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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뉴 머니’ 무대 [오디컴퍼니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뉴 머니 영앤리치 손가락질당하면 어때?” (‘위대한 개츠비’ 넘버 ‘뉴 머니’ 중)
1920년대 미국, 주식과 밀주로 부(富)를 일군 흙수저 출신 ‘영앤리치’가 등장하던 시대. 대대로 상속받은 ‘올드 머니’의 세상이 ‘뉴 머니’를 아무리 조롱해도 오늘 이 밤, 화려한 파티 앞엔 속수무책이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귀는 황홀해질 무렵 중독성 강한 뮤지컬 넘버(노래)가 귓전에 꽂힌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열리는 화려한 파티가 오늘의 관객이 꼭 가보고 싶을 법한 파티로 느껴지길 바랐어요.”
브로드웨이를 강타하고, 까다로운 웨스트엔드까지 홀린 뒤 서울로 상륙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작업 초기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막을 올리자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고, 입소문을 일으킨 일등공신은 ‘뉴 머니(New Money)’의 노래와 안무였다. 개츠비의 대저택을 배경 삼아 너나없이 ‘블랙 & 골드’의 반짝거리는 드레스 코드를 선택한 ‘파티 피플’들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숨 가쁜 템포에도 1920년대 낭만이 더해진다. 절정에 다다르면 등장하는 노란색 롤스로이스, 이 장면 하나로 개츠비의 존재 설명은 끝. 하울랜드는 “‘뉴 머니’ 끝 장면에서 불꽃놀이가 터지고 등장하는 엄청난 안무는 압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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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개츠비’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 [오디컴퍼니 제공] |
노래와 딱 맞아떨어지는 안무는 뮤지컬 춤 역사에선 흔치 않은 ‘틱톡 챌린지’의 주인공이 됐다. 1920년대 미국을 사로잡은 ‘찰스턴(Charleston)에 요즘 스타일을 가미한 춤이다. 안무가 도미니크 켈리는 “사실 이 춤이 챌린지가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중독성 있는 노래에 1920년대 파티의 즐거움과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춤 동작이 더해져 완벽한 조화를 이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춤 동작, 안무 속 리듬 변화의 매력이라 Z세대를 사로잡았다”고 봤다.
음악을 만든 제이슨 하울랜드와 안무가 도미니크 켈리는 활자 뒤에 숨어 보이지 않았던 1920년대의 사랑과 욕망, 꿈과 공허를 시각화 한 주인공이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이 영미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고 있기에 뮤지컬 작업에 굉장함 책임감을 느꼈어요,” (제이슨 하울랜드)
제이슨 하울랜드가 이 작품의 제안을 받은 것은 2019년이었다. 그는 “아름답고 강렬한 소설을 옮긴 작품의 음악은 현재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과거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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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오디컴퍼니 제공] |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고전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11월 9일까지, GS아트센터)는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와 ‘올드 머니’ 데이지 뷰캐넌의 사랑과 꿈, 욕망을 그린다. 한국의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 브로드웨이에 도전, 2년 여의 개발과 워크숍, 프리뷰 과정을 거쳐 지난해 미국에서 관객과 처음 만났다. 하울랜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질문하는 트리트먼트부터 시작해 마지막 곡을 쓰는 날까지 2~3년의 세월을 보냈다. 켈리 역시 2022년 11월 워크숍에 합류, 2024년 4월 개막날까지 안무를 창작했다고 귀띔한다.
원작이 1인 화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면 뮤지컬은 두 주인공과 데이지의 남편 톰, 원작 속 화자였던 데이지의 사촌 닉 캐러웨이, 닉과 사랑에 빠지는 조던 베이커 등 다양한 인물이 저마다의 욕망과 사랑, 공허에 허우적대는 1920년대를 장면 장면으로 구현한다.
하울랜드와 켈리는 소설로 읽을 때는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장면들에 선율을 입히고, 개츠비의 뜨거운 파티에 역동성을 더했다. 하울랜드는 “웅장한 스펙터클의 순간, 스윙 밴드의 제스처로 가득한 파티와 음악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설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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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마이 그린 라이트’ 무대 [오디컴퍼니 제공] |
두 사람이 가장 고심했던 것은 1922년 미국을 무대로 옮겨오는 것이었다. 켈리는 “무대 연출, 제스처, 넘버, 소품, 움직임 등 모든 장면이 192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며 “많은 사람이 1920년대를 앵글로색슨 문화의 렌즈로만 생각하나, 전 1920년대의 또 다른 움직임과 교류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시기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많은 춤이 등장했다. 드래그 볼과 보깅(voguing)도 마찬가지다. 그는 격동의 시기에 인기를 얻은 춤과 금기시됐던 ‘과거의 춤’을 ‘지금의 춤’으로 다시 만들었다. 재즈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히트 콘텐츠인 심미(shimmy) 춤이 대표적이다. 서아프리카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춤 스타일에서 기원해 흑인 커뮤니티의 블루스, 재즈 클럽에서 시작됐고, 1920년대 백인 사회로 퍼져갔다.
“이 춤은 1920년대의 다른 춤과 마찬가지로 관능적이고 부도덕하다고 여겨졌어요. 엉덩이를 흔들거나 어깨를 떨고, 다리를 벌렸다 모으는 등 춤 동작들이 기괴하다고 생각했죠.” (도미니크 켈리)
‘심미’라는 말 자체가 ‘투 셰이크 오어 위글(to shake or wiggle·흔들다)’에서 유래했다. 당시엔 선정적인 춤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n,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켈리가 이 춤을 무대로 올리는 것은 1920년대를 되살리는 동시에 오늘의 미국과 연결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안무가로서 이러한 움직임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것은 보복을 두려워하며 지하에서 이 춤 동작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일”이라며 “심미는 단순한 춤 동작이 아니라 태도이고, 재즈는 자유이자 해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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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무가 도미니크 켈리 [오디컴퍼니 제공] |
음악 역시 1920~30년대 안에 절묘하게 지금의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문법을 넣었다. 하울랜드는 “‘뉴 머니’와 뮤지컬의 시작과 끝을 맡고 있는 ‘로어링 온(Roaring On)’은 듣자 마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지는 템포와 비트에 현대적이면서도 거대한 스윙 호른 편곡을 합친 곡”이라고 했다. 관악기를 사용해 1920~30년대 ‘스윙 스타일’을 환기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창작 초연 뮤지컬 관객의 어려움은 난생처음 듣는 곡을 10여개 이상 2~3시간 가량 참고 들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 귀를 사로잡는 감각적 선율은 필수. ‘위대한 개츠비’는 모든 장면의 춤과 음악이 이야기를 담고, 메시지를 품고 있다.
2016년 ‘마타하리’를 시작으로 ‘지킬앤하이드’, ‘웃는 남자’의 편곡,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등을 만들었던 하울랜드는 “가사와 선율 모두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순간에 감정적이고 멜로디적인 훅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포 허(For Her)’에서의 갈망, 파티에 데려가달라(“Where’s the party and can you take me there”)는 ‘로어링 온’의 노랫말에선 내 귀에 착 달라붙는 멜로디를 쓴다. ‘온리 티(Only Tea)’의 복잡한 리듬과 바쁜 가사 속에 담긴 유머와 불안도 하울랜드가 신경 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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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오디컴퍼니 제공] |
안무도 마찬가지다. 켈리는 “뮤지컬에선 스토리텔링이 댄스의 스텝보다 먼저”라며 “안무가 줄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면 뮤지컬 안무가로의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춤이 곧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져야 한다”이라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선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로어링 온’이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냈다고 말한다.
‘찰스턴’ 댄스를 적극적으로 녹여낸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켈리는 “찰스턴은 아프로 아메리칸에서 비롯된 춤이 주류로 받아들여지는 토대를 마련한 춤”이라며 “이전엔 짝을 맞춰 추는 사교댄스가 주를 이뤘지만, 찰스턴을 계기로 사람들이 혼자든 여럿이든 자유롭게 춤을 추게 됐다”고 했다. 춤을 통해 자유를 욕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위대한 개츠비’의 메시지도 관통한다. 그는 “이 춤은 1920년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한 자유와 자기표현 욕구를 반영한다”라며 “춤은 욕망과 자유, 달콤한 동시에 허망한 아메리칸드림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말했다.
무대로 옮겨온 소설은 100년 전 이야기임에도 동시대성을 갖는다. 하울랜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작업하며 이 이야기는 1922년만이 아니라 2022년에도 공명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정말로 놀라운 소설이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여전히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아메리칸드림과 신분 상승을 향한 끝도 없는 인간의 욕망이 물거품 같은 하룻밤 파티로 이어지고, 그 이면의 허상과 양면성이 무대 말미 덮쳐오면 관객은 소설 못잖은 여운에 휘감긴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로어링 온’의 춤은 이 작품의 상징이다. 켈리는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낸 장면”으로 꼽는다.
“사치와 향락, 파티에 취해 즐기기만 하던 사람들이 너무 지쳐버리죠. 그 춤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자 희망, ‘아메리칸드림’의 공허와 허상을 관통해요. 그런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파티를 이어가려는 희망이 결국 ‘위대한 개츠비’의 메시지예요.” (도미니크 켈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