수 정당이 와해 일로이고, 집권여당의 보족 없는 독자적인 진보정당도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통합을 명분으로 좌우를 ‘과잉 대표’하는 것이 우려스러운 까닭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