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 31년 여전한 ‘하청의 하청’…용역 업체 대표 경찰 검거 [세상&]

용역 따낸 뒤 지자체 모르게 ‘불법 재하청’
꼼수로 덩치 키우며 ‘전국구’로 용역 독식


‘불법 재하청’ 혐의로 붙잡힌 용역 업체가 작성한 지자체 시설물 안전점검 결과보고서. [서울경찰청]


[헤럴드경제=김아린 기자]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다리나 터널 등 주요 시설물 설계·안전관리 용역을 맡은 업체가 지자체에 알리지 않고 불법으로 하청을 준 사례를 경찰이 적발했다. 경찰은 용역 업체 대표를 시설물안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거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19일 “지난 2023년 5월경부터 올해 3월까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다리·터널 등 시설물의 설계나 안전관리 용역을 발주처에 통보 없이 불법 하도급한 업체 대표를 비롯해 40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최근 범정부적으로 진행 중인 ‘건설현장 불법 집중단속’의 일환으로 시설물 안전관리 용역을 담당하는 업체의 비리에 관한 수사에 착수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시설물안전법은 부실한 안전 진단을 막기 위해 하도급을 금지하고, 등록된 업체만이 시설물 점검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는 12월 4일부터 시설물안전법상 처벌이 강화돼 안전관리 용역 보고서를 거짓 작성할 경우 최대 3년 징역에 처한다.

경찰은 용역을 불법 하도급하거나 미등록 업체가 용역을 수행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올해 7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용역 업체 대표 등을 추적해 범행을 밝혀냈다.

경찰에 따르면 지자체 등 용역 발주처에서는 안전관리 용역을 대부분 경쟁 입찰로 진행하는데, 규모가 큰 업체 몇 곳이 전국 단위로 용역을 독식하면서 더 작은 업체에 재하청을 줬다.

이들은 지역 제한을 둔 용역 입찰 공고에 따라 본점 외 여러 지역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최대한 많은 용역을 따낸 뒤 지자체에서 받은 대금 일부를 지급하는 형식으로 ‘하청의 하청’을 줬다.

이렇게 지자체 용역을 따낸 업체는 재하청을 준 업체 직원을 자사에 ‘위장 취업’시키거나 가짜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는 등 꼼수로 당국의 단속을 피했다.

경찰은 “불법 하도급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고, 시설물에 대한 안전 관리 부실로 이어져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당국의 철저한 관리 감독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앞으로도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하도급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유착 비리 등에 대해서도 더욱 강력하게 단속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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