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일본 변호사 협박 벌써 2년째 왜 안잡히나? [세상&]

속도 내지 못하는 국제 공조
“해외 영장 요청 쉽지 않아”
프로파일러 “조현병 가능성”
내국인·외톨이 가능성도
학생들은 수능까지 걱정도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허위 협박 내용의 팩스. [X(구 트위터) 캡처]


[헤럴드경제=이영기·안효정 기자] 허위 폭발물 테러 협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가라사와 다카히로’라는 일본 변호사나 관계자의 명의를 이용하는 허위 협박 팩스가 가장 큰 피해를 낳고 있다. 경찰은 팩스 발신지 추적의 기술적 어려움, 인터폴 공조의 한계 등으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팩스 내용을 살펴본 프로파일러들은 팩스 발신자가 동일인, 일본인을 사칭한 내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무직, 은둔형 외톨이, 조현병 등의 가능성도 내놨다.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일선 학교에서는 불안감을 넘어 피로감까지 커지고 있다. 수능 때도 협박 테러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난항 겪는 경찰 수사…왜?


29일 기준 8월 한 달간 일본 변호사 명의를 도용한 허위 테러 협박 팩스는 총 14건이다. 특히 지난 28일 하루에만 서울 내 7곳의 고등학교에 협박 팩스와 관련된 신고가 접수됐다. 이달뿐만 아니라 2023년부터 유사한 수법의 범죄가 이어지고 있지만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우선 팩스 발신지 추적의 기술적 어려움이 크다. 팩스는 유선전화망을 사용하지만 발신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경할 수 있다. 실제 팩스 기기가 아닌 웹팩스(PC·모바일 기기를 통해 보내는 방식) 업체를 이용할 경우 실제 발신자와 팩스 발신지 간 차이가 생긴다. 이에 더해 발신자가 웹팩스를 사용하기 위해 특정 브라우저 등을 통한다면 발신자는 더욱 찾기 어려워진다.

특히 국제 공조가 절실하지만 쉽지 않다. 이번 팩스의 발신지는 해외로 특정되고 있다. 또 발신자는 일본인 명의를 사용하고 있어서 국제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진행된 정부서울청사 폭발물 테러 대응 합동훈련에 참가한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


경찰은 일본 등과 국제공조를 통해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지난 2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전화번호와 이메일 발신지를 추적하기 위해 일본 등과 공조하고 있다. 계속해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경찰은 이달 들어 공조회의를 개최하고 일본에 파견된 경찰 주재관을 통해 접촉하는 등 협력을 이어가지만 속도가 붙지 않는 상황이다.

국제공조 수사에 정통한 한 경찰 관계자는 “인터폴 공조의 경우 요청 국가에서 관련 내용을 수사 중이라면 요청이 쉽다”면서도 “다만 해당 국가에서 수사 중인 사건이 아니라면 영장 신청 등이 쉽지 않다. 그럼 형사사법공조요청도 있지만 검찰, 법무부, 외교부 등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팩스 본 프로파일러 “조현병, 일본인 사칭 한국인 가능성”


일본 변호사 명의로 접수된 팩스를 본 프로파일러들은 발신자가 ▷내국인 ▷동일인 ▷무직 ▷은둔형 외톨이 ▷조현병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호원대 교수)은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문체, 어조, 표현이 자연스럽다”며 “번역기를 사용해서 일본인을 사칭하는 한국인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치단체를 자치단으로 사용하는 등 학력이 높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 회장은 “일부 철학·문학적 표현도 보인다. 이러한 점을 봤을 때 인터넷을 즐기는 성향 같다”며 “‘세상은 이미 구원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을 봤을 때 현실과 상당히 과도하게 괴리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점을 봤을 때 현실에선 책임, 역할이 적은 사람인 것 같다”며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서 온라인에서 이런 것만 계속하는 것. 사회적 고립, 과도한 집착 성향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허위 협박 내용의 팩스. [X 캡처]


또 8월 한 달간 이어진 팩스의 발신자가 동일범일 가능성도 열어놨다. 이 회장은 “중요 부분에 밑줄을 그은 점, 일부 표현에 동일한 기호를 사용한 점, 문체 표현이 일관된 점을 미루어 봤을 때 단독범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내용을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경고처럼 보인다”며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 지리멸렬한 문장은 주로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특히 피해 망상이 있다면 현재 같은 테러 경고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그런 사람들의 문장적 특징은 앞부분은 장황하게 시작하는데 뒤로 갈수록 논리적으로 흐지부지하고 지리멸렬하다. 유창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일선 학교에서는 수능까지 걱정


학교 현장은 이같은 테러 협박 팩스에 피로감을 겪고 있었다. 안전에 대한 우려로 수업이 중단되고 학생들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지만 여태껏 발견된 폭발물은 없었다.

지난 28일엔 서울 시내 고등학교 총 6곳에 폭탄 설치 협박 팩스가 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앞서 25일과 27일에도 서울 시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3곳에 폭발물 협박 팩스가 잇따라 접수된 바 있다.

중학교 교사 임모 씨는 “협박글 내용이 설마 진짜일까 의심스럽지만 아이들 안전과 관련된 문제다 보니 학교 입장에선 쉬이 넘길 수 없는 노릇”이라면서 답답함을 표했다.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진행된 정부서울청사 폭발물 테러 대응 합동훈련에 참가한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갑작스레 온 안전 문자를 보고 놀람과 동시에 분노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실제로 폭발물이 없었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고 어수선해지는 건 있다”면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 발신자가 괘씸하다. 얼른 잡아 일벌백계 해야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학생 B씨는 “도가 지나친 장난 때문에 몇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거냐. 무얼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능 전날이나 당일에 비슷한 소란이 벌어질까봐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신모(17) 군은 “큰 위험 인식 없이 장난으로 하는 짓인 것 같은데 이게 수능 때라면 학생들 인생은 좌우될 수 있다”면서 “개구리가 던진 돌에 누군가 맞아 죽지 않느냐”고 불만을 표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