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보니 트럼프 대통령도 범죄 알고 있었을 가능성
저속한 e-메일, 성범죄 대응 방식 주고받은 상대 보니
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등 유명인사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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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제프리 엡스타인이 젊은 시절 함께 찍은 사진. 최근 엡스타인의 e-메일에서 그의 성범죄를 트럼프 대통령도 알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이 공개됐다.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죽은 엡스타인이 잡아들이는 권력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영국 왕자 호칭과 모든 지위를 박탈당한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 외에도 많았다.
미 하원 감독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12일 공개한 문서에는 제프리 엡스타인이 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억만장자 금융가 리언 블랙,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 범죄 사실이 드러나자 급하게 찾았던 이른바 언론 홍보 전문가들과 주고 받았던 e-메일이 총 망라됐다.
2만쪽이 넘는 방대한 이 e-메일에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냈던 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여성들을 남성들에 비해 부족한 존재로 표현하며, 트럼프를 비꼬기도 했다.
https://mbiz.heraldcorp.com/article/10547530
2017년 서머스 전 총장이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PIF) 컨퍼런스에서 연설하자, 엡스타인은 해당 컨퍼런스에 대해 물었다. 서머스는 엡스타인에게 “돈 많고 방탕한(lucrative and louche) 이들 사이의 삶은 어떤가?”라고 물으며 해당 콘퍼런스에서 자신이 “포용성에 대해 떠들었다(yipped)”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IQ의 절반은 여성이 소유하고 있다고 언급했음. 그들이 인구의 51% 이상이라는 말은 빼고”라 덧붙였다. 인구 비중은 여성이 절반 이상이지만 IQ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라는 식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수준에서 떨어진다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서머스 전 총장은 2005년 이공계에서 여성 비중이 남성보다 낮은 이유에 대해 성차별적인 관점에서 발언해 교수진의 불신임투표를 받게 됐고, 결국 자진 사임한 바 있다.
서머스 전 총장은 당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막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을 일컬어 “반대파 측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표현했다.
앤드루 전 영국 왕자는 2011년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에 대해 엡스타인, 엡스타인의 연인이자 성범죄 공범인 길레인 등과 e-메일로 대책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언론 보도로 앤드루 전 왕자가 17세 소녀였던 버지니아 주프레와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이 보도되자, 엡스타인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 여자가 성관계를 맺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엘비스(이미 고인이 된 엘비스 프레슬리)뿐일 겁니다”라며 여자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듯한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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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루 전 영국 왕자(왼쪽)와 버지니아 주프레가 함께 찍은 사진에 엡스타인의 연인이자 성범죄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오른쪽)의 모습도 함께 보인다. |
앤드루 전 왕자는 의혹이 확산되자 맥스웰에게 e-메일을 보내 외부에 자신은 이 일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달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엡스타인은 뉴욕타임스 등 기자들과의 e-메일에서 앤드루 왕자의 의혹을 “완전한 허튼소리(Total horseshit)다. 데일리 메일이 그 여자에게 돈을 줬다”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엡스타인은 2001년 앤드루 전 왕자가 주프레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사진에 대해서는 “그녀는 앤드루와 사진을 찍었다. 내 많은 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이라 답했다. 앤드루 전 왕자는 2019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사진이 찍힌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했다. 대책회의가 꼼꼼하지 않았는지, 앤드루와 엡스타인이 진술한 사실관계가 어긋난 것이다.
피터 맨델슨 전 주미 영국대사와 엡스타인은 성범죄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파장이 커지는 과정에 앤드루 전 왕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앤드루 전 왕자가 유명인이고 언론의 관심이 크다 보니, 조용히 묻혔을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엡스타인은 2016년 맨델슨에게 보낸 e-메일에서 “앤드루를 멀리하라는 당신 말이 옳았습니다”라 적었다. 맨델슨은 “네, 앤드루가 없었다면 일이 그렇게까지 커지지(nuclear) 않았겠죠”라 답했다. 맨델슨은 이후 주미 영국대사직에서 해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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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온 블랙 전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언론에 2018년 흑색종으로 인해 아폴로 CEO 직에서 예상보다 일찍 물러날 수도 있다 말했다. 블랙은 2021년 엡스타인 범죄 연루 의혹 등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아폴로 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로이터] |
뉴욕타임스는 앞서 사모펀드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최고경영자(CEO)이자 회장이었던 레온 블랙이 가족법인을 통한 재산 계획, 세무 및 자선활동 조언을 빌미로 엡스타인에게 5000만달러를 지불했다 보도한 바 있다. 블랙은 매년 수백만달러를 지불한 바 있다고 했지만, 이후 아폴로 이사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사이에 엡스타인에게 1억5800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드러난 e-메일 내용을 보면 엡스타인은 블랙에게 미술품 구매, 세금 문제, 2012년 블랙이 인수한 출판사 파이돈 프레스 경영 등에 대해 전반적인 조언을 하면서 보수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엡스타인은 블랙이 세운 가족법인을 관리하는 직원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책임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수를 현금으로 지불하기 어려우면 마이애미에 있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등 현물로 지급해도 된다고 선심쓰듯 말했다. 엡스타인은 “내 새 비행기 금융지원”으로도 보수 지급이 가능하며, 이는 몇 년에 걸쳐 분할할 수도 있다고 세세하게 명시했다.
블랙의 변호사인 수전 에스트리치는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블랙은) 엡스타인의 범죄 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오직 세금 및 자산 계획 자문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블랙은 엡스타인과의 친분 외에도 여러 성범죄 의혹으로 논란을 빚었고, 2021년 엡스타인에게 거액의 보수를 지불한 것이 빌미가 돼 아폴로의 CEO겸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엡스타인은 성범죄 의혹이 불거진 초기에 여러 홍보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얻어 여론전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보 전문가들은 엡스타인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고, 다른 이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라 조언했다.
홍보(PR) 회사인 오스본 앤 파트너스는 앤드루 전 왕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던 2011년 6월 엡스타인에게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그(앤드루 전 왕자)의 생활 방식을 조장하거나 그의 잘 알려진 문제들을 돕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재앙”이라며 앤드루 전 왕자와 거리를 두라 조언했다. 연예계 홍보 전문가 페기 시걸은 엡스타인에게 “앤드루 왕자를 고발한 그 여자는 거짓말쟁이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버킹엄궁이 아주 좋아할 거라 생각해요”라며 피해자인 버지니아 주프레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몰아가라 제시했다. 시걸은 누군가에게 임무를 맡겨 주프레를 사기꾼으로 몰라고 조언하며 “당신과 나는 평생 애스콧(Ascot) 경마장에 갈 수 있을 겁니다”라 말했다. 애스콧 경마장은 영국 왕실 소유의 경마장으로, 사교계 인사들이 교류하는 곳이다. 시걸의 e-메일은 이번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덮고, 예전처럼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장담하는 말이다.
뉴욕의 저명한 언론인 마이클 울프 역시 엡스타인에게 조언하며, 2018년 그의 성범죄와 사법처리 과정을 심층 보도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애미 헤럴드를 비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울프는 마이애미 헤럴드의 퓰리처상 수상에 대해 “심사위원들 좀 봐라. 전형적인 ‘올바른 생각’을 하는 기득권층(the right-thinking establishment to a tee)이다”라 비꼬았다.
엡스타인은 지인들과 주고 받은 e-메일에서 트럼프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8년 서머스 전 총장과의 대화에서 엡스타인은 트럼프를 “거의 미치광이(borderline insane)”라 불렀다. 그 해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랜던 토마스에게 보낸 e-메일에서는 트럼프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다”고 묘사했다.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성추문을 부인하는 트럼프에 대해서는 “거짓말에 이은 거짓말, 또 거짓말”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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