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하는 시대는 끝났다”…AI로 단 하루 만에 ‘항체 설계’, 신약 개발 패러다임 바꾼다

세상에 없는 단백질 설계하는 ‘갤럭스디자인’
AI로 항체 발굴 시간 1년→한 달 단축 ‘혁신’
세계 5곳, 한국 유일 기술…국내·외 러브콜
인류에 ‘하루 더’ 선물하겠다는 꿈…창업 제안
“앞으로 기술 아닌 상상력이 신약 개발의 핵심”
박태용 갤럭스 부사장 인터뷰


박태용 갤럭스 부사장이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갤럭스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누구나 상실을 경험하곤 한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슬픈 일이다. 가까운 관계의 사람을 떠나보낼수록 그렇다.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는 초등학생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학생은 왜 이렇게 슬픈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이 슬픈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수한 질문이 떠올랐다.

답을 찾고 싶었다. 부모님을 졸라 과학 학원을 다녔고, 과학고에 진학했다. 노화나 질병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해결하고 싶었다. 어떤 질병이든, 어떠한 필요한 약을 바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약 개발 플랫폼’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린 과학도는 카이스트 화학과에 입학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꿈을 이뤘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만들었다. 인공지능(AI) 플랫폼으로 세상에 없는, 새로운 항체(단백질)를 만드는 AI 신약개발기업 갤럭스의 박태용 갤럭스 부사장(32)이 그 주인공이다.

박 부사장은 신약을 개발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카이스트 학부 시절에도 화학과에서 계산화학 연구실 생활을 했고, 서울대 대학원 화학부에서도 계산화학 연구에 매진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 연구실에서 ‘갤럭시(GALAXY)’라는 단백질 구조 모델링 플랫폼을 개발했다.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박 부사장은 석 교수에게 창업을 제안해 바이오 벤처 ‘갤럭스’를 설립했다.

박 부사장은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갤럭스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공동 창업자들의 역량이 뛰어나고, 기반 기술의 경쟁력이 있었기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확신은 기술력으로 입증했다. 갤럭스는 창업 3년 만에 26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1일 셀트리온과 다중 항체 기반 차세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으며, LG화학, 한올바이오파마 등 17개 파트너와 협업하고 있다.

원자 단위 수준(iRMSD 1.1)에서 일치하는 인공지능이 설계한 항체의 모델 구조(좌)와 실제 실험 구조(우)의 모습. [갤럭스 제공]


세포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일이다. 우리 몸의 단백질은 20여종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아미노산의 배열과 입체 구조에 따라 단백질의 기능이 달라진다. 이 단백질 기능에 변이가 생기거나 발현 정도가 달라지면 질병이 생긴다.

특히 암세포에서 과발현되는 PD-L1 단백질이 대표적이다. PD-L1 단백질은 면역세포의 PD-1 단백질과 결합하면, ‘나 적이 아니라 아군이야’라는 신호를 보내 암세포를 죽이지 못하게 만든다.

항체 신약은 PD-L1과 PD-1의 결합을 방해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적군’으로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좋은 항체를 원하는 방식으로 결합하도록 정확하게 설계하는 것이 신약 개발 성공의 핵심이다.

이전까지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백만~수천만개의 항체 라이브러리에서 스크리닝을 통해 표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것을 ‘발견(Discovery)’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원하는 항체를 얻지 못하면 무한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어렵게 얻은 항체라도 퀄리티가 낮아 결합력, 물성 최적화 등 1년 이상의 추가 최적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갤럭스의 단백질 디자인 AI플랫폼 ‘갤럭스디자인(GaluxDesign)’은 AI를 활용해 원하는 타깃의 정확한 부위에 정밀하게 결합하도록 항체의 아미노산 서열을 설계할 수 있다. 수백·수천만개의 항체 중에서 ‘발견’하는 방식에서, AI를 통해 애초부터 원하는 항체를 ‘설계(Design)’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드노보 설계 항체가 모든 타깃에서 결합력을 보이는 모습. 평균 31.5% 성공률 기록했다. [갤럭스 제공]


이는 신약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이다. 정밀한 설계와 효율성 증대로 신약 개발의 초기 단계를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통상 항체 발굴 기간은 1년 정도 소요됐지만, ‘갤럭스디자인’을 통해 원하는 성질을 가지는 항체를 디자인하는 데는 단 하루가 걸린다. 실험을 통해 결합 테스트까지 기능을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임상 성공률’을 높이는 데 있다. 약을 절실하게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희소식을 전해줄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방암, 췌장암, 두경부암의 중요 표적인 프리즐드-7(FZD-7)을 타깃하도록 개발된 항암 신약 ‘반틱투맙’은 임상 1상에서 실패했다. FZD7 외에 뼈 생성 등에 필수적인 FZD1 등 유사 단백질에도 결합해 부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박 부사장은 “FZD7과 FZD1은 아미노산 두 개만 다를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며 “AI로 이 두 개를 정확히 구분해 FZD7에만 붙는 항체를 설계할 수 있으면 반틱투맙이 가지고 있던 부작용을 해결한 신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갤럭스는 AI 설계를 통해 FZD7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고 FZD1에는 결합하지 않는 항체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는 “임상에 들어갔던 항체보다 강한 결합력과 뛰어난 물성을 가진 항체를 단번에 얻을 수 있었다”며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1만개 디자인 중 1개를 찾던 기술이, 현재는 10개 디자인 중 평균 3개가 결합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박태용 갤럭스 부사장이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갤럭스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세상에 없던 단백질, ‘드노보(de novo)’ 항체 설계 기술은 전 세계 5곳만 성공 사례가 나올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다. 이 중에서도 갤럭스는 선두에 있다. 국내 선두 제약사들은 물론, 글로벌 빅파마도 갤러스에 먼저 손을 내미는 이유도, 갤럭스의 기술력이 차별성이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박 부사장은 “‘항체의 발견(Antibody Discovery)’에서 ‘항체의 설계(Antibody Design)’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갤럭스가 이 분야를 리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갤럭스의 단백질 디자인 AI는 항체뿐만 아니라 다중항체, 항체-약물접합체(ADC), 나노바디(Nanobody), CAR-T(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를 넘어 미니단백질, 펩타이드, T세포 수용체(TCR), 사이토카인 등 다양한 모달리티 설계에 적용될 수 있고, 미래의 복잡하고 정교한 모달리티 개발에 필수적인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궁극적으로 갤럭스가 그리는 미래는 상상하는 물질을 자유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자 설계 기술’이 도래하는 세상이다. 박 부사장은 앞으로 신약 개발에서의 ‘한계’는 기술이 아니라 상상력의 부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상실을 막겠다는 한 과학도의 동심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박 부사장은 “앞으로는 어떤 기술이 아니라 어떤 약이 혁신적일지를 생각하는 상상력이 신약 개발의 키(key)가 될 것”이라며 “질병이나 노화 걱정 없이 누군가에게 ‘하루를 더(Another Day)’ 선물할 수 있는 세상을 앞당기는 것이 갤럭스의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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